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혹은 동의한다고 믿은 입장이나 지향이 사실은 나를 배신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곤혹스럽다. 간단하게 말하자. 성범죄 처벌 관련 법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고민했다. 화학적 거세법은 강력하게 비판했고, 처벌 수위가 높다고 범죄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처벌은 필요함에 동의한다고 고민했다.
그런데 페미니즘 정치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구축된 성범죄 처벌법이 트랜스젠더퀴어, LGBT/퀴어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면?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실제 성범죄 처벌 관련 법은 퀴어의 삶이나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말로 형사법, 성범죄 관련 법을 퀴어하게 독해하는 작업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혹스러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크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논의를 어떻게 정교하게 구성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기존 법적 가치나 여성운동 단체, 페미니즘 단체의 지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부정할 부분은 아닐 거라고, 지금은 고민한다) 어떻게 퀴어하게 문제삼고 재구성할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