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소재에 대한 태도 변화

한땐 아래 글처럼, 시험기간이면 시험이다,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온다는 식의 글을 별로라고 여겼다. 뭔가 유치해 보였다. 그렇게 믿던 시절엔, 그 시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지 하는 강박이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관한 글, 날씨에 관한 글은 가장 ‘자연스러운’ 글인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음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가을이 왔다는 글을 쓰는 것은 왠지 유치한 일이라는 식의 강박은,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세상에 무관함을 ‘쿨cool’함으로 착각하는(disembodiment, disinterest) 태도이다. 개입하고 있으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길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그냥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꾸준히 적어 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성실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입장에서 노래 듣기

가을이 오는 소리가 몸에 들려온다.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환절기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 속상하고 걱정이기도 하다.

요즘, 다른 때의 취향을 아는 사람들에겐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최재훈을 듣고 있다. (이 ‘의외’라는 반응은 사실, 상당히 폭력적인 반응이다. 그건, 상대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선입견에 고정시켜 자신이 알고 싶은 모습으로 만들려는 통제에서 벗어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덧붙이면, 이와 관련해선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지금 정도의 글은 너무도 단순화된 내용이다.) 신보일 리는 없고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듣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몇 곡의 음악을 듣고 있는 정도. (몇 장 가지고 있는 앨범은 CDP가 없던 시절에 산 테이프들이라 찾기 귀찮은(! -_-;;) 곳에 있다.)

한국가요를 들으면 가장 좋은 점이 가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장점은 때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폭력적인 가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아파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음악을 듣다가 아주 재미있는 가사를 발견했다.

[#M_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함께 있을 수 없어
우리 사랑은 이제 금방 시작됐잖아

내 인생 여기다 혼자 남겨두고 갈거니
보고 싶지만 널 보고 싶지만 안녕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 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잊어버려야 좋을 사람 잊어버릴 수 없어
그동안 행복 했어 안녕

#듣고 싶으면…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_M#]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노래인데 어느 드라마 주제곡인가 그런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노래가 재미있게 다가온 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때문.

이 가사가 귀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게이’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삼으면 딱 좋겠다는 것이었다. 대충 노래 가사처럼 그런 내용으로 해서. 흐흐.

음악이란 것이, 비단 음악 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그 텍스트를 만나는 사람/맥락에 따라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 노래 가사도 그런 하나의 전형으로 보였다.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게이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간다면, 스스로를 여성/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고 각자 이성애자로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서 루인이 본 이반queer영화 중 ‘게이'(로 보이는 혹은 그렇게 자신들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 중 이 노래가 어울릴 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하며 마구 키득거렸다. 히히히.

사실 가요들 중엔 이렇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사들이 상당수 있는 편이다. 가수와 제목이 떠오르진 않지만, 얼핏 보면 이성애gender연애제도의 성역할gender rule에 가장 충실한 듯이 보이는 가사 중에 의외로 ‘레즈비언’/’게이'(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로 볼 수도 있는 곡들이 많다. 그렇다고 어떤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안 된다거나 그렇게 비판하는 너의 위치가 문제야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자세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이런 자세가 바로 텍스트를 고정된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한(그리고 텍스트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재밌고 풍부한 삶이 될 테니까.

후원의 밤과 관련한 좋은 소식.

어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하는 후원의 밤 관련 글을 올린 후, 루인이 함께하는 이랑의 카페에도 올렸었다. 그리고 오늘, 영화제 기획 회의 차 만난 자리에서 함께 가자고 (사실상) 떼를 쓰다시피 해서-_-;; 다음 주 영화제 홍보 준비를 한 다음 함께 가기로 했다. 이히히.

사실, 이렇게 가고 싶은 후원의 밤이나 어떤 자리가 있어도 루인의 생활 습관 상 갈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그건 혼자서 어딜 가기 싫어해서가 아니라 혼자서 가기엔 정말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아직도/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술을 마시지 않는/을 루인에게 후원의 밤에 혼자 간다는 건, 사실 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그런 자리가 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꼭 그렇지 않아서 음식점으로 꾸민다고 해도 힘든 경우가 많은데, (유제품을 포함한)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vegan 루인이 먹지 않는 음식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왜 일일호프나 후원의 밤은 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조용하게 차를 마시고 나올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면 안 될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일일호프나 후원의 밤의 ‘의의’가 없어지겠지? 잉잉, 하지만 그렇게 해도 좋을 텐데. (억지쟁이))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기도 애매한데 다른 사람의 경우, 주최측과 정치적으로 다른 지향점을 가져서 가자고 하기 애매할 수도 있고 (정치성과는 별 상관없이) 그냥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암튼 그래서 늘 가고 싶은 자리가 있어도 아쉬운 마음으로 포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 일로?

다른 곳 아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루인이 루인에게 커밍아웃을 하며 가입했기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이랑 세미나 주제와 관련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요즘 고민하고 있으면서 평생 가지고 갈 고민을 ‘실천’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다는 의미 때문이다. 어떤 실천이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은 일이 있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적어도 뭐, 그렇게까지 거창할 것은 없고 보는 순간 가고 싶었다. 히힛. 오랜만에 홍대 근처에 가는 것도 좋고…라고 적다 보니 토요일에 홍대 근처에 간다는 건…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