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날씨: 맑았다가 흐림. 가끔 비.

아침 5시 53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려 12시간 가량을 잤다. 중간에 서너 번 정도 깨어나기도 했지만. 전날 늦은 회의로 피곤했고 그 전의 피로까지 겹쳐 있었으니까. 회의 때도 12시가 넘어가면 졸기 시작하는 루인이니 밤새 회의를 했다는 말은 루인에겐 참 민망한 말이다. 정말 단 한 번 조는 일 없이 회의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은 몸이 기억하는 리듬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제 새벽 4시, 회의가 끝나고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타지 않고 걸었다. 몇 번 택시를 타며 대충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길치에 방향치인 루인이 택시 몇 번에 길을 알았다는 말은, 회의를 한 사무실에서 루인이 머무는 사무실로 가는 길이 일직선이란 의미이다. 반쯤은 조는 상태로, 반쯤은 Kevin Devine을 듣는 상태로 걸었다. 그 시간에 걷기도 참 오랜만이다.

어제 오전엔,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나 잠깐이지만 얘기도 나눴다. “오랜” 만이라고 적지만, 루인의 시간 개념으론 오랜 만이란 느낌은 별로 안 든다. 다만, 그 친구와 소통하던 방법의 하나가 (루인의 입장에선 서실상) 사라졌기에 이제 오프라인으로 만난다면 정말 오랜 만일 지도 모른다. 메일을 제외하면 이제 오프라인 뿐이니까. 사실, 루인의 입장에선 블로그 이웃이란 느낌으로 그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블로그가 그 친구와 관계를 맺어가는 정말 소중한 방식의 하나였기에 많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얘기를 들으며 정말이지, 루인이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헤어질 때, 어떤 인사말을 할까 하다가 듣는 입장에선 너무 슬픈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다른 말로 바꿨다.

저녁엔 일찍 玄牝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잠을 자는데 여러 번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에서 쥐가 나는 느낌에 깨어나기도 했다.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나 라디오를 듣다가 섬머타임제와 관련한 내용이 나왔다. 보도하는 기자가 섬머타임제를 실시하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기 위해선 6시 15분이 아니라 사실상 5시 15분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손석희는 “5시 15분에 방송을 준비해야 하는 건 그렇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피식 웃었다. 웃었지만, 이 말이 가장 와닿는 말이기도 했다.

어제 잠들 때부터 약간 불길했는데, 결국 알러지성 비염이 터졌다. 코에 화장지를 쑤셔 넣고 버티고 있는 시간. 잠이 오지 않는 비염약이지만 부작용으로 잠이 온다는 문제의 그 약을 먹고 버티고 있지만, 약발이 듣지 않고 있다. 읽어야 할 게 산더민데… 졸립다;;;

[몽테크리스토퍼 백작]에 보면, 당테스가 옛날 애인의 집에 갔지만,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가 준비한 음식을 먹음과 먹지 않음, 누군가와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런 행동들, 음식을 둘러싼 이런 행동들의 의미를 떠올리고 있다. 조만간에 별도의 글을 쓰려나?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채식주의자에겐 의미가 또 달라지기도 한다. 아마 조만간에 별도의 글을 쓰겠지 싶다. 조만간이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새가 우는 연구실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가는 한겨울 눈이 오는 밤이나, 그렇게 눈이 쌓여있는 시간에 느낄 수 있다. 지난겨울, 연구실 창문 밖에 있는 나무들이 눈꽃을 피웠을 땐 정말이지 북극에 와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어릴 때 읽은 소설의 한 장면처럼, 북극의 어느 지역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은 나무로 만든 집이 엉성해서 벌어진 틈 사이로 눈보라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런 시간이 아니어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정말이지 매일매일 감동의 순간이다. 모든 학교의 건물이 그러하진 않겠지만,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건물 뒤에 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연구실 뒤엔 산 혹은 언덕이 있는데, 산 혹은 언덕의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들이 사시사철 변해가는 모습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계절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죽어 다시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날 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처럼 언덕 혹은 산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건, 그저 피곤해서 잠시 눈을 쉬려는 행위 이상이다.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북향인데, 북향이기 때문인지, 북향임에도 불구하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서늘한 편이다. 겨울에야 좀 춥다고 해도 여름 같은 날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아직도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연구실 문과 창문을 열어두면 그렇잖아도 낮은 온도의 연구실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서 더 시원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떤 땐 긴팔 겹옷을 준비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긴팔 겹옷이라니!

비록 여러 날 전, 히치콕의 [새]를 볼 때는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럼에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짜 자랑거리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한데) 하루 종일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겨울만 아니라면 혹은 새들이 머무는 시기이기만 하다면, 하루 종일 새소리가 들린다. 뻐꾸기 소리부터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 그래서 요즘 같은 시기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비록 음질이 많이 안 좋다고 해도 스피커로 작게 음악을 틀어서 새소리와 함께 듣는 편이다. 새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의 즐거움은, 서로의 소리와 잘 어울리기만 한다면, 이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들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지금의 고민을 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창 밖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창틀에서 뛰노는 참새나 다른 새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꺄릇,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절로 의자에서 일어나곤 한다. 새를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음. 물론 이런 반응에 새들은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그럼 곧 미안함을 품지만, 종종 걸음으로 새들이 뛰어노는 창틀. 그리고 종일 새소리가 들리는 공간.

몸이 조금 피곤함에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건,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이 이런 공간이기에 가능하겠지.

한숨을 돌리다

오늘로 수업 한 과목이 끝났다. 이제 18일에 있을 개별연구 수업을 준비하면 된다. 기말 레폿은 개별연구 끝나고 준비하면 되고.

며칠의 정신없는 시간. 워낙 바쁜 걸 싫어해서 어지간해선 약속을 잡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서 지내는 걸 선호하기에, 요 며칠은 나름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블로깅할 시간은 따로 있다는 루인이었는데, 블로깅은 커녕 메일을 제대로 확인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니.

답장을 보내야 할 몇 통의 메일은 내일 오전에. [Run To 루인]에 쓰고 싶어서 간단하게 메모만 한 글은 내일부터 조금씩.

그나저나 기말 레폿 주제는 뭘로 할까? 텍스트 분석인데, 최근에 읽은 히치콕의 [새]가 꽤나 흥미롭다. 아참. 내일은 영화관에 갈까? 영화관에 못 간지 백만 년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