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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과 같은 공간에 가면 4인 용 책상 하나에 한 명만 앉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와 같이 도서관에 가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누군가가 앉아 있는 책상에 앉지 않더라고요. 책상 당 한 명씩 앉고 난 후, 더 이상 혼자 앉을 수가 없을 때에야 누군가가 있는 자리에 앉죠. 그것도 대각선 자리.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시험기간의 도서관을 사용하기란 참 힘들어요. 사람들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거니와 혼자 앉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부득이한 경우 누군가가 앉아 있는 책상의 자리 하나를 차지해요. 근데 전 이게 참 불편해요.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자리가 남는 책상에 가방을 풀고 앉았는데, 계속해서 옆 사람이 신경 쓰이더군요. 제가 괜히 상대방을 방해한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요. 상대방의 공간을 부당하게 침해한 기분이라서요.
얼추 일주일 혹은 열흘 전엔 어떤 선생님에게 아는 사람을 추천할 일이 있었어요. 어떤 주제로 글을 쓰기 좋은 사람들을 추천해줬으면 한다는 말에, 제 멋대로 추천했지요. 전 그냥 추천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이, “메일을 쓸 때 너에게 추천받았다고 쓸게.”라고 말했어요. 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어요. 제 이름은 빼달라고.
만약 누군가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쓸 사람으로 저를 추천했다면 전 어떤 기분일까요? 어떤 부담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쓸 수 있으면 쓰고 아니면 사양하고요. 이걸 거꾸로 하면 상대방이라고 기분 나쁠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전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가 추천했기 때문이죠.
작년 말부터 이런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제 몸이 살얼음이에요. 혹은 살얼음을 조금 바꿔, 살유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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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상태이니, 얼추 한 달 전부터 블로그를 닫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습니다. 주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고요. 이제와 고백하자면 만우절 특집으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블로그 리뉴얼과 함께 폐쇄였어요. 만날 이런 바람으로 [Run To 루인]에 접속해요. 다만, 일시폐쇄를 한 번 경험하면, 습관이 될 것 같아 걱정이었죠.
그러다 며칠 전, 이곳은 저만의 공간이 아니란 걸 (마치 처음인 것처럼)깨달았습니다. 이곳의 호스팅 비용, 도메인 비용을 결제하는 사람이 저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저의 권리는 본문에 글을 쓸 수 있는 것 뿐이란 거죠.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더군요. 2005년 8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곳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저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죠.
(이렇게 쓰고 내일 폐쇄합니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