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상태

낮에 사무실(연구실?)에 있는데 이맘이 물었다. 이거 먹어도 되요? 순간 멍해졌다. 왜 물어보는 걸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맘이 산 것 아니었나. 머뭇머뭇하다 깨달았다. 어제 세미나를 위해 루인이 산 것이란 걸.

어젠 좀 더 심했다. 여이연 강좌 중간에 쉬는 시간. 멍하니 몸앓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진하게 퍼지는 커피 향.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커피를 쏟아 루인의 물건 일부가 젖었다. 그 장면을 보며, 아, 그렇구나, 했다. 그냥 습관처럼 화장지를 꺼내 닦고 있는데 상대방이 자꾸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가보다 했다. 루인에겐 아니거니 했다. 그런데 몇 번 그 소리를 듣다가 그 말의 수신인이 루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루인에게 왜? 뭔가 잘못되었나. 그러다 한 삼십 분이 지나 강의 중에 깨달았다. 아하, 커피를 쏟았고 루인의 물건이 젖어서 그랬구나. 괜찮다는 말을 했어야 했구나. 하지만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커피를 쏟았고 물건이 젖어있다는 것이 무슨 의민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냥, 멍~

가방에 따로 빼놓고 다니는 물건은 개념만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문답

개인적 문답 바톤이어가기

이맘 님께 받았습니다—————————————————
*질문에 앞서서 답변자에게 미리 일러두고 싶은 것들. (made by. 되리님)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의 없는 답변은 질문자를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최소한 한 질문에 두 줄이상의 답변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또, 어느 글을 참고하시오. 이런건 싫어.그리고 답변의 글들은 디자인을 마음대로 편집해도 좋지만
질문만은 돋움체 크기12, 굵게가 적용되어있고 ‘개인적’에 핫핑크가 적용되어있는 것은
고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00번에도 명시해 두었지만 바톤을 넘길 때 ‘이웃 아무나’라는
것은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질문을 작성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이웃공개로 되어있으니까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다고 그냥 복사해가는 일은 없도록 해줘.
이웃끼리 개인 적인 것을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서론이 길었지?이제 답변을 시작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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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사무실에서 이맘이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구경하다가 덜컥 받았다. 옆에서 끼어들다가 참견하는 재미에 하고 싶어졌기에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_-; 크크크. 하지만 이 질문을 만든 사람은 네이버 블로그 사용자, 루인은 태터툴즈 사용자. 그러니 이웃 같은 거 없어요. + 다 쓰고 나서 알림글을 읽으니 몇 가지 설정을 유지해달라고 하는데 태터로 넘어오면서 그것이 루인인 이상 너무 힘든 요구사항이에요;;

01. 이름, 나이, 사는 곳, 학교, 신체사이즈 등 개인적인 것을 말해줘.

루인.
정신 연령은 16살, 중학생 시절을 상징하는 나이. 채식을 시작한 것도 루인에게 가장 큰 흉터로 남은 일이 생긴 것도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시기도, 모두 이 즈음.
사는 곳은 玄牝.
이제 대학원 입학을 기다리고 있고 채식(주의)자, 트랜스/이반queer/비’이성애’자, 울기 좋아하고 자뻑 기질이 은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기도 하지용~.
키는 174 정도에 몸무게는 52에서 왔다 갔다, 신발사이즈는 255.
“진보”인 척 하는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언론을 별로 안 좋아하고
마치 “개인”적인 것, 사회와 유리되고 정치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이런 식의 질문 구성을 별로 안 좋아하는.

02.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너무너무 많아요. 조용필, 조규찬, 이승철, 장필순, 이상은,
Muse, Nina Nastasia, Portishead 등등 적으려면 지금껏 들어온 모든 음악인들을 다 적고 싶어요.

03.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은?

보라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을 좋아하지만 그게 어떤 색인지는 잘 몰라요. 누군가 보라색이나 노란색을 보여주면서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몰라요, 라고 답하겠지요.
검은색은 좋아해요. 대충은 어떤 색인지 알아요. 종종 헷갈리기도 하지만.

씨네21 539호에 “외눈박이 경제학과 색맹 정치학”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이 제목을 읽고 경악했지요.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언어들로 제목을 쓸 수가 있지, 하고. 그래서 한겨레를 별로 안 좋아해요. 가끔은 한겨레가 미국의 북부 백인 같다고 느껴요. 미국 남부 백인은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하지만 북부 백인은 아닌 척 하면서 차별한다고 말콤 X가 말했다더라고요.

04.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타입은? (이상형도 괜찮아.)

집단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타입도 있나요?
변태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루인을 자극하는 사람을 좋아하고요.
그러니까 굳이 몸을 구분해서 표현하자면 뇌를 자극하는 에로틱한 사람을 좋아해요.

05.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타입은?

“집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타입은 폭력적인 사람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타입은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
언젠가 시간 약속 때문에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론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을 너무너무 싫어해요. 그 전까진 시간 약속이야 늦어도 그만이었다면 그 후론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일단 불신부터 하는 경향이 생길 정도죠.

06. 개인적으로 평생 꼭 해보고 싶은 것, 그리고 지켜야할 것은?

그나저나 집단적으로 평생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누구와 해보고 싶은 것일 까나. 사회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있으려나.
암튼 평생 하고 싶은 일은 공부. 그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평생 새로운 자극의 에로틱에 빠져들고 싶어용.
지켜야할 것은 없어요.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거.

07. 개인적으로 가방에 언제나 넣고 다니는 물건은?

한국 사회에선 언제든 주민등록증이나 신분증을 가지고 다닐 것을 요구하지요. 불신검문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이 큰 소리 치거든요. 모든 국민이 범죄자이거나 잠재적인 범죄자인 나라랍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쨌거나 루인의 가방에 항상 있는 건, 다이어리, 수첩, 검은 색(으로 추정하는) 노트, 요즘은 [Gender Outlaw]란 책, 시장바구니 삼아 쓰는 손가방 두 개, 전자사전, 몸에는 지지(mp3p), 그때그때 읽고 있는 책,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 필통, 안경, 핸드크림, 립글로스와 돈돈이라는 필통, 화장지, 손거울과 기름종이, 그리고…

(이맘이 할 때 옆에서 참견했던) 몸에 탑재하지 않고 가방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 개념
-때론 玄牝에 두고 다니기도 한답니다.

08.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궁극의 목표는 뭐라고 생각해?

몸이 즐거운 언어로 발화하는 거.
근데 한국 사회는 이런 걸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대책 없는 민족주의나 ‘남성’연대가 궁극 목표 같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

09. 개인적으로 졸리거나 슬플 때, 기쁠 때 듣는 음악은 뭐야?

집단적으로는 아리랑이려나, 월드컵이나 축구할 때는 오 필승 코리아?(올 6월은 또 다시 공포겠네.)
졸릴 때는 자야지요. 졸릴 땐 무슨 음악을 들어도 잠들거든요. (한땐 판테라를 자장가로 듣기도 했어요.)
슬플 땐 루인이 좋아하는 음악, 특히 Muse와 Nina Nastasia, Portishead. 이렇게 듣지 않으면 위로가 안 돼요.
기쁠 때 듣는 음악이라니, 모르겠어요. 하지만 Nina Nastasia를 듣고 있으면 달콤함 절망과 고통에 빠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10.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아서 평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은?

집단 기억은 언젠가 융이 집단원형인가 뭐라고 했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 같은데 그게 뭘 까나…흠…모르겠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좋은 의미라면 1990년의 어느 날, 그 날이 1990년대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픈 기억도 포함한다면 S 다이어리라도 쓸까?

11.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의 목표는?

별로 그런 거 없는데.

12.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패션은? 그리고 브랜드?

집단적으로 좋아하는 패션이 있을 수 있을까, 했더니 힙합 동아리에선 힙합 패션을 집단적으로 좋아하려나. 하지만 그 내부에서도 차이가 많던데. 모두가 힙합으로 입는 것도 아니고.
그럼 한국 사회가 좋아하는 패션은 어떤 걸까나.

딱히 좋아하는 패션이라면 그냥 대충 얇고 헐렁하게 입는 거. 두꺼운 옷을 별로 안 좋아해요.
브랜드는 글쎄, 언젠가 인터넷으로 우연히 산, pepe jeans라는 상표의 바지가 두 벌 있는데 편안하고도 루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좋아하는데 파는 곳이 없더라고.
없길 바라고 없으니까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크큭

13.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만약 된장국이나 김치를 대답하면 어떤 범주에 포함될까.
사회적인 맥락과 분리되는 개인이 있을 수 있을까.

암튼 좋아하는 음식은 면류. 과일류.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식물/생명을 음식으로 환원하는 폭력이지요.

14. 개인적으로 꼭 혼자서 다녀오고 싶은 곳은?

지옥. 차마 친구랑 같이는 못 가겠다.
(나름 착하답니다;;;)

그나저나 이 질문은 혼자서는 다닐 수 없는 사람을 배제하고 있어요.
병이 깊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사람, 이른바 ‘장애’라는 범주에 들어가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인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등등.
혼자서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15. 개인적으로 흡연과 음주에 대한 생각은?

이런 “개인적” 질문의 문제는, 흡연과 음주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그 사람의 생각을 묻는 것이지 그 사람이 속하는 집단의 생각을 대표해서 묻는 것이 아니잖아. 누가 길거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데 대한민국 사람은 말이야, 하면서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의 대표라도 되는 냥 답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그러니까 질문에 “개인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을 과잉대표하고 있다는 거지.

암튼 술은 전혀 안 마시고 담배는 끔찍하게 싫어해요.
루인은 알러지가 있는데 그래서 몇 번 응급실에 실려간적이 있지요. 알러지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 의사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호흡이 곤란하지 않나요?” 랍니다.
알러지란 것은 때로 삶과 죽음의 불분명한 경계지요.
루인은 알러지성 비염도 있답니다. 이런 루인에게 담배 연기가 무엇을 의미하겠어요.
알러지가 아니라 해도 냄새가 너무너무 싫어서 싫어해요.

16. 개인적으로 집에 혼자 있을 때하는 일은?

매니큐어 칠하기. 빈둥거리기.
울기. 나스타샤랑 온라인으로 빠져들기.
그리고 이런 글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것들.
아항, 그렇담 이건 집단적으로 답해도 비슷할 수도?

17.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생활은?

없는 걱정 만들어서 걱정하기
자학하기
공상의 세계에 빠져선 배시시 웃기
만두 배게 사이에 끼어있기

00. 마지막으로 바톤을 넘겨줄 이웃 사람 5명 이상 적어줘.
(성의 없게 ‘이웃 아무나’ 라고 하면 난 울어버릴지도…)

울어버리세요.
이웃제도가 없는 블로그도 있답니다.

돈, 눈,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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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탁기를 주문하고 돈이 남았다. 간신히 맞춘 금액이었는데, 10% 할인쿠폰이 생겨서 그 만큼의 금액이 올앳카드에 남았다. 무얼 할까 한참을 갈등하다가 책을 사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바쁜 와중에도 신나는 몸으로 교보에 들렀다. 계획한 책을 사고 계산대로 가는 순간, 아하하, 카드를 안 챙긴 것이다. 바보바보바보. 순간 아찔함에 멍해졌다. 그렇잖아도 현금이 부족한데 안 산다고 할 수도 없어 그냥 샀다. (흑, 찾아야 할 제본 책이 한 권에, 할 예정인 책이 네 권인데ㅠ_ㅠ 아, 루인이 책을 읽는 습관 때문에 출판사 판본과는 별도로 제본할 수밖에 없는 책이 있다.)

이 안타까움은 여이연 강좌를 듣고 玄牝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발생했다. 양말이 11켤레 4,000원에 파는데, 엉엉, 지갑에 4,000원이 없었다. 양말 사고 싶었는데. 잉잉잉. 정말 순간적으로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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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연 강좌를 듣고 나오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디스 버틀러 강좌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리티와도 관련 있는 내용으로, 신난 몸으로 듣고 나오는데 눈이라니. 너무 좋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데, 아콩, 눈이 눈으로 들어가 질끔 눈을 감았다.

같이 있던 분의 표현처럼, 뭐랄까,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겨울 들어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 밖에서 눈을 맞고 있기도 처음이었다. 어디선가 캐롤이라도 들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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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혼자 남아, 지하철을 갈아타는 길에 귀에선 [푸른새벽]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걸으며 유리遊離했다.

음악을 듣고 있을 때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자주, 세상과 유리하는 상태에 빠진다. 마치 영화에서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는 장면처럼 루인 밖의 세상은 유리창 너머의 다른 세상인 듯한 느낌. 루인은 길에서 듣는 음악을 O.S.T.라고 부르곤 하는데, 유리창을 통해 세상과 괴리를 느끼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끼면서 그 장면에 빠져들어 바라보는 관객의 느낌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이대로 증발하고 싶은 유혹/충동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