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각자의 맥락과 판단에 따라 특정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그것에 따른 이득만이 아니라 그 입장에 대한 어마한 비판도 감당하겠다는 의미다. 이득은 취하고 비판은 감당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정치적 태도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어떤 입장에 대해 많은 비판이 발생하자, 갑자기 페미니즘은 총체가 아니다, 페미니즘이 모든 걸 떠안을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그냥 너무 무책임한 태도다. 페미니즘이건 뭐건 상관없이 자신이 취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비판에, 나는 모든 것을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식의 반응은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이라 화가 난다.
[카테고리:] 몸을 타고 노는 감정들
트랜스페미니즘, 젠더 개념의 역사
지난 일요일, 부산에서 강연을 하며 확인한 점.
트랜스페미니즘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강연을 해야 한다.
8월에 있을 퀴어아카데미가 끝나면 “젠더 개념의 역사: 성과학에서 트랜스젠더퀴어까지”란 제목의 3강짜리 강좌를 열어야겠다. 압축 버전으로 2시간짜리로 만들 수는 있지만… 어제 해보니 너무 압축한 느낌. 하지만 듣기에 따라선 압축한 버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3강으로 나누면 정말 각 시대의 여러 문헌을 꼼꼼하게 살피는 작업을 할텐데 그 정도 관심이 없다면 듣기 힘들테니까. 그리고 이 강좌를 ‘교육플랫폼 이탈’에서 진행하고 싶다고 이탈 관계자에게 말해뒀다(그런데 나도 관계자…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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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연에 불러만 주시면 전국 어디든 갑니다..라고 영업을 해보지만, 제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지 저 자신부터 의심하는 관계로… 늘 강연이 끝나면, 주최측에 폐만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기분이라… 이런 영업을 했다가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지만… 호호호… ;ㅅ;
차별 받는다는 문장의 복잡한 함의
“나는 트랜스라서 차별받고 있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요즘 나는, ‘차별받고 있다’는 언설은 내가 가진 특권적 위치를 동시에 표출하는 언설이라고 고민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는 트랜스라서 차별받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나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이 말은 나는 한국의 선주민이자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고, 비장애 특권을 누리고 있고.. 와 같은 내용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트랜스로 차별 받을 경우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무조건 누리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나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못 할 뻔했다. 며칠 전엔 도서관 출입을 못할 뻔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통하는 외모와 한국 선주민일 때의 특권은 분명 누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다양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차별 받고 있다는 발언이 등장할 때, 이 발화가 어떤 내용은 강조하고 다른 어떤 내용은 은폐하는지를 훨씬 정교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논의도 상황 파악도 지형 파악도 매우 단순해질 것이고, 교차성 논의는 1+1 할인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차성 논의의 핵심은 ‘나는 이러저러하게 차별받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특정 상황에선 차별받고 있지만 다른 상황에선 특권적 위치에 있다’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