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수업 청강

학점 등록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듣는 수업이라곤 수학 과목 하나 뿐이다. 그래서 청강으로 듣는 대학원 여성학 과목 하나가 소중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과목, 다른 과목과 연계된 과목이라, 다른 학과의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지난 주는 수업 소개 정도였고 오늘에야 비로소 수업을 시작했는데, 좋으면서도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선생님 수업이야 좋았다. 이 “좋았다”의 의미는 마냥 좋았다가 아니라 루인과 의견이 달랐던 부분도 있었기에 자극이 되었다는 의미에서의 좋았음이다. 소심한 루인, 수업 시간에 곧 바로 루인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다음부터는 그래볼까 하는 몸의 준비를 하고 있다.

실망스러운 부분은 같이 듣는 사람들. 대학원생이 되고 학기가 지나면 다들 그렇게 거만해지고 아는 척 하고 싶어서 안달하게 되는 것일까? 두렵다. 루인도 나중에 대학원에 들어가면 그렇게 될까봐. 자신감이 있는 것과 아는 척 하며 거만한 것은 다르다.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는 거만함이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불안함을 읽는다. 자신의 빈약함-가방끈은 길어져 가는데 그것을 바쳐 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때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거만함이 읽힌다. 정말 실망스러운 부분은 이런 부분이었다. 대학원생에 대한 어떤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수업 중 간혹 말하는 의견 혹은 ‘토론’은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그 거만한 태도가 더욱더 불안으로 다가온다.

수업을 듣다 잠시 정말 대학원을 가야하나, 하는 의문이 몸을 타고 돌았다. 그랬다. 이렇게 위계서열화 되어 있는 풍토에서 공부를 해야 하나. 위계서열만 있고 지적 성장은 부족하게만 보이는 풍토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루인이 원하는 만큼 얻어 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이니 이런 걱정이 너무 앞선 것이길 바라지만, 낯선 경험으로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학부생의 어설픈 소리라고 해도, 이런 느낌 지속해야 할 것이다.

#수업시간에 보여준 선생님의 이성애주의gender는 나중에 반드시 문제제기해야 할 부분!

하루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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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몸 안을 타고 놀던 글을 썼는데, 무심결에(!) 날려 버렸다. ㅠ_ㅠ
의욕상실로 다시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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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난 조교 생활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생활이 잡히고 있다. 몸의 패턴이 생기고 시간을 타고 놀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이번 주가 지나야 되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놀 수 있는 상태가 되어 간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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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해 지고 있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니다. 흔한 일이라서 딱히 더 적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은, 조교 일을 끝내고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양볕이 너무도 넓었기 때문이다. 시야를 가리며 몸을 감싸 버린 태양볕에 잠시 방향을 잃어 버렸다. 위치를 잃어 어디로 가야할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 버렸다. 길 위에 서서 잠시 멈춰버렸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지. 몇 번,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놓친 기억을 찾아 이어 나갔다.

아픔에 우선하는 부끄러움

며칠 전 스노우캣의 그림일기를 보곤 “맞아맞아”를 연발했다.

지난 봄 즈음이었나, 쉬는 시간에 강의실을 이동하던 길에, 넘어질 길이 아니었음에도 넘어졌던 적이 있다. 무릎을 찧었는데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반응은 “아파~(ㅠ_ㅠ)”가 아니라 “누가 봤음 어쩌지”였다. 그랬기에 재빠르게 일어나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자리를 종종 걸음으로 떠났다. 그 자리를 떠나서야 아픔에 대한 몸의 반응이 전해져 왔다. 물론 넘어진 그 순간에도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왜 부끄러움 혹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몸의 반응이 더 크게 다가왔을까.

무엇이 자신의 아픔 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해 먼저 반응하도록 만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