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아이 에스)] 01~10

로쿠하나 치요 [IS (아이 에스)] 01~10

며칠 전 읽으며 두려움을 얘기한 책은 바로 이 책이다. [IS (아이 에스)]. Intersexual의 약자로, 번역하면 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번역할 지는 항상 고민이다. 트랜스젠더라면 한국의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에 “성전환자”로 번역하는 게 이상하다. 아울러 미국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란 용어와 한국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란 용어의 의미가 다르기도 하고. 하지만 “간성”은,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운동차원에서 어떤 용어를 채택할지 몰라, intersex를 간성으로 곧장 불러도 될 지 잘 모르겠다.

아무려나 임시로 간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 만화는 제목 그대로 IS 혹은 간성과 관련한 만화다. 이 만화 역시 [방랑소년]처럼 꼼꼼하게 조사를 한 동시에 최대한 쉽게 그리려고 애쓴 작품. 그래서 무척 괜찮다.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어떤 작품을 읽다가 눈물이 난다면, 불쌍해서가 아니라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1권은 두 명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2권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10권은(아직 완간 아님) 주인공, 하루 한 개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어나기 전 부모들의 고민, 하루가 성장하며 겪는 고민들, 간성 모임에 참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길 강요하는 의학과 자신을 간성으로 설명하고 “남성”이나 “여성”이 아니라 “간성”으로 살아가겠다고 주장하는 모습 등등. 하루는 호적상으론 “여성”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족들은 모두 하루가 간성이란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언제나 솔직하게 얘기하고, 하루는 간성인 남성으로 자신을 인지한다. 하지만 첫사랑을 만나고, 첫사랑은 자신을 여성으로 알다가 나중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내용 설명은 여기까지. 절대 줄거리 요약에 자신이 없어서 중단 한 거, 맞음. -_ㅜ;;)

하루는 자신이 간성이란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간성인 남성으로 사람들이 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설명한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울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지점이었다. 처해있는 상황의 유사함만이 아니라, 하루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하고,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간성임을 얘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설명할 때, 다른 사람들에겐 자신만만하고 별 고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자신만만하고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도 불안하고 무수한 고민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만화 역시, 삶의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물론이고, 성관계에 있어 간성인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는지를 꽤나 세심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만화에 등장하는 모습이 간성인 사람들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방랑소년] 1~6

시무라 타카코 [방랑소년] 1~6 (아직 연재 중)

이 만화가 있다는 걸 어디서 알았을까? [IS(아이 에스)]란 만화를 검색하다 알았을까? 혹은 다른 어디에서 알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개글을 읽는 순간, 그래, 이 만화는 꼭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리본에 적혀 있는 소개글을 빌린다면 “여자 아이가 되고 싶은 소년 니토리 슈이치와 남자아이가 되고 싶은 소녀 타카츠키 요시노”의 이야기다. 이걸 루인 식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일단은 mtf라고 부를 수도 있을 아이 두 명과 ftm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아이 한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출판사 소개글의 문제는 일단 무시하자.)

만화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해서, 사춘기를 지나며 몸이 변하는 과정을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그리고 있다. “왜 트랜스젠더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과 고민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무척 좋다. 일테면 슈이치와 요시노는 단짝인데,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슈이치는 “여학생교복”을 요시노는 “남학생교복”을 입고 외출을 하곤 한다. 입어도 될까 하는 고민부터 입고 돌아다닐 때 느끼는 긴장감, 그리고 아웃팅으로 같은 학교 사람들과 가족의 몇 명이 “변태”라고 놀리는 상황에서의 고민들을 적절하게 그려가고 있다. 사춘기 즈음 호르몬의 작용으로 몸이 변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충격 받고 고민하는 상황들도 꽤나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트랜스젠더 상황인 이들만의 성장담이 아니라, 사춘기를 경험하는 이들의 성장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재미가 문제라면, 소재가 무엇이건 재미가 문제라면, 확실히 재미있다.

이 만화가 번역되어서 무척 좋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할지는 알 수 없지만, 트랜스젠더인 상황을 고민하는 (특히나 사춘기 즈음의)사람들에게, 자녀가 트랜스젠더인 것 같아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도 꽤나 괜찮을 거 같다.

물론, 100% 만족할 수는 없고, 내가 경험했던 상황들과 다른 상황들이 많다. 개개인들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100% 완벽한 작품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이 만화를 “이 정도로 그리는 게 어디야”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직 한 번 밖에 안 읽어서 단언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무척 괜찮다.

저넷 윈터슨(자넷 윈터슨), [육체에 새겨지다]

Jeanette Wnterson, [Written on the Body]

거의 2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소설은, 종시를 위한 텍스트임에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깔깔 웃으면서 그 어떤 부담감을 잊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연애소설이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현재의 애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과 엮어가며 전개하는, 무척 흥미로운 연애소설.

책을 홍보하는 리본엔 “보수적인 영국문단을 뒤흔든 레즈비언 작가!”라고 적혀 있는데, 이 소설에선 화자의 섹슈얼리티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명하지 않은 부분들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이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읽어보면 안다. “읽어보면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 소설이 재밌고 흥미롭다고 말할 자신이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영문으로 찬찬히 읽어볼까 고민을 할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흐흐. 물론 *사소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말했다. “르누아르가 자기는 페니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알아?”
“물론이지.”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은 정말 그랬으니까.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양쪽 고환 사이에서 낡은 붓자루가 하나 나왔다니까.”
“네가 지어 낸 얘기겠지.” (24)

최근 들어 나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두 눈을 가린 채 널빤지 위를 걸어가다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30)

사람은 결코 남에게 마음을 내주는 법이 없다 – 그저 가끔씩 빌려 줄 뿐이다. (47)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안이 잘 들여다보이는 곳에 숨어 옷깃을 세운 채 망을 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일 그녀가 경찰을 부른다면, 그래, 나는 그런 꼴을 당해도 싸지. 하지만 그녀는 경찰을 부르는 대신 손잡이에 진주알이 박힌 권총을 한 자루 꺼내어 내 심장을 겨눌 것이다. 검시를 하는 사람들은 잔뜩 부풀어 오른 심장과 더불어 내겐 밸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 (61)

주인이 없는 방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정말 묘한 기분이 든다. 특히나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라면, 모든 물건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온다. (62)

“헨리 밀러가 ‘나는 페니스로 글을 쓴다’고 했다는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알아?”
“자기가 그랬으니까 그랬겠지. 그 남자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가랑이를 벌려 보니까 볼펜이 한 자루 나왔다는군.”
“네가 지어 낸 얘기겠지.” 그녀가 말했다. (77)

그러나 분자들이나 우리 인간들은 결국에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불가해한 자장 속에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결합하고, 헤어지고, 표류한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루이즈를 만났다는 것은 상처 입은 가슴의 치료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