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

지난 주 금요일, 정희진 선생님 강의 시간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 언급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보다 쇼크를 받았거나 짜부라졌겠지.

영화에서 군대는, 단지 은유일 뿐이다. 권력과 폭력의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따로 더, 리뷰를 쓸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아직은 쓸 용기가 없다. (쓴다 해도 이곳에 공개하지 않을 것 같다.) 직면하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감당하기가 힘들다.

겨울. 부음. 추위.

얼도록 찬 바람이 분다. 이런 날이 좋다. 너무 추워서 숨쉬기조차 힘든 날. 그래서 가픈 호흡을 뱉어야 하는데, 추위가 온 몸을 서늘하게 만들어서, 기도氣道까지 서늘하게 만들어서, 좋다.

이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좋아서 괜히 입을 벌리고 바람을 들이 마신다.

하지만 내일이 시험인데, 학부 마지막 시험인데 지금 이렇게 나스타샤랑 놀고 있다. 그 만큼 자신이 있어서냐면 결코 아니다. 반쯤 포기하는 몸으로 이러고 있다. 몸이 어수선해서 시험공부에 집중을 못 하고 있다. 오전 중에 친척의 부음을 들었다. 종종 친척의 죽음을 예감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다만, 전화를 받기 직전 불길한 예감은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이미 소식을 들었냐고 했을 만큼, 목소리가 나빴다.

이 추운 날 한 사람이 죽었다. 별 다른 느낌은 없다. 다만 고생이겠구나, 싶다.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내일 다시 해 봐야지, 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렵다. 하긴, 이럴 땐 미리 계획을 세워봐야 소용없다. 그냥 전화를 하고 나서 그 다음, 어떻게 하는 거다.

유난히 추운 날 한 사람이 죽었다. 사무실에서 내일 시험을 준비하다 지루해서 玄牝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을 만큼 추웠다. 그냥 허虛하다. 별다른 느낌도 없고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도 안 난다. 그저, 이 추위에 망자를 보내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는 산 사람들 걱정만 든다. 지난 추석, 몇 달 사이 머리가 하얗게 샌 모습을 봤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몸앓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자주 연락을 안 하던 사촌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싶었던 며칠 전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야지, 했는데 시간이 지났다. 예감이라면 그것도 예감이다. 다만 너무 사소하게 여겨져서 예감으로 인지 못했을 뿐.

유난히 추운 날씨다. 이런 겨울 느낌이 좋다. 하하, 웃기엔 찬 바람에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찡그리기엔 기도까지 차가운 느낌이 너무 좋은. 눈물조차, 콧물조차 흐르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이다.

잊힐 것도 없는데, 그래서 슬퍼

잊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 슬픈일이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언젠가 한 친구가 루인에게, 자기는 고백이 폭력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짝사랑으로 지내겠다고 말했지.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어. 그 시절 루인은 그렇게 몸앓고 있었거든. 원치 않는 사람에게 혹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사실 루인이 그랬어. 누군가의 갑작스런 말에 잊기 어려운 경험을 했어. 아직도 종종 그 일이 떠오르지만, 친구에겐 미안해. 그래도 고백 한 번 하지 않은 일은, 더구나 그것이 루인의 말 때문일 거란 몸앓이에 더더욱 미안해.

루인도 그 폭력성이 두려워 말 한 마디 못하고 혼자 앓기만 한 날도 많아. 하긴, 고백할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과 특권의 문제이긴 해. 어떤 사랑은 정말 고백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니까.

요즘 들어, 고백은 아니라도 한 마디 말이라도 붙여 볼걸, 해. 잊힌다는 것과 잊힐 것조차 없다는 것의 간극이 너무 크잖아. 그래서 잊힐 거라도 있게 한 마디 말이라도 해볼걸 그랬다, 는 안타까움도 남아.

그래서 어려워. 너무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