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지역, 혹은 유학(메모)

수업을 하다보면 여러 국가에서 온 유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질 때가 있다. 그리고 한참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유학생 중 한 명이 했던 질문은 꽤나 오래 내게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굳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다 대학원을 한국으로 왔다면 다른 여러 국가 중 굳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이라는 지역의 어떤 문화나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한국 역사나 한국과 관련한 무언가에 관심이 있어 유학을 왔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논문을 위해 연구를 한다면 한편으로는 한국의 어떤 문화를 분석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문화가 한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수용되거나 체험되는 방식을 연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익숙한 패턴이다. 그런데 내게 질문을 던진 유학생은, 왜 유학생이라고 해서 출신 국가의 사람들과 관련한 연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고 해서, 인도의 어떤 문화를 연구하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인도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많은 교수들은 이것을 요구하는가? (각 국가는 그냥 떠오르는대로 적은 것이다.)

이 질문은 중요했는데, 역으로 왜 미국으로 유학을 간 한국인 공부노동자들은 계속해서 한국을 필드로 삼고 있을까? 한국을 연구 필드로 삼고 있다면 왜 유학을 가는가? 미국에 가면 한국의 특정 관심 분야를 더 잘 이해하거나 배울 수 있어서 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왜 미국으로, 혹은 영국이나 다른 서구 사회로 가서 유학을 하는 것일까? 특정 국가로 유학을 간다면 그것은 그곳에 가야 내가 연구하는 분야를 더 잘 배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퀴어이론은 미국에서 더 잘 배울 수 있겠지만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논의되는 퀴어연구와 지형도 그러한가? 퀴어 연구의 반규범성에 대한 고민과 이런 공부노동과 지역의 문제는 또 어떻게, 어떤 규범성을 재생산할까?

이 질문은 연구와 공부의 지역적 감각을 배타적으로 제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떤 연구와 공부의 정치적 감각, 몸의 감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몇 해 전, 업무차 광주에 며칠 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할일이 없었다. 그래서 광주가 고향인 친구에게 광주에서 유명하거나 들를만한 관광지를 물었는데, 그 친구의 대답은 내게 어떤 깨달음과 같았다. 자신은 고향에서 떠나 서울해서 생활한지 20년이 지났기에 모른다였다. 이것은 매우 정확한 말인데 나 역시 내 고향을 이제는 모른다. 고향에서 살 때도 잘 몰랐지만 일년에 서너 번 겨우 가는 지금은 더더욱 모른다. 남들이 물어봐도 그저 유명한 관광지 몇 곳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이태원를 내 연구의 주요 관심 지역으로 삼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방문하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동네에 더 가깝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내가 아는 그 지역의 모습이다. 심지어 이태원은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그저 방문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사는 동네에 이사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이 동네를 알게된 지는 7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 그 전에는 출퇴근만 했기에 출퇴근 경로만 알았고 H와 이 동네를 산책하고, 주변 가게와 지형을 꼼꼼히 구경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이 동네를 알아가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에피소드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내포한다. 첫째. 특정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그 지역을 떠난지 오래되었다면 더이상 알 수 있는 지역이 아닐 수 있다. 둘째. 단순히 주기적으로 방문한다고 해서 해당 지역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셋째. 해당 지역에 현재 거주하고 있다고 해도 그 지역을 알기 위해 의도적으로 탐방하지 않으면 역시나 알 수 없다. 8년 정도 전, 나는 서울 몇몇 지역을 효도 관광을 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서울도 관광을 하고 배움이 필요한 지역임을 깨달았다. 내가 산 지역, 살았던 지역은 당연히 내가 연구할 수 있는 지역, 내가 아는 지역이라는 믿음이 식민주의-제국주의가 일상에서 작동하는 핵심 장치다.

이제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한국으로 유학온 학생들에게 출신 국가의 문화를 연구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자 식민주의적 상상력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면 한국의 무언가를 연구하기 위해 온 것 아닌가? 본인의 관심이 한국과 자국의 문화비교이거나 한국에 와야 비로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왜 한국에 왔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또다른 유학생은 한국 문화를 별다른 부담없이(부담이 없지는 않았지만) 연구를 곧잘했다. 그러니 남아공 출신이니까 남아공을 필드로 삼는 것이 연구에 수월할 것이고 이는 일종의 배려라는 생각은 편견이거나 학문적 위계를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반복해서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럼 한국에서 미국(주로 미국으로 가니까)으로 유학을 가는데 여전히 자신의 필드는 한국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언어는 미국에서 생산한 이론이라면 이 간극을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간단하게 미국은 이론-한국은 데이터라는 논리를 재생산하려는 질문은 아니다. 나는 이미 다른 리뷰 논문에서 이런 식의 이분법은 한국에서 지식과 연구가 생산된 방식을 무시하는 태도, 즉 가장 식민화된 태도라고 논의한 바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내가 하는 질문은 연구 필드는 한국인데 왜 미국으로 가는가에 있다. 왜 미국의 특정지역일까?

하지만 다시, 여기에 추가될 필요가 있는 질문은 지역은 좌표가 고정된 상태인가이며 이는 앞의 고민을 재고하도록 만드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미국 텍사스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한국의 특정 문화를 연구하는 공부노동자가 있다면 그 논의에서 다루는 한국은 그 공부노동자가 재형성한 한국이다. 그 논의에서 다루는 맥락은 지금 경기도 접경지역에 사는 내가 다루는 한국과는 다를 것이다. 이는 영어가 수천 가지가 있듯, 지역적 문화나 현상 역시 좌표에 고정되기보다 계속해서 재형성되며 일종의 양자얽힘(이해는 안 되는데 몇 년째 꽂혀있음 ㅋㅋ) 관계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다시, 왜 공부 노동을 하는 지역과 연구 필드 사이의 큰 간극을 어떻게 다른 질문의 지형으로 이동시킬 서 있을까.

관계와 보살핌을 회의(안)하기 – 메모

10년 정도 전, 한 수업에서 선생님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이라는 말을 했었다. 내게 저 문장은 화두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고 진중하게 깊이 파고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런 문장이다.

이 문장을 종종 떠올리는 이유는 단절된 존재, 파탄내는 행동을 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 돌봄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말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해답도, 희망도, 가능성도 아니라는 점을 (그 말을 하는 사람조차)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와 돌봄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의 중요함을 강조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어떻게 질문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를 온전히 지지하는 친구와 파트너가 있을 때에도 나는 우울증과 부정적 감정으로 모든 것을 망치는 상태로 지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울증 심연 일기]란 그래픽노블은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데(다른 책이면 어떡하지…) 파트너와의 행복한 관계에도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그래서 자신의 우울이 감정적 사치는 아닐지 두려워한다. 이 질문의 다른 말은 우울증이나 부정적 감정 충동에 대한 처방이나 대안, 혹은 새로운 방향이 관계의 회복과 돌봄이라고 한다면 완전히 실패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그렇기에 관계의 회복은 단절된 존재가 관계망의 소중함을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은 부정적 감정과 우울을 친밀하고 온전히 지지하는 관계에서도 생성되고 강하게 작동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앞서 인용한 문장이 떠오르는 것이다. 사실 관계와 돌봄을 논하는 이들이 이 둘을 낭만적으로, 만고의 해답으로 가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관계와 돌봄이 부정적 감정이 생성되는 장으로 이해한다면 어떤 다른 질문이 필요할까…

뜬금없게도 이런 잡담은, 관계와 돌봄에 관한 글을 읽다가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실패와 관련한 글을 읽다가 떠올렸는데, 나의 고민은 실패를 저항적 가능성으로 재독해하지 않으면서 성과주의의 언어로도 제한하지 않는 방법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실패를 반복해서 겪을 수밖에 없다면(마치 N회차 회귀한 것마냥) 부정성과 실패를 관계망에 대안이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내게 가장 익숙한 용어로, 아카이브적 미래를 어떻게 기록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글이 진짜 두서없네…

하지 말아야 할 말

나는 [마샤 P. 존슨의 삶과 죽음]이라는 다큐를 좋아하는데 그 중 유독 자주 언급하는 장면은 실비아 리베라가 노숙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이다. 리베라는 미국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에서 기념비적인 인물이고, 그래서 저 다큐에서도 리베라가 청년층과 만날 때면 엄청나게 환호받는 모습이 나온다. 그럼에도 전설적인 인물의 삶, 특히나 라틴계 하층계급 성판매자로 살았던 인물의 현실은 노숙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의 현실적인 생활은 역설적에게도 내게 하나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그 삶이 낫다거나 괜찮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어쨌거나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소중한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장면을 강의나 다른 자리에서 언급하고는 했는데, 사실 이런 언급을 하면 수강생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뭐랄까, 중산층 욕망은 아니라고 해도 살만한 삶에 대한 전망이 없다면 페미니스트로, 퀴어 활동가로 사는 것, 퀴어 연구를 하는 공부노동자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저변에 있다고. 이 불안은 정상성에 대한 욕망이나, 규범적으로 저항하는 삶을 바라는 욕망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서, 계속해서 계약직으로 살아가고, 당장 오늘이라도 잘릴 수 있고, 전세사기에도 보호받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리베라의 노년은 위로라기보다 더 큰 불안이고 위험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그동안 리베라의 삶을 말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못 말했구나 싶어 부끄럽고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