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연대로 읽는 황우석 사태

이 글은 앞서 적은 두 편의 글,
황우석이란 불편함 혹은 황우석이란 성폭력“,
황우석 사태를 성폭력이란 관점으로 보는 이유
와 연결 되어 있어요.

어제 인터넷으로 화제만발의 황우석 관련 소식을 접하곤 관련 기사에 초 단위로 리플이 몇 백 개씩 증가하는 걸 봤다. 오호라. 정말 클릭 두 어 번 하는 사이에 리플이 300여개에서 900여개로 바뀌는데, 후훗.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안 궁금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지점 보다는 일전에 쓴 그런 흥미 때문에 현재의 줄기세포가 있다 없다, 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한 번도 황우석을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여긴 적이 없기에 리플을 보며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접하는 한국 과학계의 위상 추락이니 국가 신인도 추락이니, 국가 망신이니 하는 식의 리플들이다. 황우석을 한국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간주하고 이번 논문에 문제가 있으니 국가적 망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일본군 성노예 ‘여성’을 “민족의 수치”라고 말하는 것, 국제 성구매 여행을 떠났다가 뉴스에 나거나 외국의 보호 동물을 정욕에 좋다는 이유로 잡아먹었다가 뉴스에 나는 걸 나라 망신으로 말하는 것은 모두 연속선상에 있으며 그 간극은 좁아도 너무 좁다. 아니, 좁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여성’인권침해/성폭력 문제이고 정욕에 좋다는 이유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말 그대로 생명권 침해며 근대 합리적 인간상이 만들어낸 지극히 이성적인 행동이지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몇몇의 행동에 의한 국가적 망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황우석의 이번 사태 또한 국가 망신이 아니라 단지 한 명의 “유명” 과학자의 윤리적/도덕적 문제이지 그 한 명이 대한민국의 모든 과학자의 윤리를 대표하며 대한민국의 망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이 또 다른 민족주의로 읽힐까봐 겁난다-_-;;)

하지만 그것이 국가 망신으로 여겨지고 한국의 과학계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로 여기는 것, 그것에서 많은 부분을 읽는다.

간단하게는, 한국이 “제 3세계”이기 때문에 한국 과학자 한 명의 문제가 한국 전체의 문제로, “황우석=대한민국 과학계”로 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기가 더 까다롭게 되었다는 인식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테면 미국의 한 과학자가 비슷한 일을 했다고 그것이 미국의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새튼이 황우석 논문에 공동저자로 참여했고 그가 논문 조작에 일조했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 망신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황우석 한 명의 일로 국가 망신 운운, 국가 신인도 추락 운운하는 인식 자체가 이미 (내면화된) 제국주의/식민주의/오리엔탈리즘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과잉대표화를 불러일으킨다. “짐이 곧 국가”라는 루이 14세의 말은 멀리 있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리플을 보며 너무 쉽게 만나고 있다. 황우석을 국가 대표 과학자로 여기고 그래서 황우석의 문제를 국가 망신으로 간주하는 것, 황우석과 자신을 거의 동일시하며 MBC의 보도가 (황우석과 동일시 된) 자신의 명예를 손상한 것 마냥 반응하는 것 모두, 자아의 경계가 없는 과잉대표화이다. ‘남성’들이 회사에 취직해서 일 하는 것은 국가와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여성’들이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개인적 욕망이나 자아실현, 이기주의로 간주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여성’에게 “왜 취직을 하려고 하세요?”라고 묻는 것 자체가 이를 나타낸다). 이런 과잉대표화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을 민족의 수치 등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일전에도 쓴 적 있지만) 이번 사건의 작동기제는 민족주의나 과도한 애국심이 아니라 ‘남성’연대라고 몸앓는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정치는 민족주의도 맑스주의/사회주의도 아닌 ‘남성’연대이다(선생님 만세!). PD수첩과 MBC가 그렇게 몰매를 맞는 것은 그것이 국익에 배반하는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난자 매매라는 “윤리적인 측면”에 문제를 제기해서 남성연대를 위반했기 때문이다(좀더 정치하게 들어갈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고통은 자아의 경계가 흔들릴 때 발생하고 폭력은 “나”와 타인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발생한다. 자아의 경계가 없어 내가 곧 한국(대표)이고 세계(대표)일 때 나의 인식을 공격하는 모든 것은 곧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근대 주체로서의 “나”는 필연적으로 ‘남성’젠더로 재현된다.) 황우석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로 그렇게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라고 몸앓는다. (2002년 월드컵, 이영훈씨 사건 등등 이런 반응은 많다. 솔직히 말해 내년 여름이 두렵다.) 이미 황우석의 “성과”가 황우석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된 상황에서 MBC의 보도는 곧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황우석을 비판하고 PD수첩을 ‘지지’한 사람은 그렇지 않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입장도 똑같지 않듯(황우석을 지지하며 MBC를 맹비난 했다고 해서 그 모두가 동일한 위치에 있다곤 몸앓지 않는다) 황우석 비판에도 내부에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일부엔 마찬가지의 불편함을 느낀다. 논의의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정치”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여기까지. 하지만 “Coming soon”이란 말은 루인도 안 믿음. 흐흐흐;;;;;;;;;;;;;;;

꿈이 떠오르다: 계단공포증

며칠 전, 부음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도서관 복도를 걷고 있는데, 그날 새벽인지 전날 새벽인지 날짜가 애매한 꿈이 떠올랐다.

어느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고 있었다고 하기보다 아주 높은 곳에 있었고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갈등하고 있었다. 그 높은 곳은 구름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고 안개 깊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장소였다. 그곳엔 이미 다른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루인을 보며 올라오라고 격려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끝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뒷짐 지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올라가길 두려워했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느끼는, 혹은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그런 아찔함과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올라가길 망설이게 했다. 한참을 망설였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막상 올라가니 별것 아니라는 듯 아찔함 이라던가 떨어질 것 같은 걱정은 없었다. 그 순간,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밀려왔다. (올라갈 땐 계단이 아니었다.) 루인은 계단공포증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옷을 속에 입고 학교에 간 꿈을 꾼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루인 스스로도 몰랐다. 학교 계단을 올라가다 누군가 루인의 옷을 잡았고 그 순간 안에 잠옷을 입고 있음을 들켰다.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이 꿈은 오랫동안 몸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몰랐다. 이 꿈이 루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옷을 사러 가면 입어보라는 점원들의 권유(강요?)가 있지만 옷 입어 보길 꺼려했다. 사기 전에 한 번 입는 것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불안함이 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지 않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제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런 불안에 시달린 적은 많다. 심지어 옷을 입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면서도 옷을 안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옷을 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불특정한 순간에 정말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옷을 안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고 옷을 안 입은 적도 없고 옷 가게에서의 불안이 실제 일어난 적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잠옷 꿈 때문에 그런 불안에 시달렸음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꿈이 그제서야 떠오른 것도 아니고 종종 떠올리는 내용이었음에도 그 꿈과 옷의 불안이 연결되어 있음은 몰랐다. 이 연결고리를 찾자 옷의 불안도 사라졌다(고고학적 탐사인가).

며칠 전의 꿈이 떠오른 이유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해서가 아니라 루인의 계단 공포가 꿈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루인은 계단을 잘 못 내려간다. 올라가는 거야 별 문제가 없지만 내려갈 땐 항상 불안해하며 조심해서 한 걸음씩 내디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꽤나 늦게 내려가는 편이다. 불안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어떡하나, 이다. 계단을 굴러 다친 적은 없다. 초등학생 시절 주변에서 많이 보는 깁스 한 번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 불안해했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불안이 너무 심해 계단을 내려갈 때면 항상 계단을 내려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 한다. 문제는 그 원인을 모른다는 것. 아무리 몸을 뒤져 봐도 계단과 관련한 흔적이 없다. 계단을 굴러 다친 적도 없는데.

하지만 이건 다친 적이 있느냐 없느냐, 와는 무관한 건지도 모른다. 계단을 내려갈 때 마다 갑자기 발 앞이 꺼져서 한 길 낭떠러지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관련 있다. 길을 걸을 때면 순간순간 놀라는데, 바로 앞에 길이 있음에도 벼랑 끝에서 발을 내딛는 것 마냥 헛디디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계단에선 이런 경향이 좀 더 심해진다. 내려가는 계간이 있음에도 발을 딛는 순간, 땅이 사라지고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꾼 적 없는) 악몽. 백일몽도 아닌데 때론 정말 발밑이 아무 것도 없는 낭떠러지로 착각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꿈이 떠올랐다. 꿈은 무슨 말을 걸려고 한 걸까.

채식주의 모임

한 카페에서 알게된 정보예요.
녹색연합의 베지투스란 채식모임이 있다고 해요. 루인도 방금 알았기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세미나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게시판 글을 그대로 옮기면(홍보성 글이라 일부를 그대로 퍼옵니다)

[#M_ 보기.. | 접기.. |
—————————————————

녹색연합 회원이 아니더라도 참석할 수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일시 : 2005년 12월 19일(월) 늦은 7시 30분
장소 : 녹색연합 1층 회의실(아래 약도 참조)

지난 모임에서 채식모임의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베지투스” 많이 이뻐해주세요^^*

앞으로 본격적인 채식모임이 시작됩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채식입문서를 읽고, 스터디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선정된 도서는 “하워드 F. 리먼의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문예출판사”입니다. 책을 읽고 오셔서 의문 나는 점에 대해서 서로 토의를 할 텐데요, 혹 처음 오시는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채식 모임의 임시 게시판이 오픈 되어 있습니다.
모임 운영에 관해 의견 등의 제안이나 채식과 환경 그리고 생명에 관련된 자료나 정보를 제공하고 싶으시면 http://www.mtcamp.co.kr/love.htm으로 올려 주세요.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모임 준비에 도움이 됩니다.
답변이나 게시글 또는 전화 부탁드리겠습니다. ^^

————————————————-_M#]

게시판에 가시면 약도 등을 알 수가 있네요.
관심 있는 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