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요즘은 완전 동면기다. 잠이 부쩍 늘었다. 환절기여서만은 아니다. 해마다 이 시기면 그랬듯, 단순히 그렇게 잠이 는 것만도
아니다. 종일 멍한 상태로 지낸다. 그리고 수시로 잠든다. 잠을 자도 계속해서 밀려 오는 잠. 마치 이제까지 못 잔 잠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졸립고 또 잠든다. 단 한 순간도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일도 드물다. 계속해서 잠, 잠, 또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상태. 올해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대청소를 앞둔 시간…

 무려 5년 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엔 이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저도 안 믿습니다만;;; ), 이사 날짜를 25일로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밤새 이삿짐을 싸고, 뒷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 후 5년 동안 제 삶은 언제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 아니군요.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 제가 평생을 여유롭고 빈둥거리며 지낼 거라 믿었습니다. 모든 약속은 기억할 수 있는 정도고, 다이어리 같은 건 필요 없는 삶. 더 정확하게는 한달에 많아야 약속 한둘인 삶. 방에 콕 박혀 느긋하게 책을 읽는 삶. 알바와 학교, 그리고 책과 웹이 전부인 삶.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동시에 서너 가지 프로젝트에 알바와 원고 쓰는 것 정도는 바쁜 축에도 안 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알바와 원고 두엇, 프로젝트 한둘이면 그냥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 어떤 사람에겐 너무도 바쁜 것 같은 삶이 느긋하게 여겨지는 삶. 아니, 제 주변 사람들 상당수에겐 그냥 일상적이고 평이한 방식인 삶. 이런 삶을 살거라곤 단 한번도 예상한 적 없습니다. 이렇게 살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거라 믿었는데,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지내는 삶. 사실 전 지금의 삶이 바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만 골라서 하고 있는 걸요. 🙂

그리고 지금 저는 이사를 준비하기 위해 대청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밤새 대청소를 하고, 내일 낮엔 종일 잤다가 저녁에 알바를 가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청소를 조금이라도 미루기 위해 카페에 잠시 들러 블로깅을 하고 있습니다. 으하하. ;;; 5년 전이나 5년이 지난 지금이나 이사란 핵심어로 뭔가를 하는 건 변하지 않았네요.

참, 이번엔 포장이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도 제가 직접 포장하는 건 못 할 거 같아서요. ;;; 몇몇 사람들에게 물으니, 포장이사가 나쁘지 않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직접 이사를 하려면 박스를 구하고, 짐을 싸느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사 가기 전에 버려야 할 짐이 많으니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뭐, 원고료만 타이밍 적절하게 들어오면 포장이사비용 정도는 충분히 댈 수 있으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근데 왜 책이 아직도 안 오는 걸까요? ;;; ). 하하.

[길고양이]주절주절: 겨울, 피아노, 고양이-리카, 웹 접속

01
눈이 내렸다. 낮 12시 전후로 대충 30분 정도. 카페에 앉아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설렘과 우울이 흩날렸다. 바닥에 쌓이진 않았다. 젖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닥의 물기와 함께 셀렘과 우울도 증발할까? 하지만 결국 또 순환하겠지.

02
Keith Jarret의 The Koln Concert를 듣고 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 키쓰 자렛의 피아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지난 일요일의 추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였다. 바람이 심하게만 불지 않았다면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날씨였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쌀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추운 날씨. 그 날씨면 내가 깨어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름날의 더위에 죽어가던 내가, 겨울이 오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면 그제야 비로소 내 몸도 깨어나고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피아노 소리와 잘 어울려서 좋다. 나는 이 계절의 서늘함이, 푸른 빛이 감도는 햇살이, 피아오와 어울리는 차가움이 좋다. 무엇보다 키쓰 자렛의 피아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기쁘다.

03
어제 밤엔, 유섹인 강좌가 끝나 사람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느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귀가.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주변 쓰레기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 안도했다. 아직은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음식을 구할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음식을 챙겨 나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카노가 슬쩍 나타났다. 카노가 한참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리카도 나타났다.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음식을 먹으러 갔다. 리카와는 참 오랜 만이다. 거의 나흘 만인가? 그동안 통 안 보여 걱정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나 보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난 겨울 추위에 동사했는지, 로드킬이라도 당했는지, 동네주민의 혐오폭력에 아픈 건지, 행여 내가 준 음식에 아팠던 건지,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시간이 늦었을 뿐인 거 같다. 확실히 리카는 너무 예쁘다. 그리고 나와의 거리도 많이 줄었다. 예전엔 1.5미터 정도만 다가가도 서둘러 도망갔는데, 지금은 그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눈을 맞추는 정도다. 걱정이다. 음식을 먹다가 사람 소리에 움찔하다가도 내가 보이면 안도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냐옹이보다 리카를 더 좋아하는 나는, 이사갈 때 리카를 납치할까 하는 고민도 슬쩍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리카가 결정할 부분이다. 리카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04
날씨가 좀 풀리고 있다. 사흘 만에 웹으로 돌아왔다. 지난 이틀 동안 인터넷 접속이 원할하지 않았다. 행사에 학회 이사로 분주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몸은 웹에 있다. 그래서 웹이 그리웠다. 인터넷이 일상인 시대, 인터넷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 세대에겐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웹이 그리움의 공간이 되겠지. 웹이, 카페가,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고향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