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01

턱을 좀 다쳤고 휴가라 겸사겸사 집에서 쉬고 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돌아다니기엔 보기 안 좋은 상태다. 끄응… 마침 집에서 할 알바도 있었기에 지난 토요일부터 외출을 삼가고 있다. 어제, 수요일, 중간보고서 작성을 위해 외출했을 뿐이다(윈도우 계열 OS를 사용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있으니.. 머리가 아프다. 외출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종일 집에서 일하는 것은 버겁다. 아니, 규칙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몸이 퍼져서 어지럽고 두통이 난다. 내일은 외출이라도 할까나…

02
이런 내 몸을 확인할 때마다 집이 있으면서도 작업실을 따로 구하는 사람을 이해한다. 물론 내가 바라는 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싸고 채식으로 식사도 할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찾는다. 종일 빈둥거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 아아… 이건 나만의 로망이 아니구나.. ;;;
03
하반기에 할 일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두 가지 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해야 하는 일은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다. 바람의 강도가 더 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해야 하는 일’이다.
04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콩국수를 못 먹었다. ;ㅅ; 내일이라도 어디 가서 먹어야겠다!
05
아… 휴가기간이니 이태원 탐방이라도 해볼까?

[고양이] 꿈, 그리고 예전에 꾼 꿈

어제 아침 꿈을 꿨다. 리카 49재 아침에 심란한 꿈이라니…

집에 누군가 왔다. 그는 바람을 보려고 했다. 평소 바람의 애교를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집에 들일 정도니 상당히 친한 사람이리라. 바람은 어딘가 숨어 있었다. 꿈이 아니라면 당연한 일인데 꿈에선 매우 낯선 상황이었다. 꿈에서 바람은 접대묘였다. 그렇기에 바람이 안 보여 이상했다. 찾으니 바람은 소파 아래에 있었다. 소파는 꿈에 등장한 유일한 가구였고 유일한 장소였다. 꿈의 시작과 끝은 소파가 있는 거실이었다. 난 소파 아래에 있는 바람을 꺼냈다. 이상했다. 바람의 털은 까만색과 하얀색인데, 하얀색이 진회색으로 지저분했다. 연탄에서 논 것처럼 지저분했는데 그게 얼룩이 묻는 게 아니라 털 색깔이 변한 상태였다. 얼굴도 엉망이었다. 눈을 뜨지도 못 하는 상태로 고름 범벅이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바로 그때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바람을 찾았다. 물론 바람은 건강했다. 나는 그냥 개꿈이려니 넘어가려 했다. 씻고 알바하러 가려고 할 때 문득 깨달았다. 작년에도 심상찮은 꿈을 꾼 적 있다는 것을.
저녁, 집에 돌아와 Rica, the Cat 블로그에서 검색했다. 작년에 꾼 꿈을 기록한 포스트를 다시 읽고 섬뜩했다(해당 포스트 읽기). 그때 꿈에선 리카와 바람이 급사하여 나 혼자 남겨졌다. 그때 잠에서 깨어나며 너무도 쓸쓸했단 걸,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정말…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그때 꾼 꿈을 기록하며 차마 못 쓴 얘기가 있다. 난 주로 예지몽을 꾸는 편이라는 말… 난 꿈을 잘 안 꾸는 편인데 꿈을 꾸면 그게 대체로 현실에서 실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친하지도 않은 친척의 죽음을 하루 전에 미리 보는 식이다. 그래서 작년에 리카와 바람이 한 번에 떠나는 꿈을 꾼 후 무척 불안했다. 며칠 지나서도 아무 일 없었기에 그냥 개꿈이겠거니 했다. 지금 상황으로 그때 꿈을 재해석하면, 그 꿈을 꿨을 즈음 리카가 아프기 시작한 것일까? 그 즈음 리카가 그 무언가에 감염된 것일까? 하지만 바람은 지금 건강한데…
어제 아침 심란한 꿈을 꾼 후 자꾸 불안하다. 이번은 제발 헛된 꿈이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고양이] 49일, 리카

01
외출 준비를 하면 바람은 불안한 표정으로 염소처럼 미앙, 미앙, 운다. 낮고 조금은 슬픈 느낌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안다. 나가지 말라는 뜻이다. 같이 있자는 뜻이다.
바람은 자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생물이 자신과 나 뿐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한 듯하다. 그리고 집에 혼자 머물고 싶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 머물 때면 계속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종종 놀자고 바람이 울긴 하지만, 계속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그저 내가 있는 곳 근처에 머물 뿐이다. 바람은 그저 혼자 있길 바라지 않을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종일 집에 머물면 바람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 때마다 바람에게 미안하다. 여러 가지로…
02
방은 바람의 공간, 거실(?)은 리카의 공간이었을까. 둘 다 두 공간을 자유롭게 오갔지만 나름의 영역 구분은 있었던 것 같다. 리카가 떠난 후 바람은 꽤나 오랫동안 거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방과 거실을 들락거리긴 했지만 거의 항상 방에만 있었다. 얼추 일주일 전부터야 바람은 거실에서 뒹굴거나 거실에 머물곤 했다. 나름 각자의 공간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리카가 떠나던 날 거실에 있던 모습을 기억하며 거실에 머물기 무서웠던 걸까?
03
아침에 외출하거나 집에 돌아올 때마다 리카에게 인사한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가끔은 리카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을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이별을 몸에 익히기 위해.
바람을 마구마구 괴롭히며 놀다가, 가끔 리카의 스톤이 들어 있는 함을 보며 “지금은 어디에 있니?”라고 묻기도 한다. 리카는 지금 어디 즈음 있을까?
04
사랑할 수 있을 때, 감정의 육체가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것이 좋다. “내일” 혹은 “나중에”라는 시간은 없다. 이 사소한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난 리카와 15년은 함께 살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소홀해도 나중에 잘 해 줄 거니까, 내일 맛있는 거 줄 거니까,라며 가볍게 넘어갈 때가 있었다. 그렇게 미뤘던 내일은 없다. 내일 같은 건 영원히 없다. 그냥 지금 현재 뿐이란 사실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너무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바람이 나를 부를 때면, 예전이라면 그냥 돌아보며 씨익 웃고 넘어갔다. 요즘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줄 뿐이라고 해도 꼭 반응한다.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귀찮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이 엄습한다. 불안이 나를 훈육한다(아, 원래 불안이 몸을 훈육하긴 하지만;; ). 지금 이 순간, 내게 유의미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05
아직도 5월 27일과 5월 28일이 생생하다.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 봤던,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나를 맞던 리카의 모습, 구석에서 우어엉 울던 리카의 모습… 이런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쩔 수 없다. 파일을 지우기 위해 Delete키를 누르고 쓰레기통을 비워도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흔적이 남는데… 하드디스크보다 부드럽고 결 많은 기억의 흔적을 어떻게 쉽게 지울 수 있을까? 그냥 떠올리는 수밖에.
하지만 7월 들어서는 리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양이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만 말하고 있지만… 6월엔 차마 이 말을 못 했다. 최근에야 무지개다리를 건넌 리카 얘기를 하고 있다. 길게 말하는 건 아니다. 짧게 소식을 전하고 얼른 화제를 돌린다. 이 정도도 상당한 용기고 상당한 변화다.
06
이렇게 익숙해지고 있다.
그저 어떤 냄새는 괴롭다. 리카가 머문 입원실에선 어떤 지독한 냄새가 났다. 묵은 냄새가 났다. 꽤나 역한 냄새였다. 종일 그 냄새를 맡아야 하는 리카는 참 괴롭겠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리카와 함께 병원을 나서며 다시는 그 냄새를 맡을 일 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그와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후각은 즉각 반응한다. 어떤 중간 경로 없이 즉각 기억을 소환한다. 그 냄새를 맡는 동시에 나는 입원실에 누워 있던 리카를 떠올렸다.
그 어떤 냄새는 언제나 불시에 나를 찾겠지.
07
그래 이제 안녕, 49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안녕. 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