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인터넷 책방에서 포장 알바를 하던 겨울이었다. 사는 곳에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일하는 곳이 있었기에 오갈 때 마다 한 장의 CD를 듣곤 했다. 두 장 정도 챙기면 일하러 갈 때 한 장, 돌아 올 때 한 장.
그날은 12월 24일 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특별히” 저녁에 일을 하지 않았고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끝났다. 평소라면 9시 혹은 10시 즈음까지 일하는 알바 팀이 따로 있었지만 크리스마스이브니 일찍 끝난다고 했던가.
당시의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 무슨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며칠 전 산 앨범에 끼워준 샘플러 시디를 골랐다. 당시엔 몰랐지만 이후에야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어 했다는 알레스 뮤직의 샘플러 세 번째 앨범. 알고 골랐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한 번 들어보고 싶었기에 선택했다. 어떤 음악이 들어 있나 궁금했기에. 혹은, 언제나 그렇듯 앨범이 루인을 부른 건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추웠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크리스마스이브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사람 많은 곳을 유난히 싫어하기에 서둘러 걸었다. 어느 거리였던가. 귀로 흘러 들어가는 소리. 기타 연주에 이어 흐르는 음악.
Eva Cassidy의 Autumn Leaves였다. 음악이 몸에 흐르는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과 함께 멈춰 섰다.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고 눈물이 났다. 그 순간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Eva Cassidy와는 그렇게 닿았다. 이후 Eva Cassidy의 모든 앨범과 닿았고 이 계절이면 습관처럼 Eva Cassidy의 음악을 떠올린다. 이 계절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추억이 묻어있는 음악이 유난히 많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날이 날이니 만큼 종일 Eva Cassidy의 음악을 들으며 보낼 것 같다.
“다음에 만나자”, “내일 만나” 라는 말에서의 “만나다”는 “보다”란 의미다. “보다”는 시각으로 상대를 확인한다는 의미인데 시각으로 확인한다는 건, 시각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이처럼 시각을 통한 인식이 곧 경험임을 말해준다. 근대주체는 시각주체인데 사진/사진기는 시각주체의 욕망을 표상한다. 하지만 주지하다 시피 시각적 주체를 가정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배제하는 차별적인(폭력적인) 언어이다. 루인이 “보다”와 같은 의미의 언어를 쓰지 않기 시작한 건 여기에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시각주체로서,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으로 어떤 규범적 보기를 전제한다.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내가 보는 사물은 너도 같은 식으로 볼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觀點: 관점이란 말도 시각에 기반 한다)에선, 1.5의 시력을 가진 사람과 0.1의 시력을 가진 사람 모두 같은 방식으로 볼 것을 강제하고 색깔에 있어서도 모두가 같은 식으로 구분할 것을 전제한다.
0.1의 시력이지만 평상시 안경을 쓰지 않는 루인에겐 이런 다른 식의 보기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을 읽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웬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못 알아 보는데 이럴 경우 상대방은 무시한다고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나이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상대방이 루인보다 나이가 많거나 심지어 교수/상사이기라도 하면 상황은 더 골치 아프다. 어떻게 ‘해명’을 하고 나면, 왜 안경을 안 쓰고 다니느냐고 묻는데, 루인의 대답은, 안경 쓰기 불편해요. 렌즈는?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이런 불편함을 경험하는 루인에게 ‘진짜’ 문제는 안경을 쓰지 않고 ‘낮은’ 시력으로 다니는 루인이 아니라 동일한 시력으로 다닐 것을 강제하는 사회이다. 그들과 같은 시력으로 다닐 것을 강제하는 사회에서 시력의 기준은 누구의 눈으로 정한 것이며, 돌아다닐 때 상대방을 확인하면서 다닐 것을 강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0.1의 시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면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사회였을 것이다. TV시청은 1.5m 떨어진 곳에서 하라고 하는데, 그건 시청자의 시력이 그 거리에서도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음을 전제한다. 루인의 시력으로 안경 없이 그 거리에서 보려면 TV 화면도 엄청 커야하지만 그 만큼 자막과 같은 글씨 등의 크기도 충분히 커야 한다. 노안이란 말 자체도 특정 시력을 정상화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노안에 맞춘 세상이었다면 노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
더 불편한 말 중 하나는, 왜 다른 사람을 안 보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즉, 거리에서 마주쳤으면서도 인사하지 않았다고 불쾌해 하는 상대의 반응. 왜 거리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살피면서 다녀야 하는데? 더구나 다른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데다 시력이 0.1인 루인이니 당신이 먼저 말을 걸면 될 거 아냐. (상대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걸 주의가 부족하다느니 관심이 없어서라느니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더 화난다. 루인이 영화를 玄牝에서 보길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때때로 앞으로 돌려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뭔가 우울하다-_-;;)
규범화된 시각주체로서의 보기는 시력을 넘어, 소위 말 하는 색약, 색맹과 같은 ‘비정상’ 범주를 만든다. 모두가 같은 색깔 체계로 사물을 볼 것을 가정한다. (색깔 자체가 근대의 발명품이긴 하다.)
이 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소위 말하는 색약/색맹 검사표이다. 사람마다 이 그림을 읽는 방식은 다른데, 이 다름을 비정상규범에선 색약/색맹으로 규정한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식으로 색깔 체계를 가지고 있는 거지 어째서 이것이 색”약”이고 색”맹”일까. 색”맹”이라면 흑백과 회색 톤은 색깔이 아니라는 의미?
“만나”는 건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다. “맹”인(盲人: 맹盲자 역시 장님, 어둡다, 무지하다 등의 뜻을 가진다)의 모임은 만남의 자리가 아니란 의미일까.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는 것으로 아는 것도 아니다. 모임이 단순히 보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요즘, 감각하다(感覺-), 느끼다란 말에 매력을 품고 있다. “만나”는 자리는 단순히 보는 자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는 자리니까. 그러니 인사하는 방법도 달라지겠지. 다음에 “만나”요, 가 아니라 다음에 또 느껴요 혹은 내일 또 감각해요, 와 같이. 물론 느낌/감각은 같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뭔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다. 그래도 왠지 좋은 걸.
초등학생 시절에도 라디오를 듣던 몸의 흔적이 떠올랐다. 그땐, 방학 때, 숙제를 하기 위해서 들었다.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선 라디오의 어떤 방송을 들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다른 방송도 듣곤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흔적이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라디오에서 하는 상품 소개와 사연을 읽고 나서 챙겨주는 선물(=상품-_-;;) 때문이다. 어떤 방송에선 느닷없는 선물을 주기도 하는데, 여기 나오는 상품이 예사롭지 않다. 가끔은 루인도 참여해보고 싶을 정도로 끌리는 상품도 있고.
몇 해 전, 주로 아침 방송을 즐겨 듣던 루인은, 지금은 없어진 한 방송에서 몇 번인가 선물 신청을 했다. 영화 DVD를 준다거나 음악 CD를 준다고 하면 별다른 기대 없이 신청하곤 했다. 그런데, 누군가 챙겨주는 것도 아닐 텐데 신청만 하면 선물을 받았다. 그땐 무던했는데 지금 와 돌이키면, 그 방송 관계자 중,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자주 받았던 걸까.
라디오 방송과 선물을 떠올리면 항상 그때를 떠올렸다. 라디오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듯. 그런데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흔적이 몸에 남아 있다. 지금이 겨울이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초등학생 시절 들은 라디오는 따뜻한 느낌으로 떠오른다. 겨울에만 들은 것이 아니라 여름에도 들었는데 과거의 라디오가 주는 느낌은 따뜻함이라니.
그때도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열심히 라디오를 듣던 어느 날, 루인도 사연을 한 번 보내고 싶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 어느 날. 별로 예쁘지 않은 디자인에 삐뚤어진 글씨로 엽서를 썼다. 처음 라디오 엽서를 쓰는 티를 풀풀 내는 내용이었고, 우표를 붙이로 가기 전, 미리 읽은 엄마는 “보내지 마라”는 말로 내용을 가볍게 비웃어 줬다-_-;;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방에 들어왔을 때, 루인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아아, 녹음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을 놓쳤고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그때 진행자는 무슨 말로 루인의 엽서에 말을 덧 붙였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좋았지만 예상만큼은 기쁘지 않고 무덤덤하기도 했다. 그냥 남의 일이라도 되는 냥. 그렇게 방학은 지나갔고 개학하고 며칠 후, 방송국에서 선물이 왔다. 플라스틱 곽 속에 들어있는 볼펜 한 자루.
오랫동안 잊고 있던 흔적이다. 잊고 있던 흔적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 라디오는 참 따뜻하고 설레었구나, 했다. 지금과는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그땐 라디오와 소통하는 방법은 엽서를 보내고 우편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는 것, 거기에 운이 좋으면 소개도 되는 것이었다. 소개는 둘째 치더라도 사연을 보내는데 며칠이 걸렸다. 반면, 요즘은 인터넷은 물론 문자로도 사연을 보내니 빨라진 편이다. 선물의 크기도 달라졌고. 김치냉장고에 해외여행 상품권까지 등장했으니. 시간을 놓치면 다시 듣기로 들을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이 좋고 어느 한 쪽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다시 듣기는 루인이 좋아하는 서비스니까). 다만 그땐 참 따뜻했구나, 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지금의 라디오도 따뜻하지만 그때와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어쩌면 과거를 따뜻하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인지도 모른다. 한 편으론 속도에 안달하면서 한 편으론 느림을 욕망하는. 과거는 화석처럼 고정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이런 바람이 과거의 한 시간을 지금과는 다르게 포장하고 박제해서 그땐 지금과는 달리 좋았는데, 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렇게 말을 만들기 시작하는 건, 일테면 대중음악에서 1960, 1970년대 음악이 참 좋았어, 라는 식으로 말하며 요즘 음악을 폄하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서다.
그냥 갑작스레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 따뜻해졌다. 좋은 기억이니까. 그래, 어쩌면 그래서 그때의 라디오를 따뜻하게 느끼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