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고 그래서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는 일이 어쩐지 편안하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 나는 아직 한참 어린 나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고, 어떤 사람에겐 나이가 든 상태다. 나이가 들었다기엔 뭔가 어정쩡하지만 상관없다. 그냥 나이를 먹는 일이 편안하다. 혹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점을 깨달을 때마다 안심이 된다. 언제나 내 법적 나이로 보이는 얼굴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데 대충 그런 것도 같아 괜찮다.
그러고 싶었던 적 있다. 23살 혹은 27살엔 생을 마감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정말로 스스로 마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엔 미련이 남아서, 어떤 순간엔 성공하지 못 해서 그 모든 나이를 지나왔다. 그 모든 나이를 지나 몇 년이 지나자 어느 순간 편안해졌다. 흔히 남들이 말하는 ‘이룬 것’도 없는데 그냥 편안해졌다. 늘 불안하고 취약하지만 그냥 이런 불안과 취약을 조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렇게 되었다. 불안과 취약함이 없어지진 않지만, 불안과 취약함은 내 삶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지만 그냥 이것이 내 삶의 일부란 점을 묵인할 수 있게 되었다. 비염을 내 삶의 동반자로 인식하듯. 요즘 들어 비염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한두 시간씩 뜬눈으로 지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비염 자체는 그냥 받아들이듯. 불안하기 싫다고, 취약하기 싫다고 애쓰기보다 그냥 그걸 나의 일부로 인식하는 태도가 생긴 건 괜찮은 일이다. 나이가 더 들면 이런 불안과 취약함을 지금보다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좀 더 퀴어할 수 있으면, 좀 더 변태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봐야 한없이 평범하고 평이하겠지만.
어차피 여분의 삶이니까.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육십대가 되었을 때도 지금 알고 있는 많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만날 수 없다면 그건 또 그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 혹은 불가피한 상황이 야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칠십대에도 지금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퀴어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여분의 삶을 살면서 참 욕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