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하려고 했던 책 제목은
[근대성과 페미니즘](리타 펠스키)(절판된 책이죠)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커밍아웃]
[전생의 슬픔]
[눈먼 자들의 도시]
-여기까지는 확실하고요
[여/성이론]1권
[여/성이론]5권
-이 두 권은 다소 불확실하네요.
아마 추석 끝나고 드릴 예정입니다. 몇 권의 책이 깔려 있어서..-_-;;
분양하려고 했던 책 제목은
[근대성과 페미니즘](리타 펠스키)(절판된 책이죠)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커밍아웃]
[전생의 슬픔]
[눈먼 자들의 도시]
-여기까지는 확실하고요
[여/성이론]1권
[여/성이론]5권
-이 두 권은 다소 불확실하네요.
아마 추석 끝나고 드릴 예정입니다. 몇 권의 책이 깔려 있어서..-_-;;
오늘 수업 내용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전통이나 편견에 대한 가다머의 해석은 흥미로웠다. Understanding도 positioning이란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의외로 ‘쉬웠’는데 그건 이랑과의 세미나를 통해, 그리고 그간 루인의 글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인식론이었기 때문이다(선생님은 understanding과 positioning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지만, 이는 선생님과 루인의 positioning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둘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때문에 정말 어려운 것은 가다머의 논의가 아니라 실제 살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M_ 주1 | 닫기 |
_M#]
문제는 선생님이 “결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발생했다. 해석학이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빠지면 너와 나는 달라, 라는 식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유동적이고 변동적이라면, 그래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소통 속에서 변화한다면 ‘결론’은 가능한가에 회의적이다. 실제로도, 어떤 글을 쓰며 ‘결론’을 내리는데 얼마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근대 합리주의에 기반 한 결론이란 것이 지식을 확립하고 고정된 것으로 보는 관점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해석학에선 결론이란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전에 전공예비과목이란 명목으로 생명과학실험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수업을 통해 얻은 앎은 소위 말하는 과학적/이성적/합리적인 결론이란 것도 실상 권위에 기댄 것이거나 합의와 평균치라는 것이다. 비슷한 조건에서 실험을 한다고 해도 조별 결과는 달랐고 그 차이가 심할 때도 있었다(물론 실험자의 ‘실수’를 간과할 수는 없다). 실험을 통해 요구하는 결론이란 것도 길게는 몇 십 년 전, 어떤 특정한 조건 속에서 행해진 실험의 결과를 그 실험자의 권위에 기대는 것이지 그러한 결론이 현재의 또 다른 조건 속에서까지 맞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맥락이 달라지면 다른 내용을 만나게 된다. (물론 실험실에선 어떤 특정한 결론을 요구하는 편이다.)
결론이라는 것, 어떤 논의를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욕망이지 않을까. 이런 과정을 통해선 이런 결론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유의 반영으로. 이런 의미에서 더 이상 ‘결론’은 필요 없다는 몸앓이를 하게 되었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결론이란 것의 의미가 기존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내용을 결정짓는 것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찰들/움직임들을 쓰는 것으로, 그리하여 다른 맥락 속에선 다른 식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결론이지 않을까.
world without stranger는 거리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옷의 로고이며 루인도 두 벌 가지고 있다. 이 말이 불편했고/하고 몇 가지 사항에의 몸앓이가 들어서 정리할 겸 했는데 결국 쓰지 않고 있다. 몸앓이가 든 그때의 메모 그 상태로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앞으로도 쓸 것 같지 않다.
쓰겠다고 작정을 했을 때 쓰지 않으면 다시 쓰기 어려운 글들이 있다. 아니, 거의 모든 글이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 쓰기가 어렵다. 그러다 그 주제로 다시 써야겠다는 강한 동기 부여가 발생하면 쓰기도 하지만 어지간해선 그런 경우는 안 생긴다. 그 순간, 그 어느 찰라가 아니면 미룬 글은 몸의 어느 곳에서만 맴돌 뿐이다.
이렇게 미뤄둔 글들이 몸의 곳곳에 숨어 있다. 다시는 활자화 되지 않을 내용들이며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툭, 하고 튀어나와 삶을 흔들기도 하겠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