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햇살과

나비가 하늘하늘 나는 계절이면 그 나비를 따라 어디든 걸어가고 싶던 날이 있었다. 어느 무더운 날이었을 것이고, 그때 나비는 철로 근처를 날고 있었다. 하늘하늘 가볍고 또 최선을 다해 나는 나비를 따라가다보면 나 역시 어느 순간 가볍게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것이 그 시절, 20대 초반의 내가 삶을 견디던 힘이었다.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이 그때 내가 매달린, 매달릴 수 있던 유일한 힘이기도 했다. 그 당시엔 어쩐지 훌쩍 날 수만 있을 것 같던 그런 이미지였다.
날이 덥고 오후 세 시 즈음이면 불현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는 그런 감정을 별로 안 느끼지만, 오후 세 시 즈음의 햇살에 증발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굳이 오후 세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냥 햇살에 증발하고 싶었다. 죽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그냥 아지랑이처럼 증발하고 싶은 욕망. 그래, 그 어떤 시기엔 또 이 욕망이 내 삶을 지탱했다. 눈을 감고 태양을 응시하다보면 내가 증발할 것이라는 강렬한 욕망이 하루 하루를 버티는 힘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전혀 다른 감정 구조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이상 상처를 염수에 담그는 일을 하지 않는다. 붉은 꽃을 피우지도 않는다. 붉은 꽃을 마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이 무척 차분해질 때면 그 시기의 어떤 감정이 불쑥 튀어나온다.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남아 있는 어떤 기억, 그래서 사실상 그 당시의 감정만 불쑥 떠오른다. 그래도 이미지는 없고 실체만 존재하는 것보다는 실체 없이 이미지만 존재하는 게 더 좋은 걸까? 무엇이 더 좋고, 덜 좋고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흩어지지도 않았고 자정작용하지도 않은 듯하다. 그냥 저 아래 침전해 있어서 평소엔 확인할 수 없지만 모든 게 차분해지면 침전물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요즘은 늘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사소한 일에도 울기부터 한다.

크롬북 사용기

크롬북을 구매했습니다. 크롬북이 뭐냐면, 인터넷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의 하나인 크롬을 OS로 만든 노트북입니다. 그러니까 크롬 웹브라우저만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한 모든 것은 웹에서 처리하는 노트북입니다. 모든 것이 웹에서 움직입니다. 당신이 윈도우 OS에서 사용하던 많은 프로그램을 크롬북에 설치할 수 없습니다. 웹브라우저에서 제공하는 것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제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과 가장 잘 맞아서요.
제가 구매한 제품은 HP Chromebook 14 (Peach Coral)입니다. 가장 예쁜 아이지요. 후후.
실물 사진은 여기서 확인하시고요.
얼추 2년 정도 전부터 크롬북을 사고 싶어했습니다. 저랑 잘 맞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쉽게 살 수 없었습니다. 일단 크롬북은 미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해외 사이트에서 결제할 수 있는 체크카드가 제게 없었습니다. 살 돈도 없었습니다. 대충 30만 원 정도(세금, 관세 등을 추가하면 조금 더 들지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2년 정도 바라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추 7개월 정도 전부터 크롬북을 사겠노라고 E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크롬북을 구매해도 큰 지장이 없는 여유 자금이 생겨서 일단 질렀습니다. 그리하여 여유 자금은 안녕~
크롬북을 며칠 사용하면서 든 느낌은 그냥 내 할 일을 한다는 느낌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웹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OS를 사용한다거나 웹브라우저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노트북을 열면 몇 초 안에 자동으로 화면이 켜지면서 로그인 창이 나옵니다. 로그인하면 끝. 그 다음부턴 그냥 크롬 브라우저에서 이것저것 작업하면 됩니다. 글은 구글드라이브의 구글 문서도구로 쓰고, 여러 자료를 검색하고, 외국계 쇼핑몰이라면 그냥 결제하고. 뭐, 없습니다. 그냥 내가 할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느낌입니다. 묘한 게, 다른 컴퓨터를 사용할 때면 제가 웹브라우저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크롬북에선 웹브라우저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그냥 내 할 일을 한다는 느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컴퓨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웹서핑이나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보내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란 기본 컨셉에 정말 충실합니다.
단, 아래아 한글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사람, 국내 쇼핑몰을 비롯해서 Active-X를 사용는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이 많다면 비추입니다. 이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불편하지 않냐고요? 전 이미 우분투 리눅스나 리눅스 민트를 사용하고 있는 걸요. 어차피 제겐 그 모든 게 안 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거 없습니다. 다른 말로 외국에 계신다면 별다른 불편 없이 잘 사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국내에선 안 되는 게 좀 많지만요. 하지만 그런 걸 처리할 수 있는 보조 노트북이 있거나 그런 건 직장/학교에서만 처리한다는 태도로 산다면, 크롬북도 충분히 좋을 듯합니다.
지금 이 글도 크롬북으로 쓰고 있고요. 아무려나 이렇게 저는 갈 수록 구글 서비스에 종속되고…
(2012년에 구매한 태블릿이 많이 버벅거리고 있어서 새로운 넥서스 태블릿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 와중에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아니라 크롬OS로 만든 태블릿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염과 목감기, 환절기

오랜 시간, 봄이 오면 비염이 왔다. 콧물을 줄줄 흘렸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비염만 있었다. 2년 전인 2012년, 증상이 변했다. 그 당시 목감기처럼 목이 막혔고 마른 기침이 계속 났고 자다가 일어나서 기침을 하곤 했다. 목이 간질간질. 하지만 감기몸살처럼 엄청 아프진 않았다. 그냥 계속 마른 기침이 났다. 작년엔 그 증상이 좀 덜했다. 올해 다시 그 증상이 심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비염과 목감기 같은 마른 기침을 같이 겪고 있다. 새벽에 꼭 한두 번은 자다가 일어나서 기침을 한다. 그리고 지금 코에선 피 냄새가 난다.
비염이 너무 심해서 얼추 3년 전부터 죽염으로 코세척을 했다. 더디지만 조금씩 완화되긴 했다. 비염이 사라지진 않았다. 얼추 2년 가까이, 약을 먹지 않고 코세척으로만 버텼다. 어차피 비염이 터지면 약도 소용없으니까. 물론 비염이 터질 기미가 확실할 때 약을 미리 먹으면 진정되곤 했다. 하지만 약을 전혀 안 먹고 버티니 비염 터지는 날은 일단 드러눕는 방법 뿐이었다. 그리고 드러누울 수 없는 날이 더 많으니 콧물 줄줄 흘리면서 돌아다녀야 했고. 냐하. ;ㅅ; 작년 가을부터인가 겨울인가, 새로운 비염약을 먹고는 있다. 그래도 비염이 터지면 다 무슨 소용이냐만.
아무려나 비염 증상이 약간이나마 완화되면서 마른 기침이 생기다니 전체적인 증상의 완화가 아니라 집중공략에서 분산배치인가. 캬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