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 혹은 야채전

몇 해 전, 첫 번째 玄牝에 살던 초기엔 부침개나 야채전 등등 각종 음식을 잘도 해먹고 살았다. 물론 당시 우울증으로 인해 모든게 중단되고 말았지만, 암튼 상을 푸짐하게 차려서 해먹던 시절이 있었다. 믿거나말거나-_-;;;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고 방치하게 되는 그런 시절을 겪은 이후, 뭔가 일을 벌리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다. 곰팡이가 눈에 보이는 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자신과 울고 있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울증이 진정된 다음에도 음식을 해먹을 때, 항상 아주아주 간단한 차림을 선호하게 되었다. 시간이 절약 된다는 것도 한 요인이긴 하다. 책이나 음악이랑 놀 수만 있을 정도의 영양분만 보충하면 된다는 자세로 살다보니 음식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길 꺼리는 편이다.

그런 루인이 몇 주 전부터 가끔 부침개 혹은 야채전을 해먹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 작정을 하고 시간을 들여 음식을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암튼 반찬으론 나쁘지 않다. (그때그때 부쳐먹지 않는 것은 매번 후라이팬을 씻어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문제는 이 부침개 혹은 야채전이란 반찬이 무겁다는 것이다. 이 음식을 먹고 있으면 몸-胃-이 부담스러워 한다. 시간이 많이 들어도 한 번 해두면 간편한 음식임엔 분명하지만 먹을 때 마다 몸이 무거워 한다면 루인 몸엔 그다지 맞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며칠 전에 친구에게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선물 받았다. (몇 해전 처음 이 책을 접한 것도 친구가 빌려준 것이니 결국 처음 본 그 책이 루인에게 온 것이기도 하다.) 11년 가까이 채식을 해온 루인이기에 [소박한 밥상]과 같은 책은 참 좋고도 소중한 책이다. 언제든 곁에 두고 볼 수 있고 두고두고 볼 수 있으니, 친구에게도 소중할 이 책을 선물로 준 것에 너무 고마워 하고 있다.

이 책의 빵과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부침가루란 반죽이 루인에겐 맞지 않는 음식은 아닌가 하는 몸앓이를 한다. 재료로 들어가는 채소들을 죽이는 조리법은 아닌가 하는 몸앓이와 함께. 니어링은 모든 채소엔 충분한 수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따로 물을 더 마실 필요가 없다고 했던가. 야채전을 먹으며 음식의 무거움 뿐 아니라 자주 물이 필요하다고 몸이 반응한다면 그건 조리법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의미일 지도 모른다. (니어링의 말이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몸의 부담스러워 하는 반응을 보면 적어도 루인에겐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런 요리가 루인에겐 맞지 않거나.

그래서 새로운 조리법을 궁리 중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뭔가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미 계획은 세워졌는데 그 아직 실험도 안 했고 결과도 모르니 과정 중에 있을 따름이다.) 과연 어떻게 될런지는…흠…과연…;;

bell hooks란 이름

bell hooks란 필명 혹은 가명은 그의 모계 증조할머니의 이름이라고 한다.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Gloria Watkins.

(이 이름을 선택한 여러가지 이유는 [Talking Back]의 “23. to gloria, who is she: on using a pseudonym”을 참조하세요. bell hooks란 이름으로 인한 여러 에피소드도 같이 실려 있는데 일테면 (글로리아로 알고 있는) 누군가와 페미니즘에 대해 토론하다가 상대방이 벨 훅스에게 한 말, “벨 훅스를 읽어 보세요.”)

이 이름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19세기 흑인여성운동가들의 이름 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테면 Anna Cooper, Mary Church Terrell처럼. (페미니즘 사상사를 배우다 보면 백인여권론자인 Mary Wollstonecraft, Elizabeth Cady Stanton 등은 배우지만 앞서 언급한 흑인여성운동가는 거의 안 배운다. 덧붙이면 [Ms.]란 잡지는 대부분 알지만 [Essence]를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이 역시 인종주의racism와 제국주의의 결과겠지만… 루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흑인여성운동가들은 용감했고 목소리를 가졌으며 자신의 경험을 말 할수 있었다. 그렇기에 목소리를 억압할 것을 강요 받던 시절, 벨 훅스란 이름은 발화하려는 몸언어를 듣고,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벨 훅스의 첫 번째 책의 제목 [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 중 “Ain’t I A Woman”은 유명한 페미니스트 Sojourner Truth의 말이다. 결국 벨 훅스란 이름과 이 말은 19세기라는 시점과 만나고 있다.

19세기는, 적어도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들에게 있어선 노예해방운동의 시대였으면서 동시에 여권운동에 참여했던 시기다. 벨 훅스의 첫 번째 책, [Ain’t I A Woman]은 페미니즘 내에서 인종 문제가 부상하던 시기에 나왔고 sex-race를 동시에 사유할 것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책이다.

뭔가 재밌게 만나고 있다는 몸앓이를 지울 수가 없다. 19세기란 코드와 sex-race란 코드가 교직하는 순간.

어쨌거나 낼이면 [Talking Back]도 마무리구나. 그럼 벨 훅스랑은 10월에나 만나는 거야? 우잉~ 아쉬워

몇 가지 결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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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적은 bell hooks읽기는 한 달 가량 쉬기로 했다.

이번 주말이면 [Talking Back] 읽기가 끝난다. 그러면 9월 달엔 오늘 프린트한 몇 개의 논문들을 읽을까 한다. 당장 루인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이라 알고 싶은 것도 있고(잘은 모르지만 아마 국내에 관련 도서는 거의 없는 듯 싶다. 논문들은 몇 있는데…) 말 그대로 쉬어가려는 것도 있다.

쉬어가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열 달 가량을 계속 bell hooks만 읽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벨 훅스 문법엔 익숙한데 다른 영문을 보면 낯설거나 더듬거리거나 그런다. 그래서 한 달 정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필요가 있겠다는 몸앓이가 들었다.

읽을 논문들은 거의 sex/gender/sexuality에 관한 글들이다. 루인식으로 표현하면 항상 안다고 믿지만 사실 전혀 모르는 것이 sex/gender/sexuality가 아닐까.

그러고 나면 이제 루인이 읽고 싶어하던 bell hooks의 [Yearning]을 읽을 예정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위해 이전의 책들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각각의 책들이 다 좋았지만, 처음 영서를 읽겠다고 시작했을 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 [Yearning]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 책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땐 두 권을 동시에 읽을 것만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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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갈등하던 그 과목 듣지 않기로 했다. 냐하하. 아쉬움이 없을리 없겠지만 그냥 버리기로 했다. 그 시간에 루인이 읽고 싶은 글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