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연구실에 놀러왔다. 같은 건물 혹은 인접한 건물에 상주하니 자주 만날 것 같으면서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 그날 저녁엔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루인에게 “루인이 저번에 우울증과 관련한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루인이 우울증인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물론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다른 친구들 중엔, 우울증인 친구는 기본이고 조울증에 또 다른 진단의 친구도 있다고, 아침에 한 친구로부터 이와 관련한 전화를 받고 종일 우울해 하고 있다고. 그러며 다시 물었다. “루인은 우울증 아니지 않느냐”고. 우울증일리가 없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우울증이 아니라고.
이런 말에 뭔가 다른 말을 할까 했다. 우울증을 표현하는 증상은 여러 가지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우울증이 아닌 건 아니라고, 또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우울증은 다른 것 같다고. 등등의 말들을 할까 했지만 결국 제대로 안 했다.
친구가 바라는 건, 그냥 “아니에요”였다. 그렇다고 “아니에요”라고 대답을 한 건 아니지만. 친구가 바라는 건, 자신의 친구 중에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이었다. 친구가 하는 얘길 듣다가 이런 느낌을 받았다. “우울증 아니에요”란 대답을 통해, 어떤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주변의 친구들이 거의 다 우울증이라, 때론 그 걱정으로 종일 안절부절 못 하니까, 적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루인 만은 우울증이 아니길 바라는 어떤 심정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친구 중에 누가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를 찾다가, 우울증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없다는 “통념”을 빌려, 루인을 떠올렸으리라.
뭐, 따지고 보면 루인이 의학적으로 우울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으니까. 한 사람의 병은 의사를 통해서만 인지 받을 수 있는 세상이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도 우울증인지의 여부는 언제나 의학이 결정해주시다보니, 루인이 우울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 “이다”라고 말하나 “아니다”라고 말하나 마찬가지다. 어제 어딜 갔다가, 친구와 나눈 얘길 떠올리며 어떻게 대답해도 마찬가지라면, 그냥 “아니에요”라고 대답할 걸 하는 뒤늦은 안타까움에 빠졌다.
사실 그 친구도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은 적이 있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