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 음악 속으로 도망쳐 숨어 있기엔 내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봐주는 날은 있어도 결국은 끌고 간다. 나는 기꺼이 끌려간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도, 나는 할 일을 해야 한다. 꺽꺽대며 가픈 호흡을 밭으면서도 나는 끌려가길 자처한다. 끌려가다보면 다른 길이 나온다. 지금 경도된 상황으로 인해 놓치고 있는 다른 길. 다른 세상. 식각한 곳이 만드는 반사각의 조명도가 약해지는 곳.
[카테고리:] 몸에 핀 달의 흔적
넋두리
많은 글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고 있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다. 거짓말이다. 쓰고 싶은 말을 쓸 수가 없어 다른 어떤 이야기를 찾고 있는데 쓸거리가 없다. 그래서 쓰고 지우길 반복한다.
그저 음악이 없었다면 난 지금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음악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몇 번을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하지만 요즘은 니나(Nina Nastasia)를 피하고 있다. 얼마 전, 니나를 들으려다 알 수 없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냥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듣고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느낌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 느낌 이후로 피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피하고 있다. 지지(mp3p)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재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곧 듣겠지.
아침에 눈이 왔다. 나에겐 올해 처음 본 눈이다. 많은 눈이 내렸지만 이젠 다 녹았다. 덮어서 가릴 수가 없다. 햇빛이 빛난다. 사금파리 끝에서 반짝이는 붉고 비린 햇살에 눈이 아프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만 몇 번이고 되뇌고 있다.
붉은 꽃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 풍성한 붉은 꽃 아홉 송이 피었네. 황홀하고 달콤했네.
나는 숨죽이고 조용히 있었네. 그 공간엔 침묵만 감돌았네.
붉은 꽃 피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달콤했네. 너무 달아서 조금 매스꺼웠네.
그래도 좋았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기쁘기도 했네.
꽃 핀 자리.
꽃 진 자리.
다시 아침이 오고 나는 눈을 떴지만, 유예한 시간은 꽃 진 자리에서 똬리를 틀고 있네.
붉은 꽃 아홉 송이 피고 진 자리가 초라하게 빛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