스팸의 저주

으흐흐. 아침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고 [Run To 루인]에 접속해서, 최신 덧글을 보는 순간, 뜨악!

이와 같은 스팸이 나오는 것이었다. 쓴 사람 이름은 다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삭제였다. 한참을 지워도 계속 나와서, 얼마나 있나 해서 확인해보니, 으흐흐, 거의 100여 페이지. 한 페이지 당 10개니, 1000개에 가까운 스팸 덧글이 있었다. ㅠ_ㅠ

착한 루인은 예의 바르게도 어떤 글에 덧글을 달았는지 확인도 안 했다. 그냥 몽땅 스팸으로 등록하고 삭제했다. 이름, 홈페이지 주소, 내용, IP주소까지 몽땅 스팸으로 등록하면서 지워드렸다. 그래도 안쓰러워 가장 처음 쓴 덧글의 시간은 새벽 3시 경, 가장 마지막에 쓴 덧글은 6시나 7시로 추정. 덧글 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할게요.

일전엔 스팸 트랙백이 와서 신경 쓰인 적이 있다. 그때도 예의 바르게 스팸으로 등록해 드렸다. 재밌는 건, 스팸메일이 그렇게도 빈번하다지만 아직 스팸메일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받아야 할 메일을 스팸으로 분류해서 스팸메일함을 받은편지함처럼 확인하는 일은 있어도 스팸메일 때문에 신경 쓴 적은 없다. 스팸문자나 스팸전화도 일 년에 한 손에 꼽을 정도랄까. 그런데 스팸덧글이 천 여 개라니!!!

그냥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몸이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루인은 누구일까. 하지만 몸은 여럿이라고 고민하고 있다. 하나의 몸과 하나의 정체성만 가지는 것이 아니듯 몸과 몸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듯 지금처럼 몸과 몸이 따로 노는 경우도 많다. 흐리다. 그렇다는 얘기다. 갑작스레 비가 내렸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몸은 여럿이로 흩어져서 따로 떠다니고 있다.

넌, 어디로 가고 있니
그러는 넌 어디로 가고 있니?
하지만 네가 가는 곳과 네가 가는 곳이 이렇게 다를 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즐거운 논문을 쓰고 있다. 학기말 논문을 쓰기 위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 얘기들이 어딘가로 사라졌고 하고 싶은 말을 잃었고 그래서 방황하고 있다. 넌 어디로 갔니? 그런데 어디서 잘 지내고 있니?

몸 떠난 말과 몸에서 사라진 말과 몸에서 맴돌고 있는 말과… 말과 말이 부딪히고 충돌해서 흩어지면, 이렇게 주절거림만 남나 보다.

눈을 뜨니 6시 45분이었다. 45분이나 늦잠을 잤다. 라디오에선 손석희와 김종배가 뉴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울하고 조급함이 밀려왔다.

잠이 덜 깬 것인지, 긴장이 풀렸는지, 늦잠의 처벌인지, 사무실에 와서 커피를 두 번이나 쏟았다. 한 번은 바닥에, 또 한 번은 책상에. 책상에 있던 책이나 가방은 무사한데 쌓아둔 논문들이 젖었다. 일부분이 커피에 물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변색한 것처럼 눅눅하다.

아, 그제야 떠올랐다. 아침에 온 몇 개의 문자. 회원/고객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실이 떠올랐다. “이팀장” 생일이 얼마 전이었다는 걸. 음력을 계산했다. 푸훗. 오늘과 내일 이틀 연속으로 생일이다-_-;;;;; 웃기다. 이틀 연속 생일이라니.

생일선물은 푸짐하다. 퀴어문화축제 행사의 하나인 수다회에서, 마침 오늘 [너 TG? 나 TG!]를 한다. TG, TS(트랜스젠더transgender,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와 고민 중인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다. 루인에게 이 보다 좋은 자리가 있을까. 다만 토론 내용은, 너무 논쟁적이다. 성별변경의 법제화와 관련한 내용인데, 모든 법제화를 반대하고 기존의 모든 법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인으로선 모호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지지하지만 반대한다는 의견은 가능할까? 이분법으로 나뉘는 논쟁에선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루인은 지지하지만 반대한다.

생일 따위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 저학년 즈음 이후로 생일을 건너뛰는 날이 많았기도 하고 루인은 축하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란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생일을 물으면 언제나 대답을 피했다. 물론 요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년부터, 스스로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자기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작년엔 [우리 시대의 소수자 운동]을 주었다. 올해는? [메종 드 히미코] DVD가 나왔다면 이 DVD를 주겠지만 아직 안 나왔나 보다…라고 적고 확인하니 이미 출시했다. 흑. 그렇다면 [스윙걸즈]와 [청연: 특별판]을 사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 흐흐. 이히히히히히. [메종 드 히미코]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어.

이젠 그냥 이렇게 스스로 축하는 방식으로 보내고 싶다.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축하하는 방식. 우울하게 시작한 하루지만 “다 괜찮아”라는 말로 다독이는 하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