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잡담

양성평등이란 말 자체가 문제입니다.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도 아닙니다. 양성평등이란 말은 남녀 평등을 지향하는 언어가 아니라 인간을 양성으로 규제하는 언설이죠. 개인이 양성이란 이원젠더 규제에 포섭될 때만 평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겠다는 거고요. 다른 말로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양성평등이란 말은 매우 문제가 많은 언설이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언어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트랜스젠더퀴어를 사유하지 않는 젠더는 모든 사람을 억압하고요. 즉 성소수자의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습니다.
오는 10월 9일인가,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를 한다고 합니다.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은 성적소수자를 포함하지 않는다며 대전시 성푱등조례 개정을 요구했고 대전시는 조례를 개정했고 이에 항의하는 행사라고 알고 있고요. 그 행사에서 30여명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든다는데 한마디를 요청받아서 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10초 이내, 한두 문장 정도 나갈 듯합니다.
사실 양성평등 개념은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재앙이라고 말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말 자체가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재앙이 현실이기도 하지만 은유기도 해서 결국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잘 한 거 같아요.
마지막 문장은 참가자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썩 내키지 않는 표현입니다. 뭐라 말하기 힘들다 싶게 좀 찜찜한 표현이라서요. 인권이 곧 평등이냐 싶고, 성적소수자의 인권이 성평등과 긴밀하지만 전제 조건일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성적소수자의 인권이 성평등과는 또 어떤 관계인가는 깊게 논해야 할 점이니까요. 각 용어 자체도 따져야 하고요. 물론 구호가 복잡하면 구호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포기해야 하는 점은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통 구호를 말했고요. 하지만 제가 평소에 쓸 언설은 분명 아닙니다.
혹시 그날 시간이 되면 많은 분이 참가하시면 좋겠어요. 🙂
 

정희진, 남성혐오는 가능한가

여전히 혐오, 여성혐오가 중요한 이슈로 논의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정희진 선생님의 “‘남성혐오’는 가능한가: 여성주의와 양성평등”이란 글이 월간 [인물과사상]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이분법 자체를 질문하며 혐오를 살피는 글입니다. 관심 있는 분이 많으실 듯하여 …

여성주의는 ‘여혐’에 대해 ‘남혐’으로 맞서는 사유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여자’ 혹은 ‘남성’과 ‘비 남성’으로 나누는 권력에 대한 질문, 인간의 범주에 관한 인식론이다.“(121)
여성 혐오(misogyny)는 뿌리가 깊지만, 혐오의 대상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고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들조차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여성주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 사회정의를 위한 가치관으로서 중요한 인식론이자 방법론이다. 여성주의는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동시에 혐오 문화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주의를 전자에 국한하여 사고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인식이다.“(122)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

트랜스젠더퀴어 맥락에서 인권을 다시 살핀 강연 후기

확실히 강연 준비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얼추 일주일 가량을 계속 스트레스 받으며, ‘아, 하기 싫다’ ‘아, 빠지고 싶다’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보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준비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저 강연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강연을 더 자주, 많이 했다면 스트레스가 없어졌을까 싶지만 모를 일이다. 정작 강연을 하고 나면 괜찮은데 하기 전까지의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결국 강연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다짐을 한다. 물론 몇 가지 예외가 있겠지만.
어제 정말 놀랐고 고마웠던 일이 있었다. 트랜스젠더퀴어 단체인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http://blog.naver.com/queerrainbow)에서 정말 많은 분이 오셨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우리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와야죠”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정말 고맙고 힘이 나고, 또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었다. [편지 고맙습니다! 🙂 ]
고백하건데 사실 어제 강연을 망칠까 했다. 호호호. 강연을 대충해서 더 이상 강연할 일이 없도록 하면 좋겠다 싶었다. 호호호. 그러다 다른 이유가 생겨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여행자에서 많은 분이 오시는데 망쳤다면… 휴.. 그나마 다행이다… (강연을 잘 했다는 건 아닙니다. ㅠㅠㅠ)
그나저나 트랜스젠더퀴어 맥락에서 인권을 다시 살피는 작업을 글로 써야겠다 싶다. 젠더를 상황으로 재구성하는 작업과 함께. 그런데 언제 쓰지? 냐하하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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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늦었지만 여행자의 정식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항상 순풍이 불진 않겠지만 멋진 여행이길 응원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