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배가 고픈데 입맛이 없으면 그냥 입맛이 생길 때까지 버틴다. 그러다 후회한다. 밥을 먹으려고 할 땐 이미 허기에 지친 상태.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 보는 사람은, 종종 루인에게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174.5 정도인 키에 51±3인 몸무게.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모른다. 살이 빠졌는지 더 쪘는지.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뿐. 마지막으로 몸무게를 잰 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루인의 키와 몸무게를 아는 사람 중에서) 루인을 “남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말랐다고, 그렇게 약해서 어떡할 거냐고 말하고, 루인을 “여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말랐다고, 날씬해서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내가 무척이나 뚱뚱하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무단으로 침입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연구실에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항상 웅크리거나 움츠러든다. 그래서 체중계엔 안 올라간다. 그러니 현재 정확하게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사실은 잘 모른다. 그저 고등학생 시절 산 옷을 지금도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겠거니, 추측할 뿐.

입맛이 없는데 김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며칠 전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가며, 사실 상 친구가 끌고 갔는데, 간단하게 협박했다. “밥을 제때 안 먹으면 박사논문 못 쓴다”고. 그 말에, 허걱, 하며 잘 챙겨 먹어야지, 했다. 뭐, 그래봐야 그때 잠깐이지만. 아직 석사논문도 안 쓴 주제에 벌써부터 박사논문이냐 만은, 그래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멋쟁이들만큼의 실력이나 수준은 안 된다 해도, 루인같은 평범한 공부쟁이 한 명 정도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

울음에 체한 상태라도 짜부라진 상태는 아니니까, 아직은 괜찮다. 숨을 곳은 어디에나 있고.

여름이 오고 있다: Nothing To Do But Dream

잠들고 싶어…

I would shut my eyes but I’ve got promises to keep
길을 걸을 때면 눈을 감아. 눈을 감고 태양을 보면, 비로소 눈부시다는 걸 깨닫지. 여름이 오고 있어. 해 마다, 여름이 오는 시간을 깨달으면 불안해. 안절부절 못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할 수 있는 것 없이 속수무책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야.

처음부터 여름을 싫어하진 않았어. 그저 몇 해 전, 그 여름들을 보내고 나서지. “나는 펑, 하고 터질 거야”라는 말을 종일 중얼 거렸던 여름, 하루 종일 냉장고를 상상했던 그 여름, 온 몸에 꽃이 필거라고, 곰팡이 꽃이 온 몸에 필거라는 강박에 빠져 있던 여름. 그 몇 번의 여름을 보내고 난 이후, 여름이 온다는 걸 깨닫는 건 일종의 소름끼치는 순간이기도 했어. 피하고 싶어.

I can’t go crazy and I can’t get sane
물론 단 한 번도 미친 적은 없지만, 미치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종종 지난 어떤 시절은, 적어도 제정신은 아니었구나, 싶어. 지금의 내가 그렇기도 해. 지금의 내가 미친 상태인지 제 정신인 상태인지 누가 알겠어. 몇 번의 여름이 더 지나고 나서 오늘 이 순간을 어떤 광기에 시달리고 있었구나, 라고 중얼거릴지 또 누가 알겠어.

응, 그래. 미친 적도 없지만 제정신으로 견디지도 못하고 있는 순간. 이렇게 무언가를 쓸 수라도 없었다면, 정말 미쳤을까? 정말 냉장고의 상상을 실현했을까? 그때 사실은 온 몸에 꽃이 피었던 걸까?

I’ve got nowhere to go but to sleep…
(…)
I’ve had nothing to do for years but dream

잠들고 싶어. 잠들면 좀 괜찮을 것 같아. 그냥 오랫동안 꿈을 꾸고 있었다고…. 환한 백일몽. 태양을 마주보며 꾸는 꿈. 좀, 자고 싶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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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사는 Jolie Holland의 “Nothing To Do But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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