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소재에 대한 태도 변화

한땐 아래 글처럼, 시험기간이면 시험이다,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온다는 식의 글을 별로라고 여겼다. 뭔가 유치해 보였다. 그렇게 믿던 시절엔, 그 시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지 하는 강박이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관한 글, 날씨에 관한 글은 가장 ‘자연스러운’ 글인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음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가을이 왔다는 글을 쓰는 것은 왠지 유치한 일이라는 식의 강박은,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세상에 무관함을 ‘쿨cool’함으로 착각하는(disembodiment, disinterest) 태도이다. 개입하고 있으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길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그냥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꾸준히 적어 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성실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시험기간인데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낭패인 경우.

학부 마지막 학기인데다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보니 ‘신분’은 학부생인데 몸은 학원(?, 크크)생이라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달까.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준대학원생 취급을 하고 있으니 중간에 낀 어정쩡한 상태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시험기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

심지어 어느 정도냐면, 학부 수업 선생님한테 가선, 이 과목만 들으면 졸업인데 그냥 D라도 주시면 안 돼요?, 하고 조르고 싶은 심정-_-;; 상태가 심각하다. 흐흐

처음엔, 마지막 학기 수업을 수학으로 들으니 여유 있게 그리고 재밌게 마무리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수업은 의외로 재미없게 진행하고-재미없다기 보다는 수업 준비가 덜 된 상태로 한다랄까- 몸은 루인의 공부에 빠져 있으니 서로가 따로 노는 형국.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나스타샤와 놀고 있는 상황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약”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거의 순간적인 결정 같지만 한편으론 그렇지도 않은 중요한 결정. 아마 11월 4일이면 좀 더 선명한 진로를 알 수 있으리라.

다른 입장에서 노래 듣기

가을이 오는 소리가 몸에 들려온다.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환절기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 속상하고 걱정이기도 하다.

요즘, 다른 때의 취향을 아는 사람들에겐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최재훈을 듣고 있다. (이 ‘의외’라는 반응은 사실, 상당히 폭력적인 반응이다. 그건, 상대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선입견에 고정시켜 자신이 알고 싶은 모습으로 만들려는 통제에서 벗어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덧붙이면, 이와 관련해선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지금 정도의 글은 너무도 단순화된 내용이다.) 신보일 리는 없고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듣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몇 곡의 음악을 듣고 있는 정도. (몇 장 가지고 있는 앨범은 CDP가 없던 시절에 산 테이프들이라 찾기 귀찮은(! -_-;;) 곳에 있다.)

한국가요를 들으면 가장 좋은 점이 가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장점은 때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폭력적인 가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아파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음악을 듣다가 아주 재미있는 가사를 발견했다.

[#M_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함께 있을 수 없어
우리 사랑은 이제 금방 시작됐잖아

내 인생 여기다 혼자 남겨두고 갈거니
보고 싶지만 널 보고 싶지만 안녕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 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잊어버려야 좋을 사람 잊어버릴 수 없어
그동안 행복 했어 안녕

#듣고 싶으면…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_M#]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노래인데 어느 드라마 주제곡인가 그런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노래가 재미있게 다가온 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때문.

이 가사가 귀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게이’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삼으면 딱 좋겠다는 것이었다. 대충 노래 가사처럼 그런 내용으로 해서. 흐흐.

음악이란 것이, 비단 음악 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그 텍스트를 만나는 사람/맥락에 따라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 노래 가사도 그런 하나의 전형으로 보였다.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게이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간다면, 스스로를 여성/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고 각자 이성애자로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서 루인이 본 이반queer영화 중 ‘게이'(로 보이는 혹은 그렇게 자신들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 중 이 노래가 어울릴 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하며 마구 키득거렸다. 히히히.

사실 가요들 중엔 이렇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사들이 상당수 있는 편이다. 가수와 제목이 떠오르진 않지만, 얼핏 보면 이성애gender연애제도의 성역할gender rule에 가장 충실한 듯이 보이는 가사 중에 의외로 ‘레즈비언’/’게이'(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로 볼 수도 있는 곡들이 많다. 그렇다고 어떤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안 된다거나 그렇게 비판하는 너의 위치가 문제야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자세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이런 자세가 바로 텍스트를 고정된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한(그리고 텍스트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재밌고 풍부한 삶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