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힘에 대한 ‘순진한’ 기대

신문이나 각종 매체에선 미디어 세대라고 종이에 활자화된 글 보다는 이미지에 더 익숙한 세대라고 하지만, 루인은 미디어/이미지 보다는 문자가 더 익숙하고 친밀하다. 그래서 아직도 글의 힘을 믿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에 와선 환상이나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낭만에 가까운 일이란 건 알지만.

글을 쓰며, 혹은 활자화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몸앓이를 하며 가지는 바람 중엔, 이런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굳이 루인의 글이 아니라도 한 편의 글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다른 사람은 여러 의미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타인을 말하기도 하고 이반queer이 아닌 사람들, 비이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등, 다른 위치positioning를 가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시에 피해 경험자부터 가해자까지 한 편의 글을 통해 아픔으로 자신을 변화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글에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진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바람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 시대에 아직도 그런 꿈을 꾸느냐고, 시대에 뒤쳐져도 너무 뒤쳐진다고 말하겠지만,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바란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결국 그 꿈과 닮게 된다고 그러니까.

음악을 듣는 기기

요즘 MP3P에 빠져 있다. 물론 아직 산 것은 아니고 무얼 살까, 로 혼자서 고민하고 있는 단계. 웬만하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구매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갈등하기 때문에 지름신이란 건 없지만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찰라가 이미 지름신의 도래 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름신이란 것이 일시적인 충동구매라면 루인의 구매 패턴과 다르지만.

2001년에 CDP를 샀고 2002년 여름에 MDP를 샀었다.

CDP를 산 건 (그다지 활동적이진 않지만) 돌아다니며 들을 수 있는 기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사용하던 카세트테이프가 고장 났고 한 장의 앨범을 연달아 반복해서 듣는 걸 싫어해서 가방에 여러 개의 테이프를 넣고 다니는 것이 불편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CDP를 샀지만 불편함은 여전했다.

만족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장의 앨범을 듣고 나서 다른 앨범으로 바꾸기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불편함이 새로운 기기를 찾게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MDP. 사촌이 가지고 있는데 참 편해 보였다. 디스크 한 장에 300여 분의 음악을 녹음할 수 있고 이 정도 시간이면 웬만한 외출 시간 동안 디스크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 해 여름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산 MDP는 정말 편했다.

음질도 괜찮았고 여러 장의 디스크를 가지고 다녀도 부피 면에서 별 부담이 없었다. 심지어 한 학술회에선 녹음을 하기도 했으니 더 이상 불만이 없을 만도 했다.

불만은 없다고 해도 불편함은 있었으니 MD 디스크 녹음이었다. 사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MD녹음은 실시간이라 다소 불편함 점이 있다. 적당히 부지런해야 하고 녹음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곡 녹음이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한 번 녹음한 곡, 반복해서 듣기 일쑤였다. 물론 어떤 시절엔 Muse가 아니면 위로 받을 수 없었기에 Muse 한 장(MD디스크 한 장에 앨범 4~5장정도 녹음할 수 있다)이면 충분했지만 그렇지 않을 땐 역시나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기기를 살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한 부지런함만 있다면 충분했다.

문제는 녹음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면서다. 필요한 것은 녹음기였다. 그런데 MP3P에 녹음기능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일순간에 MP3P로 모든 관심이 쏠렸다. 으아아. 너무 매력적이잖아. 그전까진 MP3P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새로운 음악재생기기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녹음기능이 있다는 말에 반했다고 할까.

지난 번, 전자사전을 산 이유도 녹음기능이 한몫했다. 물론 다른 기능도 중요했지만 녹음 기능이 차지한 비중이 상당했다. 문제는 전자사전의 녹음 기능은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MP3로 변환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MP3P를 향한 몸은 더 커졌다고 할까.

요즘 MP3P 고르는데 매일 한 시간 이상씩은 사용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 고른 제품을 어제 저녁 바꾸기도 했다. 그 전 제품이 크기나 디자인 면에선 괜찮은데 음질이 어제 저녁에 고른 제품이 더 좋다는 정보 때문. 크기 차이가 좀 나긴 해도 음질 역시 무시 못 하니까.

아아. 아마 담 주 중에 사지 않을까 싶은 새 음악기기는 몇 년을 함께할까. 그렇다고 이전의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CDP는 현재 玄牝에서 CD를 들을 때 사용하고 있고 MDP 역시 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디스크에만 녹음되어 있는 자료(!!)도 있고.

또 새로운 기기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설레는 몸도 있다. 이전까진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이번엔 어울리는 이름도 붙여줘야지, 한다. 함께하는 모든 것이 소통하는 관계니까. 玄牝처럼, 나스타샤처럼.

가시야

건조하고 창백한 하늘을 보고 있어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무엇이 그리운 걸까요. 하지만 심장은 투명한 살유리처럼 쉽사리 깨어질 것 같아요.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산산조각 나겠죠.

찢어진 이름은 혈관을 타고 몸속을 빙빙 돈다고 해요. 그러다 심장에 박힌 살유리와 부딪히는 순간, 깨진 조각들이 다시 몸을 타고 돌죠. 숨이 막혀요.

그러니 당신을 떠올리면 천식에 걸리나 봐요. 약도 없는데 이런 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