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지 않는 시간의 흔적

E가 청소와 관련한 글을 읽고 있다고 했고,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재밌게 읽었다. 주소는 다음의 두 곳.
http://2chabyss.tistory.com/104
http://2chabyss.tistory.com/107
일본 2채널 게시판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주소는 올리지만 보고 싶으면 주소를 복사해서 가셔요… 단, 곰팡이가 춤추고 쓰레기가 쌓아있는 사진을 볼 수 있는 멘탈이 아니라면 참으시고. 그런데 이미 많은 분이 알고 있을까?
첫 번째 링크에서 인상적인 것.
욕조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는 사진에 게시판에 참여한 사람이 물었다.
“너 지금까지 목욕은 어디서 했어?”
“저기서 씻었는데?”
.. 어쩐지 알 것 같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근데 자신을 히키코모리라고 소개한 쓰레드 개설자에겐 청소를 도와주는 친구가 무려 세 명이나 있었다. 이게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 아무려나 그럭저럭 감동을 선사하는 글이다.
두 번째 링크에서 인상적인 것.
쓰레드 개설자의 말인데, “쓰레기가 70cm 정도 쌓여있던 게 판명됐어.”, “우리집에는 TV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70리터 쓰레기 봉투로 몇 개를 비웠는데도 바닥이 나타나지 않았고 TV를 발굴하는 훈훈한 장면. ( ..)
이 상황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 “바퀴벌레도 살 수 없는 방이었던가…”라고 글을 쓰자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너는 바퀴벌레보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소리잖아.”라는 답변이. 훈훈하다. 방의 일부만 치웠고 그 과정에서 버려진 동전을 모아서 계산하니 5만 엔이 넘었다는 소식은 덤이고.
그런데 첫 번째나 두 번째 정도는 아니어도 나 역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고 지냈던 적이 있어서 그냥 재밌게 읽었다.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방을 보며, 그리고 그런 방에서도 그냥 어떻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납득을 못 하겠지만 나는 그 상황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니까. 그러니 행여나 위의 링크로 가서 읽으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럴 수 있으니까. 🙂

안녕,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우리 만난지 이제 4년이구나. 이미 우리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지만, 안녕 나의 고양이.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얼마 전엔, 오랜 시간 두려워 듣지 못 하던 심성락의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들었단다. 지난 몇 년간 난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어. 어쩐지 고통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다행이라면 고통스럽진 않았어. 그저 그 노래를 들을 때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뿐. 네가 내게 왔고, 나는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을 비울 때가 많았지. 집에 널 혼자 두고 나갈 때면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어. 너의 음악 취향을 잘 몰라 그냥 가장 무난하게 골랐지. 그 당시 종종 듣던 음악이기도 했고. 아코디온의 소리, 혹은 바람의 소리. 혹시나도 네가 심심할까봐 틀어봤던 음악. 그래 심성락의 음악을 들으면 네가 내게 와서 어색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너는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내 무릎 위에 올라왔지. 너는 자주 내 무릎에 올라왔고 너는 여덟 아깽을 품은 상태로 골골거리곤 했지. 너는 밤새 우다다 달렸고 너는 내가 준 맛없는 사료를 잘 먹어줬고 너는 그때 살던 집이 곧 네 영역이란 걸 알았음에도 내 자리를 존중해줬지. 너는 언제나 우아했고 너는 언제나 당당했고 카리스마 넘쳤으며 너는 예뻤지. 그리고 너는, 무수히 많은 너는, 내가 아직 못 잊는 너는…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