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바람은 당황했고, 보리는 혼났다.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변화는 또한 미묘하다.
평소보다 바람을 더 쓰담쓰담하고 더 많은 말을 걸고 있기도 하지만 뭔가 다른 사건이 있었다. 그 중에선 E의 역할도 크다. 낮에 E가 왔고 역할을 나눴다. 바람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나 뿐이고 보리는 낯가림이 적은 편이다. 아울러 E는 보리의 귀여움만 취하겠다고 했기에 역할을 나누기는 쉬웠다. 종일 나는 바람을 위로했고 E는 보리와 놀다가 나중에 보리는 E 곁에서 늘어지게 잠을 잤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사료를 먹지 않던 바람은 오후 즈음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바람이 밥을 먹으려고 캣타워에서 내려온 건 아니다. 내가 바람의 코 앞에 사료를 가져다 주니 그제야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한 숨 돌렸다. 오늘도 밥을 안 먹으면 내일 즈음 병원행이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총 세 번 정도 밥을 먹었고 바람이 직접 밥을 먹으러 내려오건 내려오지 않건 밥을 먹을 의지는 있음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한편 보리는 엄청난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이지 돌아다니는 와중에 밥을 먹고, 우다다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캣초딩의 엄청난 활동량 말이다. 6개월 이상이 될 때까진 정말 미칠 듯이 뛰어다녔지. 지금 보리가 딱 그렇다. 몸이 작아 어디든 갈 수 있기에 정말 어디든 다닌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잘 먹고 열심히 마시고 화장실도 적절히 잘 간다. 적응을 잘 해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이런 미칠듯한 활동이 재밌는 일을 일으켰다.
저녁 즈음 보리가 잠에서 깨어난 다음, 거실에 마련한 바람의 밥그릇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바람은 당황한 듯 쳐다봤다. 난 보리를 데리고 방에 있는 밥그릇에 옮긴 다음(바람 같으면 난리났겠지만 보리는 그런 상태에서도 밥을 잘 먹었다) 바람의 밥그릇을 캣타워에 올려줬다. 바람은 아그작아그작 밥을 먹었다. 바람의 밥그릇을 다시 받침대에 올려두고 바람을 쓰다듬하는데, 보리가 방에서 밥을 먹다 말고 밖으로 나와서 다시 바람의 밥그릇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람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표정. 그런데 밥을 다 먹은 보리가 돌아섰고 바람과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난 바람이 하악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보리가 먼저 바람에게 하악했고, 바람은 잠시 당황하다가 한 타임 늦게 하악했다. 으하하 크크크크크크.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리가 또 다시 캣초딩의 활력으로 미칠 듯이 돌아다니자 바람은 그 모습을 구경하기 바빴다. 뭐랄까, 더 이상 경계하기보다는 그냥 뭔가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표정이랄까. 낮에 E가 와서 보리에게만 신경을 집중한 점과 함께 이런 부분이 경계를 많이 누그러뜨린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아직 스스로 방에 들어오진 않는다. 보리가 방에 있는 이상, 바람은 스스로 방에 오진 않으려고 한다. 방문 앞에서 나를 부를 뿐. 이것만 어떻게 되면 좋겠지만, 시간은 더 걸리겠지.
다른 한편, 보리의 미칠 듯한 활동이 문제를 일으켰다. E가 만든 국을 데우려고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보리가 가스레인지 위로 뛰어올랐다. 나도 바람도 화들짝 놀랐고, 보리는 엄청 혼났다. 이런 건 제대로 혼을 내야 하는 부분이라. 그래서인지 몇 시간 정도 보리는 기죽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말 기가 죽은 건지는 미스테리. 왜냐면 책상에 있다가 바닥에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다른 물건을 떨어뜨렸음에도 이건 무시하고 그냥 바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더라는.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다른 물건도 같이 떨어져 소리가 났을 때, 바람이라면 후다닥 어디로 숨었을 텐데.
아무려나 조금씩 변하고 있다. 더디겠지만,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다행이다.
+
그나저나 밤에 잠을 잘 때, 보리는 내 몸 위에서 잔다. 이것까지는 좋다. 그 위치가 내 목 근처라는 게 문제일 뿐. 지금은 괜찮은데 몸무게가 늘면… 흠…

바람, 보리, 고양이: 두번째

나는 2년은 걸릴 것이라고 각오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경계와 하악질로 인한 갈등을 기대하진 않았다.
첫 날 밤 보리는 베개와 벽 사이로 숨었고, 그 자리에서 내가 꺼내지 않는 이상 계속 있었다. 바람은 이불 속에 숨어 있다가 마루의 캣타워로 갔고 그곳에 계속 머물렀다. 하지만 자기 위해 불을 끈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보리가 오기 전까지 바람은 늘 내 곁에서 잠들었고 적어도 잠들기 시작할 땐 내 곁에 있었다. 캣타워를 구매한 뒤론 캣타워에서 자는 일이 많았고, 잠들 땐 나랑 있었는데 새벽에 캣타워로 가선 내가 자기 곁에 오길 바라며 부르곤 했다. 그래서 캣타워 구매 이후 새벽에 바람이 날 불러서 잠에서 깰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젠 상황이 좀 달랐다. 내가 자겠다고 불을 껐을 때도 바람은 캣타워에 있었다.
그리고 일은 시작되었다. 불을 끄기 전까지 바람은 방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방문 앞에서 하악하며 위협하다가 내가 바람을 데리러 나가면 캣타워로 후다닥 가곤 했다. 그럼 난 바람을 쓰다듬어 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불을 끈 다음 바람은 위협하며 방으로 들어와선 베개 뒤에 있는 보리를 위협했다. 하악, 캬악. 그 상황을 그냥 둘 순 없기에, 그리고 바람이 방에 들어왔으니 나는 바람을 달랠 겸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리고 베개 사이로 손을 넣어서 보리도 쓰다듬었다. 그렇게 바람은 잠시 보리를 위협하다가 캣타워로 돌아갔다. 그럼 나는 다시 자세를 잡고 잠들려고 했다. 잠깐 잠이 들만하면 바람은 다시 방으로 와서 베개 뒤의 보리를 위협했고 나는 한 손으로는 바람을 달래고 다른 손으론 보리를 달랬다. 이게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얘기다. 근래 많이 피곤해서 푹 자려고 했는데 오히려 잠을 못 잤다는 얘기다.
새벽에야 조금 진정되어 잠깐 눈을 붙인 다음 멍한 상태였다. 그리고 아침, 오전, 오후.
보리는 직접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손바닥에 사료를 올려주면 그땐 아그작 아그작 맛나게 먹었지만 밥그릇에선 직접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울러 물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낮엔 일부러 바람과 가까운 곳에 있으려 했고 그래서 마루에 머물렀다. 보리는 방에서 앙앙 울었고 마루로 데려왔고 바람은 하악하악. 그리고 보리는 책장 틈 사이에 적절한 자리를 찾았다. 그리하여 바람은 캣타워에, 보리는 책장 틈에 머물고 나는 그 사이에 앉아 있는 형상이었다.
한편으로 보리가 걱정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바람이 걱정이다. 밤새 사료를 전혀 안 먹었고 오전에 물만 좀 마셨다. 그 이후론 계속 잠만 자거나 바람의 눈에 보리가 보이면 하악하며 경계하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밤에, 엘라이신을 주니 그건 잘 먹었다. 그래서 고민인 건, 이틀 정도 밥을 더 안 먹으면 병원에 데려가거나 아니면 아예 영양젤을 구매해서 먹일까 싶다. 어느 쪽으로 진행할지는 내일 더 지내보고.
바람의 기에 눌린 보리는 마루에서 계속 책장의 책 사이에 머물렀다. 나는 가끔 보리를 책장에서 꺼내 방으로 데려갔고, 손에 사료를 올려 밥을 먹었다. 다행이라면 손에 사료를 올려서 주면 잘 먹는달까. 물을 안 마시는 것이 문제였다. 아울러 화장실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는데. 오후 늦은 시간에 보리는 처음으로 화장실을 사용했다. 한숨 돌렸달까. 그리고 저녁 즈음 방으로 옮겼더니 그때부터 보리는 신나게 뛰고 밥도 먹고 물도 열심히 마시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냐면 보리의 밥그릇이 따로 있음에도 바람의 밥그릇의 사료도 먹는달까. 바람의 밥+물, 보리의 밥+물이 방의 다른 자리에 있는데 움직이다가 보이면 그냥 먹는 수준이다. 물로 나름 잘 먹기 시작해서 화장실만 알아서 잘 사용하면 다행일 듯.
일단 방에 있으니 방 안에서 우다다 하다가 간혹 마루에서도 잠시 우다다하다가, 때론 내 배 위에 올라와서 골골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녀석, 발톱 자를 생각을 안 한다. 발톱 자르려고 몸을 압박하는데 어떻게든 빠져나간다. 더 정확하게는, 몸이 너무 작아서 내가 차마 힘을 더 많이 못 준달까. 발톱을 당장 잘라야 하는 이유는, 내 옷을 스크래처처럼 사용해서 보리의 발톱이 온전히 살에 박힌다. ;ㅅ;
오전엔 바람과 보리 모두가 걱정이었는데 저녁 이후론 보리는 덜 걱정이고 바람이 더 걱정이다. 일단 밥이라도 좀 먹으면 좋을텐데. 끙.
둘이 사이 좋게 지내는 건 현재 목표가 아니다. 바람이 보리를 봐도 무시하면서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기만 해도 다행이다. 단, 현재 보리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바람이 하악하면 보리가 바들바들 떤다는 게 문제. 이건 한편으론 바람에게 다행인데 만약 보리가 어느 정도 다 자라서 덩치가 있었다면 바람은 더 힘들었을 듯하다. 다른 한 편으론 보리에겐 안타까운 일인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랄테니까.

바람, 보리, 고양이

얼추 한 달 전 바람의 동생을 들이기로 했고, 두 곳을 소개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말 많이 고맙게도 내게 분양 하는 걸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그래서 눈매가 매력인 아깽을 들이기로 했다.
입양은 어제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니 어제가 최적이었다. 저녁에 만났고 출산하느라 고생했고 또 많이 서운할 엄마 고양이 비야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소개해주고 함께 해준 D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무엇보다 시원섭섭하고 또 많이 허전할 집사께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E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두 고양이가 처음 조우한 장면입니다. 🙂 참 훈훈하죠?
아기고양이 보리는 처음 살던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냐옹냐옹 울더니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땐 조용히 했다. 지하철에서 잠깐 잠깐 울기도 했지만 다른 승객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바람이 전에 없이 흥분한 상태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돌린 사이 바람은 후다닥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보리에겐 적응하라고 잠시 이동장에 그대로 뒀다가 문을 열었고 조금 망설이더니 이동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일단 화장실을 먼저 익히라고 화장실에 데려갔는데 보리는 잠시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정말 낯선 사람, 낯선 공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러더니 결국 세탁기 뒤에 숨으려 해서 낚아 챘다. 그대로 방으로 데려왔고 이곳저곳을 잠시 살피더니 큰 베개 뒤로 숨어들었다.

한동안 둘은 한 침대에 각자 숨어서 잠시 냉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상태는 보리가 먼저 깼다. 보리가 계속 베개 뒤에 있어서, 나는 손에 사료를 몇 알갱이를 올려서 줬고 아그작 아그작 잘 먹었다. 그리고 얼마 뒤 E가 사료를 주니 아그작 아그작 먹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열심히 탐험. 이곳저곳을 살폈다. 완전하게 안심한 것 같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열심히 살폈다. 그리고 또 베개 뒤에 숨기를 반복하기도.

이것이 두 고양이가 조우한 두 번째 장면입니다.
보리는 바람이 숨어 있는 이불 위도 열심히 살폈다. 그 와중에 나는 좀 움직였는데, 몇 가지 놀란 점. 일단 보리는 내가 움직인다고 해서 자신의 움직임을 중단하진 않았다. 바람과 가장 큰 차이다.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있을 때 내가 움직이면 일단 긴장하고 어느 순간엔 도망간다. ;ㅅ; 그래서 바람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땐 꼼짝도 안 한다. 보리는 그냥 자신이 원하는대로 돌아다녔다. 또 다른 놀라움은, 내가 방에서 나가면 울다가 베개 뒤로 숨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 베개 사이로 보리를 보며 인사하면 빠져나왔다. 이걸 반복했다. 그나마 이 집에선 내가 안심인 걸까?

이것이 두 고양이가 조우한 세 번째 장면입니다.
어느 순간, 바람은 밖으로 기어나왔다. 그리고 베개 뒤에 있는 보리에게 가서 하악질을 하고선 거실의 캣타워로 피신했다. ㅠㅠㅠ 바람은 바람대로 화가 났고 보리는 보리대로 공포. 바람의 심기는 좋아 보이지 않았고, 보리는 바들바들 떨었다. 두 고양이를 달래느라… 그나마 바람이 이불 밖으로 나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현재 상황에서 바람은 마루의 캣타워에 정착했고 보리는 방에 정착했다. 보리는 불안을 느끼거나 위험을 느끼면 베개 뒤로 숨었고, 내가 방에 있으면 밖에 나와 있곤 한다. 그리고 어제 밤, 이 글의 초안을 쓸 때 보리는 내 다리 위에서 웅크리고 잤다. 후후후.
잠들지 않은 아기 고양이를 제대로 찍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간신히 잡은 정면. 하지만 부족해! ;ㅅ;

이것은 구글플러스가 만들어준 움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