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발행했던 섹슈얼리티 전문지 [버디] 전권을 모두 훑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한 작업이니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찾았다.
지금 한국에선 ‘성적지향은 타고난다’는 언설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렇게 믿건 아니건 상관없이 이런 식으로 발언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1998년 버디가 200명의 ‘동성애자'(아마도 LGBT를 포괄할 듯한데)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성적지향은 타고난다는 인식은 10% 중반에 불과했다. 30% 가량은 성적지향은 변할 수 있다고 답했고, 40% 중후반은 모든 사람은 양성애자라고 말했다. 얼추 20년에 걸쳐 발생한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고 그 동안 어떤 ‘사건’이 이런 인식론적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궁금하다. 다른 한편 1998년 당시의 대답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 맥락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저 말이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바이섹슈얼/양성애자 관련 모임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현재 알려진 모임은 ‘바이모임/웹진 바이모임’이다. 그 전에 어떤 모임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늦어도 1999년 1월엔 하이텔에 바이섹슈얼 전용 모임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LGBT/퀴어 운동에 바이섹슈얼은 언제나 함께 했지만 그럼에도 바이섹슈얼만의 모임이 필요했다는 뜻일까? 현재의 정보로 추론할 수 있는 맥락은 거의 없다. 단 한 가지만 확실하다. 바이섹슈얼만의 독자 모임이 최소한 1999년에 있었다는 점이다.
뻔한 소리를 덧붙이자면 기록이 있어도 그것을 확인하고 다시 역사로 재발굴하는 작업은 끊임없이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지금 나는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마치 ‘새로 발굴한 것’처럼 이해하지만 지금 나의 ‘발굴’ 역시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새로 ‘발굴’되어야 한다. 이희일(이송희일)님이 게이 역사를 네 번에 걸쳐 연재했지만 그 기록은 주목을 덜 받고 있다. 한채윤님과 친구사이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를 정리한 글을 썼지만 그 역시 다시 써야 하는 글이다. 다른 말로 LGBT/퀴어,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는 끊임없이 새롭게 발굴하고 쓰여야 한다. 그래서 누락된 역사를 재구성해야 하고 현재를 재구성해야 한다.
평생 할 일이 있구나. 하하하.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