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일상

웹서핑을 하다 “가해망상”이란 단어를 접했다. 어느 애니에 등장하는 용어란 말도 있고, 의학용어란 말도 있다. “피해망상”이란 용어와 대조를 이룬다고 이해하면 쉬울 듯 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망상과 달리, 누군가에게 가해하고 있다는 망상. 요즘의 내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용어 같아 웃음이 났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가해하고 있다는 인식. 그렇다고 가해망상이 있는데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일상이니까. 정말 피곤한 건 주변 사람들이다. 그러니 ‘실질적인 가해’는 “가해망상” 그 자체다.

나는 또 이렇게 별 내용 없는 글을 쓴다. 무언가를 쓴다는 건, 내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쓴 글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웹에서, 비단 웹만이 아니라 특정 기기를 통해 연결된 관계에서 글은 생존 여부를 알리는 신호다. 수신자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전파를 송신하는 행위다. 내가 그 어디에건 글을 쓴다는 건, 난 아직은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며, 특정 공간을 매개로 알고 지내는 이들은 그 글을 통해 나의 생존을 알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건, 그 내용이나 글이 풍기는 느낌과는 별개로 ‘난 여전히 잘 살고 있다’고 알리는 행위기도 하다. 글쓰기는, 그 신호를 수신하는 이들에게, 어쨌거나 아직은 글을 쓸 여력이 있음을 가장 먼저 알려 준다. 아울러 그 소재를 얘기할 수 있고, 그 소재를 얘기하려고 분투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알려 준다. 블로그 본문에 쓴 글이 건, 댓글로 쓴 글이 건 상관없이.

나는 살아 있고, 또한 잘 살고 있다. 몇 가지 피곤한 일들은 있지만, 그건 내 진부한 일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 체념이 아니라 부인할 필요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 단조롭고도 또 단조로운 일상. 이 정도면 무척 잘 살고 있는 셈이다.

비가 오는데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실내에 있다는 전제 하에. 흐흐.
나는 비 오는 날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비가 아주 조금 내린다는 전제 하에. ㅡ_ㅡ;;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한다, 비가 많이 오는데 밖에 있다면.

빗줄기가 내리는 날 바람이라도 불면, 정말 싫다.
바람이 꽤나 세게 불면 슬슬 짜증이 치민다.
오늘처럼 강풍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데 밖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몸에서 짜증이 넘쳐 흐를 것만 같다. 옷이 비에 젖은 게 아니라 짜증에 젖은 기분이 들 정도다.
강풍에 빗줄기로 골이 난 상태인데, 물이 가득 고인 도로를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면…. 애도.
위의 문장은 오늘 있었던 일. ㅡ_ㅡ^

동굴 속,

01
도서관과 같은 공간에 가면 4인 용 책상 하나에 한 명만 앉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와 같이 도서관에 가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누군가가 앉아 있는 책상에 앉지 않더라고요. 책상 당 한 명씩 앉고 난 후, 더 이상 혼자 앉을 수가 없을 때에야 누군가가 있는 자리에 앉죠. 그것도 대각선 자리.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시험기간의 도서관을 사용하기란 참 힘들어요. 사람들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거니와 혼자 앉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부득이한 경우 누군가가 앉아 있는 책상의 자리 하나를 차지해요. 근데 전 이게 참 불편해요.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자리가 남는 책상에 가방을 풀고 앉았는데, 계속해서 옆 사람이 신경 쓰이더군요. 제가 괜히 상대방을 방해한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요. 상대방의 공간을 부당하게 침해한 기분이라서요.

얼추 일주일 혹은 열흘 전엔 어떤 선생님에게 아는 사람을 추천할 일이 있었어요. 어떤 주제로 글을 쓰기 좋은 사람들을 추천해줬으면 한다는 말에, 제 멋대로 추천했지요. 전 그냥 추천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이, “메일을 쓸 때 너에게 추천받았다고 쓸게.”라고 말했어요. 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어요. 제 이름은 빼달라고.

만약 누군가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쓸 사람으로 저를 추천했다면 전 어떤 기분일까요? 어떤 부담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쓸 수 있으면 쓰고 아니면 사양하고요. 이걸 거꾸로 하면 상대방이라고 기분 나쁠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전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가 추천했기 때문이죠.

작년 말부터 이런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제 몸이 살얼음이에요. 혹은 살얼음을 조금 바꿔, 살유리거나.

02
상태가 상태이니, 얼추 한 달 전부터 블로그를 닫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습니다. 주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고요. 이제와 고백하자면 만우절 특집으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블로그 리뉴얼과 함께 폐쇄였어요. 만날 이런 바람으로 [Run To 루인]에 접속해요. 다만, 일시폐쇄를 한 번 경험하면, 습관이 될 것 같아 걱정이었죠.

그러다 며칠 전, 이곳은 저만의 공간이 아니란 걸 (마치 처음인 것처럼)깨달았습니다. 이곳의 호스팅 비용, 도메인 비용을 결제하는 사람이 저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저의 권리는 본문에 글을 쓸 수 있는 것 뿐이란 거죠.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더군요. 2005년 8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곳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저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죠.
(이렇게 쓰고 내일 폐쇄합니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