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운동,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과의 관계: 미국과 한국의 경우

미국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글을 읽을 때면 일부(!)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납득이 가기도 한다.

미국에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가장 심각한, 강도 높은 혐오발화를 한 집단은 급진주의/분리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했던 이들이다. 그들은 mtf 트랜스여성을, 그 자체로 여성에 대한 강간범으로 설명했다. 이런 식의 비난은 지금도 일부 페미니스트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물론 또 다른 일군의 비트랜스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 이론 작업과 운동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의 트랜스혐오에 적극 항의하며 트랜스젠더와 함께 행동한다.
미국 동성애자 운동의 일부 진영은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를테면 미국 대표적 자부심 행진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할 것인가란 논쟁이 1990년대에 활발하기도 했다. 동성애 중심이며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이런 태도는 역사 서술에서도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다. 과거 역사를 기술하며 트랜스젠더의 흔적을 누락하거나 배제하고, 동성애의 역사로 전유하는 식이었다. 이런 태도는 2007년 고용에서의 차별금지법(ENDA)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드러났다.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 항목을 모두 포함할 것인가, 성적지향만 포함할 것인가란 논쟁에서 일부 동성애 진영은 신속한 법안 통과를 위해, ENDA를 제정하는데 트랜스젠더는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오도하며 성별정체성 항목을 빼고 성적지향만 넣기를 주장했다. 물론 또 다른 동성애자 운동 진영은 이런 태도를 맹비난했다.
미국의 이런 상황은 트랜스젠더가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을 바라보는 태도를 양가적으로 만든 듯하다. 이 양가적 감정엔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역사 및 현재 상황과도 밀접하다. 적잖은 트랜스젠더가 과거엔 레즈비언이나 게이로 자신을 설명했다. 어떤 ftm은 1970년대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울러 현재, 일부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인 동시에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이기도 하다. 그 자신, 페미니스트인 경우도 적잖다. 즉, 어떤 트랜스젠더에겐 페미니스트와 동성애가 자신과 분리할 수 없는 범주다. 그래서 일부의 혐오발화는 자신의 복잡한 범주를 곤혹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미국 트랜스젠더 활동가, 이론가의 글에선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황과 감정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냐면 그렇지도 않다.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이론의 관계는 엄청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야 할 교차영역인에도 그런 것이 없다. 두어 명의 페미니스트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그게 전부다. 사석에선 불편함과 무지에 따른 혐오발화를 하는 이들도 글은 안 쓴다. 혹은 공적 발표 자리에선 몸을 사린달까. 그래, 맞다. 논쟁적 혐오 발화의 부재는 윤리적이라서가 아니라 몸을 사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냥 외면하거나. 그래서 논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아울러 트랜스젠더 이슈에 감이 있는 (비트랜스)페미니스트도 글을 거의 안 쓴다;;; 대신 주요 사안에서 적극 연대하고 성명서를 발표한다.
동성애 운동과의 관계는, 트랜스젠더 운동의 많은 부분이 동성애운동과 함께 하고 있다. 공동체의 개인 차원에서 혐오발화를 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터. 운동이나 이론 차원에서 동성애 운동은 언제나 트랜스젠더 운동과 함께 하고 있다. 사실상 트랜스젠더 운동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동성애자 단체 혹은 성적소수자 단체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약간 뜬금없인 글일 수도 있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 메모. 트랜스젠더 역사 관련 글을 읽다가 든 고민이기도 하고. 🙂

구글페이지 트랜스젠더 포스트 모음 2012.02.20.-2012.02.24.

이번 주 시사인에 실린 미야베 미유키 기사를 읽다가..
“이후 지금까지 소설 324편을 남기며” … 헉… 난 지금까지 1/10은 읽었나? ;;; 정말 앉아서 글만 쓰는 거야? 데뷔 27년 정도 되었는데 일 년에 10편 이상을 썼단 말이야? 덜덜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내놓았다. 이전에도 번역돼 나온 적이 있지만 이번엔 축약 부분을 되살려 원고지 500장 분량이 추가됐다.” -_-; 옮긴이의 말에 축약했다는 구절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원고지 500장 분량이라니… -_-;; 다시 사서 읽어야 하나.. 아놔…
Feb 20, 2012  –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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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ransgender Pakistanis, newfound rights 2012.02.11.
파키스탄에서 성적소수자로 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유넉(거세된 남자) 혹은 “히즈라”로 알려진 트랜스젠더는 상당한 사법적 보호와 새로 설립된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다.
지난 달, 트랜스젠더는 제3의 섹스,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동일시하며 선거에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과거 국가 이슈의 정체성 카드(ID 카드)는 개인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표시했다.
또 다른 날, 파키스탄 대법원의 위엄 있는 홀에, 히즈라(여성으로 정체화하는 남성 집단) 집단은 “유넉에 대한 모욕”과 관련하여 2008년에 있었던 헌법권 사례의 집행에 대한 최근 심리를 위해 모였다.
수도 근처 대도시 라왈핀디의 트랜스젠더 공동체 대표 알마스 보비는 “경찰은 우리를 구타하고 돈을 갈취했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경찰서에 가고, 그들은 우리를 존중하며 우리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우리의 첫 번째 사례다.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느낀다.” 40살의 보비는 새로 만든 ID카드를 최초로 받았다.
유넉은 몽골제국 시절까지 거슬러가며 하렘 보초로 일한 거세된 남성이다. 그들은 왕궁에서 엔터테이너로 일하며 자존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오늘날 파키스탄에서 유넉은 트랜스섹슈얼, 트랜스베스타잇, 동성애자, 양성구유hermaphrodite, 그리고 크로스드레서를 포함하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전통적으로 유넉은 두 섹스의 특징을 모두 전시하며 축복받은 것으로 보였다. 때론 신혼부부에게 행운을 전해주기 위해 결혼식장에 초대받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 근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자존감은 불명예와 괴롭힘으로 바뀌었다.
정부에 대한 재판정의 일반 명령은, 트랜스젠더는 다른 시민처럼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극적 행동에 따라 시민 서비스 직업에 선호될 것이다. 한 변호사에 따르면, 10단계(10학년?) 교육을 받은 트랜스젠더 지원자는 정부의 업무에서 학사 학위를 소지한 비트랜스젠더와 동일한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은 기간 청취를 통해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보비의 부모는 죽었고 남은 가족 구성원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 조롱은 특별하지 않다.
히즈라는 자신의 가족에게서 부인당하기에, “그림자 가족”을 만든다. “비록 가짜라고 해도 그들은 그것을 선호한다”고 퀘타의 사회복지부 장관 살림 아완이 말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길 선호한다.”
원가족에게 버림받은 일부 파키스탄 트랜스젠더는 ID 카드를 받길 꺼린다. 카드를 받을 권리가 있다곤 해도,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가족의 우두머리인 구루의 이름으로 등록되길 바란다.
대법원장 이프티카 모함메드 쵸드리는 수오 모투 공지라고 불리는 사법 전략을 사용하며 다양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정부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할 때 법정이 관여할 것을 허락한다.
“대법원장은 우리가 신의 창조물이라고 말했다.”고 보비는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깨달았다. 처음에 그들은 우리를 조롱하고 괴롭혔다. 이제 그들은 우리가 사람이란 점을깨달았다.”
“쵸드리는 영웅이다.”
Feb 22, 2012  –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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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actor welcomes home transgender daughter 2012.02.12.
네팔 최고의 코미디 배우는 지난 일요일 그의 아들이 네팔 최초의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섹슈얼이 되는 것을 도왔으며 $26,000 비용으로 “완벽한 숙녀”가 되었다고 얘기했다.
산토쉬 판트가 말하길, 18살의 카이틀린(프라틱으로 태어났다)은 지난 달 태국에서 받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카트만두에 있는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내 아들은 몸과 영혼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He는 몸은 남자지만 자신의 영혼은 여자라고 말했다.”고 판트는 AFP에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젠더재지정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에게, 어릴 때 수술을 받는다면 완벽한 숙녀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매우 보수적이고 힌두문화지만 아시아에서 섹슈얼리티 이슈에선 가장 진보적 정책을 가진 네팔에서 수술을 한 트랜스섹슈얼은 매우 적다.
“그는 이제 18살이고, 그가 하는 말에 따르면 수술이 지연되면 못생겨질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우울증에 빠지길 원하지 않았기에 지난 달 태국으로 데려갔다.”고 판트는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 이상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트콤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는 카이틀린이 약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술 전 1년 동안 호르몬을 투여한 카이틀린은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her의 어머니 프라트브하는 네팔어로 발간하는 일간지 칸티푸르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고로 딸이 죽은 이후, 우리는 언제나 가족 중에 딸이 있길 기대했다. 그녀가 내 자궁에 있을 때, 나는 딸이길 기도했다. 내 꿈은 18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고 난 매우 행복하다.”
블루 다이아몬드 사회란 압력단체를 운영하는, 네팔 최초의 공개 게이 의원 수닐 판트는 젠더 재지정이 네팔에서 “새로운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구성원 중 두 명은 재지정을 겪었고 몇 명이 더 있다고 들었다. 판트 가족이 증명한 용기와 지지에 나는 매우 기쁘다. 개인적 바람을 실현하는데 성공한 새로운 소녀에게 축하 인사를 보낸다.”
판트는 딸의 수술 비용을 다 지급하고 성전환을 응원하면서 왜 인터뷰 내내 he라고 지칭하는 것인지…
Feb 24, 2012  –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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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timore County approves transgender discrimination ban; 4th Md. govt. to adopt protections
볼티모어군은 트랜스젠더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킨 네 번째 지역 정부가 되었다.
군 의회는 목요일(2012.02.23.)에 그 조례를 승인했다. 조례는 거주, 고용, 공공 편의시설과 금융에서 젠더 정체성과 젠더 표현, 그리고 성적 지향에 바탕을 둔 차별을 금지한다.
의원들은 특히나 화장실을 면제하는 수정안을 추가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조례를 수정했고 그리하여 보호는 “명백히 사적이거나 개인적” 시설엔 적용하지 않는다.
의회의 승인은, 로즈데일에 위치한 맥도날드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했을 때 악랄하게 구타했던 사건 이후로 거의 1년이 걸렸다.
볼티모어시와 몽고메리군, 하워드군 또한 트랜스젠더 보호법을 가지고 있다.
화장실 문제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네요..

구글페이지 트랜스젠더 포스트 모음 2012.02.13.-2012.02.17.

KSCRC 퀴어 아카데미 강좌를 듣다보니 글을 올리는 횟수가 불규칙하네요. 뭐,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요.. 하하. 2월 말까지는 불규칙하지만, 3월부터는 안정적일 듯합니다. 🙂
Feb 13, 2012  –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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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gender woman sues city, NYPD after arrest
맨하튼의 한 여성이 시와 뉴욕경찰 경찰관을 고소했다. 그녀가 트랜스젠더란 이유로 뉴니온스퀘어 지구에서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테미 브레슬로어는 1월 24일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가 외부성기와 관련해서 얘기하길 거절하자 경찰은 그녀의 이름을 불렸고, 28시간 동안 그녀의 팔을 머리 위로 묶었다.
그녀는 지난 1월 12일 아버지의 할인승차권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125가 지하철 4호선에서 체포되었다. 두 명의 경찰이 그녀를 체포했다.
“경찰은 그녀를 체포하면서 서로 키득거렸고 그녀를 보며 웃었다.”고 변호사는 주장했다.
이후 경찰은 유니온스퀘어 지하철 내의 관할구로 브레슬로어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경사는 그녀에게 음경이 있는지 질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젠더 전환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52살의 브레슬로어는, 법적 이름은 토드인데, 그녀는 28시간 이상 펜스에 팔이 묶인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곳에서 경찰들은 그녀에게 “He-She” , “트랜스베스타잇”이라고 불렀고, “할로윈 놀이를 해?”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변호사 그레고리 안톨리노는 경찰이 그녀를 여성 감방이나 독방에 머물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녀는 남성 수용인이 그녀를 비웃고 소다캔을 던질 수 있는 감방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변호사는 “그들은 그녀를 여성으로 다룰 수 있다. 페니스는 무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뉴욕경찰은 트랜스젠더가 체포되었을 때의 절차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변호사는 덧붙였다.
지방의원 다니엘 드롬은, 퀸즈 지역 트랜스젠더는 성매매를 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찰의 타겟이 된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가 단지 친구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에도 경찰은 성매매 혐의로 체포한다고 한다.
Feb 15, 2012  –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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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gender man becomes Britain’s ‘first male mother’
트랜스젠더 지지그룹인 뷰몽 사회는, 여성으로 태어났던 익명의 남성이 지난 해 말 ‘충고를 위한 자선’과 접촉한 뒤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다.
뷰몽 사회의 조안나 대럴은 ‘뷰몽 사회로 일반적 질문이 왔다’고 말했다.
‘뷰몽 사회는 특정 이슈와 관련한 자료를 찾는 사람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 허브 기능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전문 기관에게 그들을 소개할 수 있다.’
대럴이 말하길, 뷰몽 사회는 그 남성에게 젠더정체성연구와교육사회란 단체를 추천했다. 그 단체는 젠더 정체성과 인터섹스 이슈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 개인을 지원한다.
대럴은 그 남성이 나중에 뷰몽 사회가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종종 도움을 받아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 역시 그런 인사를 했고, 그는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마도 특별한 일이며 내가 아는 한 유일한 일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트랜스남성이 임신을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가 젠더 재지정 수술을 받는 동안에도 자궁과 난소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그러나 전문가는 테스토스테론의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자의 재생산기관을 유지할 경우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오레곤 주의 토마스 비티는 2008년 최초의 임신한 남성으로 전 세계 1면을 장식한 바 있다. 그 이후 최소한 두 명의 (여성으로 태어났던)남성이 출산했다. 2010년 3월 캘리포니아의 스콧 무어와 2011년 12월 28일 이스라엘의 유발 토퍼가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