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예측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활동을 시작하고 1~2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 아니면 그 보다 몇 년 더 지났을 때였나. 같이 활동하던 ㅋㄷ가 내게 말하기를, 루인은 (흔히 말하는) 활동가는 못 될 거고 연구자인데 운동판, 활동판에 감이 있는 연구자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 시절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했지만 연구자 운운할 깜냥 자체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그때도 쪼렙인 건 마찬가지다. 아울러 나는 오래오래 활동가로 살아갈 거란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도 ㅋㄷ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나는 ㅋㄷ의 평가가 꽤나 정확할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활동가와 연구자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막연한 감으로 대책 없이 나누자면, 나는 연구자, 혹은 학생, 지식노동자로 더 동일시하는 편이다. 아니, 이런 저런 구분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나를 학생으로, 영원한 학생이길 바라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나 학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냥 학생으로 살아갈 듯하다. 공부를 하기 위한 시간,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 시간 일정을 조율하는 식이다. 하루에 8시간을 진득하게 공부할 수 없는 상황(물론 퀴어락 업무 자체가 연구의 일부지만 어쨌거나 뭔가 좀 다르다)이 때론 슬프고 속상할 때도 있는 그런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몸, 즉 학생이란 용어 본연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듯하다. ㅋㄷ의 예측은 참 대단하지. 그땐 나도 몰랐는데 그걸 예측하다니.
영원히 쪼렙 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갈등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혹은 동의한다고 믿은 입장이나 지향이 사실은 나를 배신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곤혹스럽다. 간단하게 말하자. 성범죄 처벌 관련 법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고민했다. 화학적 거세법은 강력하게 비판했고, 처벌 수위가 높다고 범죄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처벌은 필요함에 동의한다고 고민했다.

그런데 페미니즘 정치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구축된 성범죄 처벌법이 트랜스젠더퀴어, LGBT/퀴어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면?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실제 성범죄 처벌 관련 법은 퀴어의 삶이나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말로 형사법, 성범죄 관련 법을 퀴어하게 독해하는 작업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혹스러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크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논의를 어떻게 정교하게 구성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기존 법적 가치나 여성운동 단체, 페미니즘 단체의 지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부정할 부분은 아닐 거라고, 지금은 고민한다) 어떻게 퀴어하게 문제삼고 재구성할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뮤즈 공연 후기

후기라기엔 짧은데…

하얗게 불태웠다. 세 번째 곡이 지났을 때 ‘아, 이전과 같은 체력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이대로 쓰러질까란 느낌도 왔다. 다음부턴 지정좌석으로 예매해야겠다고 고민했다. 하지만 방방 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하얗게 불태웠다.
2집에서 세 곡을 연주했고, Citizen Erased를 연주할 땐 눈물이 났다. 이 곡을 또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그리고 노래에 얽힌 기억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무려나 마지막 곡 Knights of Cydonia로 완전 불태웠고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럼 어때. 즐겁게 놀았는 걸. 즐겁게 불태웠는 걸.
내일은 힘들겠지만 즐거웠으니 충분하다. 충분히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