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섹슈얼/양성애 이슈를 고민한다는 것은 퀴어 이론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사유하는 것: 오프 바이모임 홍보를 겸해서

여기에 오시는 분 중 퀴어이론을 공부하고 계신다면, 당신은 어떤 퀴어이론을 하고 계신가요? 퀴어이론을 통칭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고 사람마다 지칭하는 퀴어이론의 범위가 정말 다릅니다. 그리고 저는 요즘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의 맥락에서 퀴어이론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두 분의 가르침 혹은 대화가 큰 영향을 주었지요. 캔디와의 오래 지속된 일상적 대화, E느님과 주고 받는 끊임없는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저는 퀴어이론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허접하고 미약하지요. 엄청 부족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바이섹슈얼/양성애자를 사유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퀴어이론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것은 트랜스젠더를 사유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퀴어이론이 전혀 다른 모습인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만약 당신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가 아니라면 당신의 퀴어이론엔 바이섹슈얼/양성애자가 있나요? 물론 이런 질문이 쪼렙이나 할 법한 낯간지러운 성격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내공 있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요. 질문을 해도 다르게 하지요. 저는 쪼렙이니까, 바이섹슈얼/양성애자 이슈는 거의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쪼렙처럼 질문할 게요. 당신은 퀴어이론을 상상할 때, 혹은 LGBT/퀴어 이슈라고 불리는 것을 사유할 때 바이섹슈얼/양성애자를 진지하게 고민하시나요? 그리고 당신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라면 퀴어이론을 어떻게 구성하고 재구성하려고 고민하고 계신가요?
“바이모임, 바이섹슈얼(양성애) 웹진”에서 ‘바이모임’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참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합니다. 가급적 원 출처로 가셔서 읽으시면 더 좋고요. 🙂
모임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한 번 즈음 진지하게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나’의 퀴어이론이 가정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인지? 어떤 퀴어이론인지? 이것을 꼭 한 번은 질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올 여름의 강력한 한방,
오프에서 하는 “바이모임”이 돌아옵니다!
저희는 2013년 2월을 시작으로, 그간 3회의 바이모임을 주최해 왔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소중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현재 모임의 방향은 웹진 편집으로 바뀌었고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바뀌었지만, 바이섹슈얼들이 더 많이 만나고 말할 수 있는 소통의 창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계속 간직해 왔습니다. 어떤 지원이나 예산도 없이 모임을 준비하는 게 때로는 버겁기도 했지만, 참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이 참 좋았고 뜻깊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들 덕택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모임들에서 바이섹슈얼이 겪는 삶과 일상의 경험과 생각을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저희 웹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여러 방법으로 바이섹슈얼 관련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5년 여름, 그간 많은 분들이 고대하셨던(?) 바이모임이 돌아오는 7월중에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모두 모여서 바이섹슈얼을 둘러싼 여러 가지에 대해서, 또 (바이섹슈얼인/아닌) 자신에 대해서 부담 없이 이야기 나누는 재미있는 수다의 시간입니다. 단, 전과 다른 점이라면, 모여서 어울리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여러분이 나누신 이야기가 웹진 3호에 실리게 됩니다. 저희가 발행했던 지난 1, 2호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가 두 번에 걸쳐 실린 적이 있는데요.
이번 3호부터는 독자 여러분 중에서 이 좌담회에 함께 참여할 분을 모시려 합니다.
혹시 웹진에 실린다는 것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굴이나 실명의 공개 여부나, 특정 개인정보 공개 여부 등등은 충분히 의사를 존중해 드리니까요. 편히 대화를 나눈 후에, 좌담을 정리한 글은 웹진에 게재되기 전에 참가자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의견을 묻습니다. 그러니 걱정은 접어두시고, 수다 떨고 말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온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웹진 바이모임에 글을 보내려고 했지만 어쩐지 글이 잘 안 나오는 바람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도 기고를 못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와서 말로 들려주시면 됩니다.  그냥 바이섹슈얼들을 만나서 얘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하며 공감하고 싶으신 분들도 환영이에요. 바이모임에 기고한 바 있거나 이번호나 다음에 기고할 예정이라도, 지면의 한계 때문에 아직 못다한 말이 많아서 아쉬운 분들도 와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고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공감과 치유의 수다까지 즐긴 후에 웹진의 지면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세요!
신청하실 분들은 http://goo.gl/forms/vnd0jPzDSI 로 들어가셔서 양식을 제출해 주세요. 7월 7일까지 신청을 받습니다. 단, 선착순으로 다섯분까지만 신청을 받고 마감하게 됩니다. 신청하기 전에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이메일 bi.moim.kr@gmail.com이나 트위터 @bi_moim 또는 이 포스트의 댓글로 질문하시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참고- 웹진 1호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1호: [바이 더 웨이]상영회 파티 편
웹진 제 2호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

채식하지 않는 사람과 개인 만남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앞으로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는 개인적 만남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하면 더 고립될 수 있을까? 논문 관련 만남, 두어 가지 연구 모임을 제외하면 사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직조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도 사람을 만나는 일정은 거의 없다. 많은 시간이 글 쓰고 글 읽는 것으로 채워져 있긴 하다. 스마트폰은 정말 축복인데 지하철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날 가능성 자체를 더 줄여야 하는 것 아닐까란 고민을 한다. 퀴어락 출근해서가 아니면 온 종일 사람을 전혀 안 만나는 날도 많고 출근해서도 간단한 인사를 빼면 말을 거의 안 하고 지나가는 날도 많다. 그럼에도 좀 더 고립하고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진지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방법 중 하나로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는 별도의 만남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면 어떨까란 고민을 한다. 내키면 비건으로 정하거나. 어쩐지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슬프게도 사람과 만나는 일이 늘어나면,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 사람의 글, 혹은 어떤 작업을 비판하기가 어려워진다. 지연으로 비판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작업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 어떤 협상에서 나왔는지 알기 때문에 쉽게 비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나는 어떤 작업물을 비판하려고 했는데, 그 집단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 떠올라서 비판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렇게 비판을 포기하면 같이 망할 수도 있다. 서로가 더 좋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비판 작업은 해야 한다. 그럼에도 때론 어려운 순간이 발생한다. 다른 경우엔 어떤 사람의 글을 비판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 다음에 얼굴을 보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이런 걱정을 덜 하고 싶다. 비판 자체는 사려 깊어야 하지만, 늘 사려 깊은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경우엔 정말 바닥을 판다는 기분으로 강하게 비판해야 하기에,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걱정하고 싶지 않다. 이 걱정이 비판을 무디게 하거나 머뭇거리게 한다면, 어쩐지 슬프다.
그러니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는 개인 만남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만들어 볼까? 물론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려나.

기록이 없을 때: 아델리아 홀 레코드 단상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싶)의 “잃어버린 쌍룡검을 찾아서”를 봤다. 쌍룡검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실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두 자루의 칼이다. 이 칼과 관련한 기록은 거의 없는데 임진왜란 이후 200년도 더 지난 시점인 1825년 즈음 돈암집에 이 칼을 얻었다는 기록이 하나 있단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이 한국에 궁박물관을 만들면서 작성한 박물관 소장품 목록에서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다. 박물관에서 그 칼을 본 사람의 감상이 신문에 실린 기록이 몇 있다. 그리고 그 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어떻게 사라졌는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일제시기에 약탈했는지, 6.25 전쟁 시기에 미군이 약탈했는지, 전쟁 시기 박물관의 보물을 모두 부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라졌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알싶의 “잃어버린 쌍룡검을 찾아서”는 바로 이 칼을 찾는 과정이다.

칼을 찾는 과정에서 혜문스님이 미국에서 작성한 아델리아 홀 레코드 요약본을 확인하고 미군이 약탈한 보물 중 칼이 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공개되어 있는 아델리아 홀 레코드 요약본은 3장 분량으로 정리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보물이 약탈되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알싶은 아델리아 홀 레코드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국내 국가 관계 기관에 문의를 하지만 다들 3장의 요약본 말고는 내용이 없다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그알싶이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보관하고 있는 미국 메릴랜드의 국가기록보존소에 갔더니… 한국의 정부 기관이 요약본 말고는 확인할 수 없다는 아델리아 홀 레코드 전체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하고 있고, 몇 번 롤, 몇 번째 사진에 무엇이 찍혀 있다는 내용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그알싶을 보고 대충 정리한 내용. 나는 국립박물관 등 한국의 박물류를 담당하는 사람이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을 탓하기엔 퀴어락 상근자로 일하는 나도 충분히 못 하는데… ㅠㅠㅠ 물론 상근자의 상황과 국가 공무원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 기관에서 알바를 하며 느끼기를, 개인의 의지가 있어서 예산이 승인되지 않으면 절대 미국에 직접 갈 수 없는 특성 상 아델리아 홀 레코드 전체본을 찾으려는 의지가 누군가에게 있었다고 해도 안 되었겠지. 그알싶을 보며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명성황후의 표범카펫이 미국에 약탈되었다가 돌려받았다더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시민들이 국립박물관에 해당 보물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었다더라. 그알싶에서 본 내용이다. 암튼 그래서 박물관 담당자는 창고에 등록 대기 중이던 물건 사이에서 표범카펫을 찾아냈고 그것을 공개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그알싶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미국에 약탈되었다가 돌려받은 바로 그 표범카펫인지 확신할 수가 없는데 그 물건과 관련한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성황후가 소장한 다른 표범카펫인지 미국에서 돌려받은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약탈되었던 표범카펫과 관련하여 아델리아 홀 레코드는 전체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표범카펫을 돌려 받기 위해 이승만이 움직였다는 기록, 그리고 한국에서 표범카펫을 구입했으며 그때 작성한 영수증도 함께 등록되어 있었다. 기록상으로 표범카펫은 한국으로 반환/판매한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등록 대기 중이던 표범 카펫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하게 박물관을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기록을 등한시 하는 한국의 분위기와 더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표범카펫이 정말로 한국에서 구입했고 한국에 왔다면 그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 했지만 이를 등한시 했겠지. ‘우리가 기억하지 않느냐’며. 하지만 그런 기억은 1년만 지나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50년이 지나면?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만 남을 뿐이다. 해당 보물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누군가가 훔쳐갔어도, 무엇을 훔쳐갔는지 확인도 못할 수도 있고. 사건을 촘촘하게 기록하고 꼼꼼하게 설명을 적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이 없다보니 역사를 해석하기 어렵고 기록물의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기록을 등한시하는 분위기. 사실 이것은 퀴어운동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많은 단체가 작성한 회의록, 혹은 여타 많은 문서가 그 단체가 해소되었을 때 그냥 사라지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무지개숲의 기록, 회의록 등을 퀴어락에 기증해줬으면 하는 큰 바람이 있다.) 그 결과는? 누군가는 그 단체를 기억하겠지만 그저 그런 단체가 있었지, 정도만 남기 마련이고 그 단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단체를 기억하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고 그 단체는 그냥 잊힌다. 아마도 해소된지 5년도 안 되어서 그냥 없던 단체가 되기도 쉽다. 그 단체와 관련하여 찾아 볼 수 있는 기록이 극히 적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회자되지 않으면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그 단체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가 되기 쉽다. 귀중한 기록이 모두 증발하는 상황. 그 결과는? ‘잃어버린 쌍룡검’이 되기 쉽고 ‘명성황후의 표범카펫’이 되기 쉽다. 아카이브가 중요한 이유고 아카이브가 잘 되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아카이브 상근자로 일하며 늘 갈등한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에 집중할 것인가, 등록대기 중인 자료에 집중할 것인가, 등록대기로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기에 집중할 것인가? 원론적으로 다 해야 한다. 다 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모든 것이 집중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요즘은 한국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20년 전시회를 준비하며 트랜스젠더 운동 관련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 작업을 하다보면 지금 현재 발생하는 사건 관련 자료가 등록대기로 쌓이기 마련이다. 하나의 기획 등록이 끝나면 기존의 쌓여 있는 자료를 정리할 텐데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를 놓치기 마련이다. 혼자서 하기 어려워 발생하는 문제고, 인건비와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기도 하다. 더군다나 내년에도 퀴어락 상근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고 퀴어락이 속해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못 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한다. 퀴어의 기록은 어떻게 될까? 퀴어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자주 걱정이다.

그래서 쓰기를, 비온뒤무지개재단에 기부 부탁드립니다. http://rainbowfoundation.co.kr/xe/page_gJrA69 퀴어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