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에 얽힌 기억

스노우캣의 일기를 읽다가 깔깔 웃었다. 이 웃음이 항상 재미나 공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선 공감했다.

10년도 넘은, 채식을 처음으로 시작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어느 날 뜬금없이 채식을 하겠다고 말을 하니 부모님께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채식을 하겠다고 말 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식탁에 고기반찬만 나온 것이다.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지가 무슨…” 그렇다고 먹을 루인도 아니었으니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어머니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채식을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인식했다기 보다는 그냥 사춘기의 반항 정도로 받아들인 경향이 있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고기국물로 비빔밥을 주시는 날이 있었다. 그러며 하시는 말씀, “고기는 한 건더기도 없다.” 고기 국물이 싫었지만 그땐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처음 시작하며 단계를 정했고 그래서 육식만 안 먹던 때였기에 여의치 않으면 그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몸앓고 있었다. 더구나 루인 때문에 어머니에게 새로운 반찬 해달라고 하기도 그렇고(루인이 직접하기엔 귀찮았고-_-;;). 암튼, 먹다가 루인이 했던 말, “고기 투성이잖아요!!!”

스노우캣의 일기를 보면서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루인이 저 회덥밥을 본다면 “회가 너무 많아”라고 했겠지.

연고전? 고연전?

별 관심이 없는게 사실이지만 쑥의 블로그에서 읽고 그냥 답글 단다는 것이 그 이상의 무언가가 떠올랐다.

답글 중 일부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죠. 학벌, 지역, 나이주의, 계급, ‘장애’/비’장애’, 섹슈얼리티, 섹스(요샌 젠더란 말이 불편해서 섹스로 대체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네요) 등등.”이다.

그런 몸앓이를 한다. 만약 두 대학이 서울이 아닌 비서울지역에 위치했다면 그리고 서울에 위치한 대학 중에서도 사립의 양대산맥이라고 호명되는 대학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문화적인 현상으로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특화(specialize/privilege)된 서울이라는 공간과 한국의 학벌주의가 아니라면 “대학가 문화”라던가 “20대의 낭만”이라는 식으로 미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예전엔 고연전/연고전때 술집에 가면 공짜로 술을 마실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낭만’이 없다”는 식의 언설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1학년 때 동아리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한 말 중에 하나는 대학생은 얼마든지 객기를 부려도 된다는 것이었다. 대학생이기에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 들어있는 특권의식. 그리고 나이주의. 젊다는 것이 어떻게 해도 용서될 수 있다는 인식 속에 들어있는 근대 자본주의에 의해 형성된 생애주기이데올로기와 젊음이라는 특권은 결국 타자화와 착취를 발생시킬 수 밖에 없다.

어느 인터뷰에서 한 ‘장애”여성’의 지적처럼 이 문화는 또한 비’장애’인의 몸을 기준으로 한 ‘놀이’이기도 하다. 집단의식을 고양한다는 그 집단주의/민족주의적인 발상은 사실 특정 소수의 ‘정상성’에 다른 사람들이 맞추길(assimilation)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못한/않는 이들은 배제될 수 밖에 없고 이단자로 배척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성별화된 문화로서의 집단주의는 거의 항상 전시성폭력과 연속상에 놓여 있기에 끔찍한 몸앓이를 떨칠 수가 없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주었듯 그런 집단주의, 집단의식을 강화하는 행동들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내제하며 실제 행사한다.

이런 집단주의가 한국/서울에서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몸앓아 보면 그것이 고려대와 연세대라는 학벌주의/인종주의/’정상성’이데올로기 등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낭만’같은 건 아니다.

(고연전/연고전 문화 내부에서 발생하는 섹스,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문제는 여기선 논외로 하고. 정말 말해보고 싶은 부분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담보하는 가장 특화된 이들, 한국의 ‘정상성’을 획득한 이들만의 권력과시라는 측면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결국 폭력이라고 몸앓는다. 고연전/연고전이 어떤 부분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연속

이글루를 접었다. 그곳에 이곳의 정보를 남기진 않았다. 뭔가 길게 쓰고 싶지도 않, 예전에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의 한 귀절만 남겼다. 사실 그곳에 들리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몸앓았다.

…라는 말은 거짓에 가깝다. 그냥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곳에 오는 사람은 루인을 오프라인에서도 아는 사람들이기에 언젠간 직접 물어볼 거라 몸앓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은 세 번째 블로그고 어쩌면 다섯 번째 블로그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오래 정착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이글루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담없이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