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점과 불안

나는 나의 취약점, 불안, 두려움 등을 사랑하는데 이런 감정은 내가 어떤 다른 상상력을 하도록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언제나 갈등하고 렉사프로를 처방받아서 사왔지만 선뜻 복용하겠다고 결정을 못 한다.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나를 힘들게 하는 힘이기도 할 때, 늘 어렵다. 그런데 나는 늘 이런 딜레마가 아니지만 딜레마로 인식되기도 하는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나의 덕질이 그렇고 다른 많은 것이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상황을 딜레마로 인식하지 않지만, 글로 쓰거나 할 때면 딜레마처럼 적혀서 난감하다.

그러나저러나 일단 주말 마감부터 어떻게 하자… 아아아… 마감…

서울과 비서울지역 퀴어 문화의 차이 관련 몇 가지 질문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퀴어 문화 형성과 다양한 문화 행사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많이 나는데… (이것 자체엔 이견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이 차이를 어떻게 고민할까란 점에서
ㄱ.
한국에서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차이 즉 수도와 그외 지역의 퀴어 문화 차이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은 아니다. 태국은 방콕이 아니라 푸켓에서 퍼레이드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중국은 상하이에서, 미국은 워싱턴이 아니라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더 유명하다. 그럼 왜 서울에 집중되었는가? 그리고 여기서 주한미군주둔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ㄴ.
ㄱ과 관련해서 준비된, 간단한, 만능열쇠 같은 대답이 있긴 하다.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니까. 맞다. 서울에 경제, 문화, 자본, 교육 등 모든 것이 편중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질문이 등장한다. 서울에 퀴어 문화 행사 등이 집중되는 현상과 서울에 다른 여러 자본, 문화 등이 집중되는 현상은 동일한 현상으로 이해하고 끝날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현재 시점에선 서울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만 기준으로 하면 서울에서만 진행되는 행사는 아닌데 그럼 왜 다른 지역, 즉 동일한 광역시인 부산이나 대전, 광주 등이 아니라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대구에서는 가능했던 걸까? 동시에 그럼에도 서울에 여전히 많은 퀴어 행사가 집중되어 있다면 이를 단순히 서울에 모든 자본과 문화가 집중되어 있으니까로 등치해도 괜찮은 걸까? 괜찮다면 어째서일까? 등치할 수 없다면 다른 문화 집중과는 다른 어떤 문화 차이가 있는 걸까? 대구는 부동산 거품을 제외하면 별다른 지원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확인 필요) 그럼에도 퀴어문화축제가 가능했던 동력이 무엇일까?
ㄷ.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퀴어 문화 차이를 이야기할 때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각 지역을 단일한 지역으로 사유하는 점이다. 서울 대비 대구, 부산, 광주, 대전, 울산 등은 하나의 지역으로 부를 수 있는 단일 공간인가? 예를 들어 부산에선 해운대 근처에 사느냐 아니냐로 문화적 향유의 수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해운대 지역엔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고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지만 해운대에서 거리가 있는 지역, 특히 강서구 지역엔 관련 행사가 거의 없다. 지역 내부에서 또 다른 문화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이라고 또 동일하지 않은데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서울은 이태원과 그 외의 지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이태원에 산다는 것, 이태원의 변태 공기를 접할 수 있음과 그렇지 않음은 상당한 차이를 야기한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더욱 그러하다. 서울에 거주하지만 이태원을 아느냐 모르느냐, 이태원에 사느냐 아니냐가 트랜스로 살아가는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각 지역은 지역 내부에서 또 다른 문화 격차가 발생하고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접근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이 접근권이 대전에서 서울로 가느냐와 대전 내부에서 이동하느냐에서 발생하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부정할 수 없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질문은 서울과 비서울지역, 서울에 문화 집중을 이야기할 때 각 지역을 단일한 지역으로 치환하며 각 지역 내부의 차이를 지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사유 과정에서 무엇을 은폐하고 무엇을 강화하느냐란 질문을 할 수 있다.
일단 메모는 여기까지…

눈병

어제 밤, 잠들기 전 갑자기 눈이 좀 아팠다. 잠 못 들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도 약간의 통증은 있었는데 전에 다래끼를 겪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출근해서 인근 병원에 가볼까 했지만 뭘 또 이 정도로 병원엘 가나 싶어서 말았다. 하지만 눈은 부어올랐고 통증은 계속 있었다. 뭐 그러려니. 그러다 출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이유로 병원 밀집 구역으로 갔다. (내가 사는 동네엔 병원과 약국이 밀집한 구역이 따로 있다. 물론 다른 상점 등도 밀집해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심시티 같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안과에 가볼까 하며 병원엘 갔다. 사람이 많아서 관둘까 하다 그냥 소염제나 받아야지 싶어 기다렸다. 그리고 진료를 받았는데… 이미 곪았다고 했다. 지금 바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헙… 물론 ‘방치하면 수술’이란 표현이야 의사라면 통상 사용할 법한 말이니까 그리 놀랍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수술비를 절약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하. 나중에 수술비는 없는데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별 고민 없이 병원 갔다가 1만원에 수술을 예방할 수 있다면 재수 좋은 거지. 암튼 고름을 짜는 등 약간의 조치를 취하고 약국에서 안약과 안연고를 사서 왔다.

병원에서 기다리며 대충 시력을 쟀는데 오른쪽과 왼쪽 시력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안경점에 간 게 얼추 10년 전이라 잊고 있었다. 대충 쟀을 땐 왼쪽 시력이 더 좋았는데 고름은 왼쪽에 생겼다. 읽고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력자인 내게 시력 상실이나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 수전 웬델은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 수록 장애인이 되고 그렇기에 장애를 일상의 중요한 몸 정치로, 특정 집단의 의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본 인식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 역시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예전 같지 않은 점을 느끼곤 한다. (밤을 완전히 새지 않고 평소보다 잠을 몇 시간만 줄여도 그 타격이 일주일 이상 간다. 2주 전 강의를 위해 이틀 간 잠을 7시간 정도만 잤는데 그 여파로 지금도 헤롱헤롱하고 있다.) 그렇기에 몸에 어떤 아픈 증상이 생기면 예전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면도 있다. 후딱 치료해서 건강해지길 바라기보다는 몸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좀 예민하게 살피고 싶어서고, 나중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살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돈이 없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적은 비용으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내가 한국이란 지역에서 습득한 몸과 인식을 끊임없이 낯설게 하고 싶고 그래서 그 여행비를 계속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10년 뒤에 10억이나 100억을 벌 수 있을 가능성, 혹은 월급이 지금 기준으로 500만원 정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늘 돈이 없어 허덕이고 징징거리고 빌빌거리지만 그럼에도 큰 돈을 벌기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기획이 지금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덕질도 좀 여유 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물론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고, 나 역시 내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어느날 돌연 대기업에 입사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나는 늘 이런 식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는 있다(나는 열어 뒀다. 호호호). 어쨌거나 나는 지금 현재의 내 상황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가 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소액일 때 적당히 몸을 관리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빚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욕망이 장애혐오인지 아닌지, 혹은 장애와 관련한 어떤 부정적 인식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 계속 헷갈린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비장애인은 아니구나 정도의 고민을 하고 있지만, 만성질환 몇 가지는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뭐가 뭔지 헷갈리고 어렵다. 아무려나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