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든 시간에 오는 문자나 전화

부산에서 혈연가족들과 살던 시절, 집에 있는 전화기는 말 그대로 집전화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핸드폰도 생겼지만, 누가 받을 지 알 수 없는 그런 집전화만 있었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의 집에 전화를 한다는 건, 누가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어떤 예의 같은 게 있었다. 일테면 밤 9시 즈음부터 아침 8시 즈음까진 전화를 하지 않는 것. 이건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자, 부모님들의 반응에 기인했다. 밤 9시 넘어서, 혹은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누군가의 전화가 오면,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하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받으셨다. 물론 이럴 경우, 상당히 긴급하거나 꽤나 중요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이 몸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학교로 서울에 와야 했을 때, 사실 핸드폰은 사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이 없으면 알바를 못 구한다”는 협박에 핸드폰을 사긴 했지만 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몇 명이 핸드폰 번호를 알던 시절이었나.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지금에야 이 시간에 전화가 오는 것 즈음 별거 아니지만, 그땐 깜짝 놀랐고 속으로 ‘아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전화람.’이라고 궁시렁거렸다. 부산 집에서 20년간 살며 몸에 익은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집전화는 몰라도 핸드폰으로 밤 9시에 전화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란 사실에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여전히 낯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밤 11시부터 아침 6시 사이에 전화건 문자건,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건, 이런 체화된 경험들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 몇 시에 잠들고 몇 시에 일어 나는지와는 별도로 이 시간은 “공식적으로” 잠든 시간이다. 자는 시간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한 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렇게 중간에 한 번 깨면 그 효과와 스트레스가 며칠을 지속하는 편이다. 일테면 중간에 한 번 깨면, 다음날 하루 종일 졸린다거나 며칠 동안 멍한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더군다나 그 연락이 그렇게 늦은 시간에 해야 할 만큼 급한 내용도 아닐 때, 스트레스는 더 심하고, 그 시간에 내가 자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랬다면, 종종 짜증도 밀려온다. 무슨 일을 해야 한다거나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일 경우, 연락을 받고 바로 확인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스트레스로 일 자체를 아예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글도 며칠 전에 늦은 시간에 온 몇 통의 문자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쓰고 있다. -_-;; 12시 넘어서 온 문자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새벽 1시 반 즈음에 문자를 보낸다는 건, 정말이지…. 어제부터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는데, 스팸으로 등록할까, 수신거부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도 나중엔 진짜 실행할 지도 모른다. 문제라면 스팸이나 수신거부 번호로 등록했을 때 나중에 취소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 크크크

방 계약 연장

앗싸, 집 계약을 연장했다.

그 동안 집 주인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고, 드물게 마주칠 때면 집주인의 표정은 별로 안 좋았다. 정말 1년을 더 살 거냐고 묻는 주인이니 반가울 리가 없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마주쳤을 때, 마침 계약서를 작성한 집주인은 1년 만 더 살 것을 재차 확인했고, 새로운 사람을 들였으면 방값을 올리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살던 사람이라 그냥 동일 금액으로 계약한다는 말도 했다. 아무려나, 다시 일 년을 여기서 살기로 했다. 이히. 다행이다.

2007 베스트

이틀간의 연휴동안 할까 말까 망설이다 안 했는데, 이웃 블로거인 키드님도 했고, 지구인님도 해서, 덩달아 하는 2007년 결산. 흐흐.

2007년 베스트 책과 논문;;
Susan Stryker “My Words To Victor Frankenstein Above The Village Of Chamounix: Performing Transgender Rage”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배수아 “훌”
[화이트 노이즈]
[올란도]
[육체에 새겨지다]

스트라이커의 글은, 구절, 구절이 구구절절 몸에 와 닿는다. 새로 읽을 때마다 이전엔 무심코 넘어간 문장들이 몸에 파고든다. 아아, 언젠간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프랑켄슈타인]은 정말 읽길 잘했다. 고전은, 언제나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배수아는,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이 더해가는 거 같다.
이러나저러나 영화와 달리 책은 리뷰를 잘 안 해서, 올 해 무슨 책을 읽었는지를 모르겠다는-_-;; 리뷰를 한 적은 없지만, 아옹님이 추천한 [화이트 노이즈]는 잔상이 오래 남고, 그래서 꼭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소설.

2007 베스트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스파이더 릴리(첫 번째, 두 번째)
열세 살의 수아
밀양(첫 번째, 두 번째)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려고 하니, 이미 몇 편의 영화는 오랜 시간을 되뇌고 있었다는. 따지고 보면 네 편의 영화중에 어떤 영화는 부족한 점도 많다. 그럼에도 몸을 흔드는 장면들, 상황들이 있을 때, 그런 장면들이 스쳐 지나갈 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소위 말하는 “현실”과 “환상”이란 구분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작품을 좋아하니. 흐흐.
2006년 결산 때, 빠진 영화가 [판의 미로]였지만 2007년 한 해를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자주 떠올린 영화가 [판의 미로]였다. 그렇다면 올해 2008년엔 2007년에 읽은 영화 중 어떤 영화가 오랫동안 몸에 파장을 일으킬까.

2007 베스트 음반
Nina Nastasia [You Follow Me]
Jolie Holland [Springtime Can Kill You]
The Cooper Temple Clause [Make This Your Own]

니나의 앨범을 빼면, 두 장의 앨범은 2006년에 발매한 앨범이지만 2007년에 구매했으니, 2007년 베스트에. 흐흐.
니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 졸리 홀랜드의 앨범에 수록된 “Nothing to Do But Dream”은 한때 몇 번을 반복해서 들을 정도였지. 정말, 꿈꾸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가 없던 그때.

2007 베스트 공연
2007.03.07. 잠실실내체육관 뮤즈
2007.07.29. 송도유원지 펜타포트, 뮤즈

아아, 정말 한 해 무려 두 번이나 뮤즈Muse의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이건 행운도 보통 행운이 아니다. 올해도 오려나? 오면 무조건 갈 텐데.

+한국에 올 가능성은 없지만 왔으면 하는 아해들은, Nina Nastasia, Cat Power, The Cooper Temple Clause, The Music.
++지난 공연에 못 갔기에 다시 왔으면 하는 아해, Tool ㅠ_ㅠ

2007 베스트 삽질 사건
2007.10.16. 모 대학 특강.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덕분에 많은 깨달음을. 흑흑흑.

2007 기억에 남을 사건들
차별금지법과 긴급행동,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
종시 통과와 석사수료.

지구인님의 글처럼, 2007년은 차별금지법 혹은 긴급행동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도 있을 정도로 기억의 결이 다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 활동가들을 만났고 LGBTQ 캠프를 기획 중이니, 이보다 중요한 일도 없다.

다른 한 편, 스스로도 믿기진 않지만, 아무려나 종시를 통과했고 석사도 수료한 거 같다. 아아, 이제 논문이구나.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