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자신을 향해 바늘을 찔렀는데 그 바늘이 너무 길고 커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바늘에 찔리는 경우가 있다. 단지 나 자신만을 겨누었는데, 결과적으론 곁에 있는 사람도 피해를 보는 경우다. 요즘 나의 바늘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나도 잘 모른다. 조금 위험한 상태란 것 외에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론을 배운다는 건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건데, 난 아직 멀었나 보다.

내 모습

얼마 전 신문 인터뷰에서 어느 뛰어난 뮤지컬 배우가 “무대는 냉정합니다. 춤을 못 추는 사람은 걷는 것조차 어색하지요.”라고 말했는데, 바로 지금 내 처지를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 한참 괴로웠다. (…중략…) 그나마 위안은, 책을 내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내가 더 성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차피 준비된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할 수 있었는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런 생각은 자신을 괴롭히는 욕심이고 오만일 뿐이다. 지금 초라한(그러나 변화하고픈) 내가 바로 나인 것이다.
-정희진, 2005: 26-27

정희진 쌤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 서론을 읽다가 위의 구절에서 멈췄다. 딱 나의 상황이다.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닌데 아는 척 하려고 안달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든 인정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조금만 더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는데.”란 말로 지금의 초라함을 어떻게든 외면하려 하고, 그럼에도 인정하려하는 내 모습이 요즘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