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만 어두운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로엔 헤드라이트 불빛이 부신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통속적이고 진부한 풍경. 그 풍경이 처연하다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이며 달리고 있는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며, 아름다움을 느꼈다.

귀에선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흐르고 있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 서늘한 선율. 그리고 깨질 것만 같은 하덕규의 목소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오늘 아침엔 초승달이 떴다. 지고 있는 초승달. 아침 혹은 늦은 새벽의 하늘. 종이에 베인 상처에서 배어나오는 피처럼, 앙상한 초승달. 귀에선 시인과 촌장의 “새벽”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생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 벽 밑동아리에 붙어서 밤 새워 울고 난 새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 밤새 울고 난 새벽.

밤새 잠을 뒤척였다. 열댓 번은 더 잠에서 깨어난 것 같다. 바로 누워서 잠시 잠들었다가 오른 쪽으로 돌아누워 잠들었다가 왼쪽으로 돌아누워 잠들었다가. 이러길 반복했다. 그리고 6시에 잠에서 깼다. 밤새 뒤척였다는 게 꿈만 같았다. 정말 뒤척였는지 뒤척이는 꿈을 꾼 건지 헷갈렸다. 정신이 너무 멀쩡해서 뒤척이는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붉은 꽃

나는 숨을 죽이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으로 붉은 꽃이 피는 장면을 본다. 은빛 은은한 냄새가 코끝을 스쳐가고, 붉은 꽃은 내 삶의 한 사건을 기록한다. 한 송이 화사하게 피어난 붉은 꽃. 찬 공기 속에서도 붉게, 더 붉게 물드는 꽃 핀 자리. 나는 붉은 꽃 내음을 맡으며 시간을 기록한다.

추억은 완강하게 과거를 붙든다. 나는 피고 진 자리만 화사하게 남은 기록을 쓰다듬는다. 흔적만 남아 해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기록들.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이미 해석인 기록들.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나는 달콤한 향을 맡으며 지난 흔적을 해석하고 지금의 시간을 기록한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록들. 붉은 꽃이었다는 것이 낯설어질 시간 정도가 흘러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기록들.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나는 쌩긋이 웃고 있다. 하루하루 희미해질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단절과 이음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자리에서, 나는 어색한 듯, 반가운 듯 웃고 있다.

주저리: 불안, 웹, 앨범

01
불안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있다. 관계에서건 삶에서건 그 무엇에서건. 불안이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만약 지금 이 순간이 갑자기 재미가 없다고 느낀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고양이는 여전히 제 웃음소리를 흘리며 돌아다닐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할까?

02
오전부터 파이어폭스와 오페라 웹브라우저를 업데이트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업데이트라니, 재밌다. 뭐가 더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페라는 이전보다 좀 더 빨라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좀 웃긴 거 하나. 나의 메인 브라우저는 파이어폭스인데, 실제 웹 서핑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저는 오페라다. 흐흐. -_-;;; 사실 오페라가 여러 모로 편하고 좋긴 하다.

03
모과이(Mogwai)의 첫 앨범인 [Young Team]을 샀다. 마침 리마스터링에 보너스 CD가 들어간 한정판이 있어서 질렀다. 처음 들은 모과이 앨범은 [Rock Action]으로 이 앨범을 꽤나 좋아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앨범이다. 근데 [Young Team]을 듣고 있으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이렇게 멋진 앨범을 이제야 듣다니!

강허달림의 앨범 [기다림, 설레임]을 샀었다. 좋다. 매력적인 목소리에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듣는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아무 노래나 흥얼거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곡은 다소 느린 곡들(“미안해요,” “독백,”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지만 강허달림의 목소리는 앨범의 첫 곡 “춤이라도 춰 볼까”처럼 빠른 곡에서 더 빛난다.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매력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가수는 참 오랜 만이다.

정말 살 계획이었던 앨범은, 개인주문을 통해 구입한 어떤 앨범이다. 판단은 유보. 좋은데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이전 앨범과 스타일이 좀 변했는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도 종종 듣는다. 결국 좋아할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