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책, 정희진선생님 강연

오랜 만에 숨책에 갔다 왔다. 물론 지난 주인가 지지난 주인가 갑작스런 알바로 몇 시간 있다 오긴 했지만, 책을 사러 숨책에 들리긴 참 오랜 만이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로는 거의 안 갔었다. 1학기 초엔 그래도 꾸준하게 들리다가 어느 순간 바쁘다는 이유로 뜸하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숨책에서 갑작스런 알바가 필요하면 루인에게 우선적으로 연락을 줬고 그럼 또, 별일이 없는 한,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가서 일하곤 했다.

이번엔 그저 한 번 들리고 싶었다. 물론, 예전에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무슨 책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이 들어왔다는 전화가 왔기에 간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해도 오랜 만에 가선 여유있게 책을 둘러보고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숨책에 정말 가고 싶은 바람을 품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정희진선생님 강연 소식을 접했다. 작년, 한겨레21에서 주최한 “거짓말”에 이어 올해는 “자존심”으로 한다고 한다. (정보는 여기로) 만약 “자존심” 강좌에 간다면, 작년 여이연 강좌에서 뵙고 처음 뵙는 셈이다. 어떻게 반응하실까? 작년 “거짓말” 강좌에선 “당신 내 강의 50번은 듣지 않았어?”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어떻게 반응하실까? 물론 루인을 기억한다는 가정 하에서지만.

일시: 2007.04.02.월. 19:00-21:00
장소: 연세대학교 위당관
주제: 누구의 자존심? 자존심의 경합

이제는 자주, 매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숨책에 가야지, 했다. 가면, 헌책의 냄새에 뭔지 모를 편안함이 있으니까. 그곳 사람들도 좋고.

달콤함

미안해요.
하지만 매일 달콤함에 빠져들고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온 몸에 화살이 박혀요.
고개를 젖히면 단두대의 칼날이 목으로 떨어지죠.
뎅강.

이런 망상 속에서 달콤함에 빠져 들어요.
쌩긋 웃으면서, 미안해요…

요즘의 생활이 불안해요. 원고료가 들어오는 글의 매체가 발간되어, 읽다가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폭주하는 기관차”라니, 이런 진부하고도 오래된 표현이라니. 요즘 시대라면 “KTX같다”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영화에서 밖에 본 적 없는 기관차인데, 글을 읽다가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최근에 쓴 글이 다 그래요. 마구마구 질주하는 것만 같아, 글을 읽고 나면 숨이 차요. 종종 숨이 막힐 정도로 빨리 달리고 있다는 느낌. 짧은 글 한 편인데, 원고지 16매 분량의 짧은 글인데 글을 읽고 나면 글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막힐 것만 같아요.

눈을 감으면 또 어떤 망상에 빠져들다, 그 어떤 환각 속에서 헤매다가, 습관처럼, 미안해요, 라고 중얼거려요. (그런데 누구에게? 그런데 무엇이 미안해?) 자꾸만 미안해,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자꾸만 망상과 환각 사이, 상상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느껴요. 뭔가 뒤죽박죽 엉키고 있어요.

이 근원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싫어. 매번 근원을 알았다고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회피하고 싶은 것 뿐이란 걸 알아.
closed.
closed.
closed.
매번 이 유혹에 빠져…

(당신은 나의 태양 혹은) 태양을 둘러싼 망상들

관용어구로서 “당신은 나의 태양”란 말이 있다. 이 말이 단순히 내 인생에서 당신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란 의미 만이 아니라, 내 삶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듯, 나는 당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어요… 아니 에르노는 그의 소설에서 청소를 할 때 청소기 소리에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봐 청소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아주 빨리 처리했고 누군가 길게 이야기라도 걸어오면 속으로 분노를 품었다고 했다. 그러며 얼른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기다렸다고. 물론 그 전화는 기대했던 날마다 오지 않았고 언제나 실망 혹은 절망의 언저리 머물 즈음에야 비로소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당신은 나의 태양, 나의 삶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아멜리 노통의 [오후 3시 반]이었나? 얼추 이 비슷한 제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시간 즈음의 어떤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 소설. 루인은 오후 4시 언저리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경향이 있다. 뭔가 공터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시간이랄까. 루인이 태어난 시간은 오후 4시 20분 즈음인데, 농담처럼, 태어나기 싫어서, 태어난 것이 트라우마라서 그래, 라고 중얼거리며 낄낄 웃은 적도 있다. 하지만 오후의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더 더디게 흐른다.

언젠가 적은 글에, “진한 소금물이 코에 들어간”, “비염 걸린 코감기 같은 시간”이란 식으로 쓴 적도 있다. 오후 시간의 태양볕은 소금병정들이 루인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후 4시 즈음의 태양볕을 쬐고 있으면, 오후 4시 언저리의 시간을 지내고 있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주기적으로(주기적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주기로) 아침마다 온 몸에 불화살이 촘촘하게 박히는 환상 혹은 망상에 빠지곤 한다. 석궁으로 쏜 불화살이 몸에 박히는 느낌. 그 느낌은 딱히 고통스럽다거나 괴롭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그렇게 루인의 몸에 박혀가는 화살들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매혹적인 달콤함이기도 하다. 잠에서 깨어 앉아 있을 때면, 화살이 날아와 몸에 박힌다.

…요즘이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