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건드리지 마세요. 괜한 불똥 튈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째서 아침과 저녁 가격이 17,000원 씩이나 차이가 나는건데? 아침에 가서 확인하길 잘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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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이성애란 말을 사용할 땐,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결국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 이성애가 기준이라는 의미는 아닌가 하는 문제. 이성애가 절대적으로 지배적인 사회에서 비이성애란 말은 자칫, 이성애를 여전히 기준점으로 두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이성애란 언어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몇 가지 가능성 때문이었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도 적었듯이, 한국사회에서 비가시적인 성sexuality은 ‘동성애’나 다른 성애가 아니라 이성애heterosexuality라고 보고 있다. “언제부터 동성애자가 되셨어요?”란 질문은 있어도 “언제부터 이성애자가 되셨어요?”란 질문은 없듯, 정말 모르고 말하지 않으며 비가시화되고 있는 부분은 비이성애가 아니라 이성애이다. 당연시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 정말 이성애가 ‘정상/규범’인지,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동성애 담론이 ‘뜬’ 적은 있어도 이성애 담론이 뜬 적이 없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성애를 알고자 하는 순간 발생할지도 모를 ‘공포’ 때문이 아닐 런지.
암튼 이런 이유로 비이성애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비가시화되어 있고 숨어있는 횡포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랄까.
또 다른 이유로, 이성애가 아닌 성애로 동성애만 말해지는 것이 너무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많은 성적 행위가 있다고 말하면서 동성애만 말하면 다 말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불편했고 종종 폭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루인의 몸에선 이성애나 동성애나 젠더gender 범주 내에 있다는 점에선 그렇게 차이가 없는데(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또한 동성애의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와 함께 이반이론queer theory의 한 축을 이룬다는 트랜스섹슈얼리티/트랜스젠더를 루인은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문제이고 트랜스섹슈얼리티/트랜스젠더는 정체성identity/sexuality의 문제인데(물론 이렇게 단순화/이분화시키는 것이 문제가 있음은 알고 있다) ‘성적 지향’으로서 LGBT(Les/Gay/Bi/Trans)란 식으로 묶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이성애란 언어를 사용했을 때, 그 의미는 이성애gender/gender rule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아마 이랑 발제문으로 쓴 글에서 적은 듯한데) 루인은 젠더를 이성애주의/젠더환원론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에 바탕 해서 볼 때, 이성애는 젠더에 기반한 역할/규범들이고 이성애, 이성애주의, 이성연애각본 등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이성애는 단순히 ‘동성애’나 트랜스 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성연애각본과는 다른 식으로 관계 맺으려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관계 내에서도 이성애와 비이성애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연애관계에 있는 A와 B 중에서, A는 이성연애각본에 충실하려고 하고 B는 기존의 주류 연애관계에서 벗어나 다른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경우).
여기에 주로 비’이성애’란 식으로 작은 따음표(”)를 붙이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문제적이다. 도대체 루인이 말하는 ‘이성애’는 어떤 행위를 말하느냐는 것. 외부호명으로 이성애라는 식의 명명은 폭력일 뿐일 때, 누구를 그리고 어떤 관계를 이성애관계라고 부를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 어떤 몸앓이가 몸에 떠올랐는데 아직은 문제가 있어 몸앓이 중이다. 이런 부정확성 때문에 작은 따음표가 붙은 것이다. (‘여성’, ‘남성’에 붙이는 작은 따음표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렇기에 루인에게 비’이성애’란 말은 이반queer란 말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위에서 말 했듯, 이반이란 말 자체도 다시 읽어야 하지만). 루인처럼 비’이성애’자면서 이반이 있는가 하면 이반이지만 ‘이성애’자일 수도 있고 비’이성애’자이지만 이반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다. 기억 속에 잃어버린 것이라면 우산 한 번 정도랄까. 물론 정신은 잘 놓고 다니고 몸은 항상 따로 놀고 있긴 하지만-_-;;
쓸 일이 있어, 조교파일 속에 은행카드(겸 학생증)를 넣고 강의실로 갔다. 출석체크 하러 나가는 김에 은행일도 같이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강의실에 도착해서 파일을 열어보는 순간, 학생증이 안 보였다. 순간, 식은땀이 흐르며 막막해졌다. 걱정은 은행카드에 있는 돈이 아니라(그렇다고 적은 액수는 아니다. 두 달 치 조교 알바비가 들어 있었다.) 개인정보 노출이었다. 학생증에 적혀 있는 학번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이름까지. 이 정도면 개인정보가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돈이야 써버렸다고 치면 되지만 개인 정보는 그렇지 않으니 너무 불안하고 학생증을 찾고 싶어 속이 탔다.
출석 체크를 다 하고 지갑을 챙겨 은행에 가서 카드는 변경했다(학생증이 두 개 있었다, 옛 디자인과 새 디자인으로). 하지만 잃어버린 옛 디자인의 학생증이 자꾸만 불안하게 눈앞에서 왔다갔다… 흑흑흑. 심지어 카드 변경 처리하는 내내 히스테리와 불안증세를 나타냈다.
어쩌면 잃어버린 옛 카드는 이제 인연이 다 한 것인지도 모르고 앞으로 있을 지도 모를 액땜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학생증을 주워서 루인이 찾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생긴 새로운 불안증이다.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
#후유증이 얼마나 심했느냐면, 15분에 수업을 마치는데 5분에 마치는 줄 알고 마이크를 챙기러 갔고(5분에 마치는 날/수업이 없다), 방금 전 한 약속을 잊어서 우연히 만났을 때 왜 만났는지 잊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