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보기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26편짜리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았다. 그럭저럭 재미있고 가끔 울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종종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엉뚱한 ‘유머’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배고파서 쓰러진 것이라는 식의 유머는 한편으로는 재미를 유발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감정이입을 끊어 버리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유머가 좋아서 그런 ‘반전’에 깔깔 웃기도 하지만 웃고 나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진월담 월희>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지만.

TV판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껏해야 하야오나 에반게리온(TV판 포함) 정도를 본 수준이었다. 받아서 보는 동영상도 거개가 영화였고 가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었지 TV판 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을 기해 TV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그것도 완결판으로 몰아서 하루나 이틀에.

몰아서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한 편, 한 편 나눠서 보는 것이 시간을 내기엔 더 좋은 편이지만 작정을 하고 시간을 내서 보면 흐름이 끊기지 않고 감정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어서 즐거움이 배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만큼 아쉬움도 큰데 한 순간의 몰입이 끝나는 때의 허전함 때문이다.

그래서 또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중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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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몸 안을 타고 놀던 글을 썼는데, 무심결에(!) 날려 버렸다. ㅠ_ㅠ
의욕상실로 다시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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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난 조교 생활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생활이 잡히고 있다. 몸의 패턴이 생기고 시간을 타고 놀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이번 주가 지나야 되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놀 수 있는 상태가 되어 간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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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해 지고 있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니다. 흔한 일이라서 딱히 더 적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은, 조교 일을 끝내고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양볕이 너무도 넓었기 때문이다. 시야를 가리며 몸을 감싸 버린 태양볕에 잠시 방향을 잃어 버렸다. 위치를 잃어 어디로 가야할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 버렸다. 길 위에 서서 잠시 멈춰버렸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지. 몇 번,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놓친 기억을 찾아 이어 나갔다.

아픔에 우선하는 부끄러움

며칠 전 스노우캣의 그림일기를 보곤 “맞아맞아”를 연발했다.

지난 봄 즈음이었나, 쉬는 시간에 강의실을 이동하던 길에, 넘어질 길이 아니었음에도 넘어졌던 적이 있다. 무릎을 찧었는데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반응은 “아파~(ㅠ_ㅠ)”가 아니라 “누가 봤음 어쩌지”였다. 그랬기에 재빠르게 일어나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자리를 종종 걸음으로 떠났다. 그 자리를 떠나서야 아픔에 대한 몸의 반응이 전해져 왔다. 물론 넘어진 그 순간에도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왜 부끄러움 혹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몸의 반응이 더 크게 다가왔을까.

무엇이 자신의 아픔 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해 먼저 반응하도록 만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