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방문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블로그에 몇 명이 방문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블로그 자체 관리자 페이지에서 계산하는 방문자 인원이고 다른 하나는 구글 애날리틱스에서 계산하는 인원이다. 대충 보면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에서 알려주는 방문자와 구글 애날리틱스에서 알려주는 방문자는 최소 10배에서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구글 애날리틱스를 기준으로 하면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가 과장을 하는 것이거나 후하게 계산하는 것이고, 관리자 페이지를 기준으로 하면 구글 애날리틱스가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블로그에 광고라도 달겠다면 구글 애날리틱스를 기준으로 하기 마련이라, 구글 애날리틱스가 더 정확하겠지? 아마도.
예전에 블로그 광고로 수익 올리는 방법을 정리하는 글을 읽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구글 애날리틱스와 연결하고 글을 꾸준히 쓰면서 대충 한 달 정도 지나면 100명 이상은 방문한다고 했다. 오호호. 그 사람이 염두에 둔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충 그렇다고 했다. 나는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럼 어느 정도일까요? 오호호. 사람들이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몇 명 정도 방문하는지 궁금하시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 ‘모모님도 읽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가 아니라 ‘모모님도 읽고 있어!’라고 확신하는 바로 그 사람만 방문하고 있습니다. 우후후.
무엇보다도 ‘변방의 쪼렙 블로거’라는 나의 자기소개는 통계가 증명한다. 이히히.
나는 이 상황이 즐겁고 안심인데 더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뭐라고 떠들어 봐야 논란은커녕 극소수 방문자에게만 읽힐 뿐이다. 논란이 발생하려면 방문자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는데 내 블로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 블로그에 악플이 없는 이유도 그냥 무관심한 블로그라 그렇겠지. 뉴후후. 아마도 (정기, 부정기) 방문자는 이미 내가 뭐라고 떠들지 예측할 테니 헛소리를 해도 자비를 베풀어주시겠지. 뉴후후.
언제나 지금 쓰는 글이 내가 출판할 수 있는 마지막 글이길 기대하지만, 결코 그런 글을 쓰지 못 하는, 그런 글을 쓸 용기와 언어가 내게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선 그냥 고만고만한 글을 생산할 뿐이다. 그 고만고만한 글이나마 읽겠다고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고마울 뿐이다. 정말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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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과는 별개로, 방문자가 0이라고 해도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겠지.

어떻게 사유하고 말할 것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
미국 스톤월 항쟁 이후 게이 운동이 본격 만들어질 때 주요 역할을 한 이들 상당수는 세대 간의 사랑(혹자는 소아성애라고 부르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세대 간의 사랑은 매우 익숙한 실천이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변함에 따라 세대 간의 사랑 실천은 지워지고 그냥 게이로만 기록에 남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역사가 기록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가 구성되는 방식을 함께 말해준다. 성적 지향/선호 이슈는 섹슈얼리티에서 젠더 개념을 지우고, 인종 이슈를 지우고, 나이 개념을 지우고, 계급 이슈를 삭제한, 달리 표현하면 여러 범주를 동질의 것으로 고정 시킨 것이 성적 지향 개념이다. 또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될 법한 모든 것을 삭제하며 역사를 멸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사유할 순 없고 모든 곳에서 활동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떻게 사유하고 말을 할지 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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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얼추 10년 전 정희진 선생님 강좌를 열심히 들었다. 무료 유료 다 들었는데, 한 번은 모 대학교 총여에서 주최한 강좌에 갔다가 ‘당신 나 스토커야?’란 말을 들었지. 후후후. 그 후 또 다른 특강에서 선생님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 “제 강의를 이미 들어보신 분?”이란 질문을 했고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이크를 켠 상태로 “쟈긴 50번은 들었잖아”라고 말씀하셨지. 후후. 물론 당시 기준으로 50번은 아니었다. 그저 당시엔 대학에서 수업을 하셨기에 수업을 두 학기 연달아 들었고, 그 다음 학기엔 청강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녹음 파일로 들었지. 후후후. 그 외에도 여기 저기 찾아가며 들었지. 사실 특정 주제 강의가 아닌 이상 특강 내용은 대체로 겹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수업 강의까지 들으면 많은 내용이 비슷하다. 때론 거의 같은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들으면서 내가 배웠던 건, 어떻게 생각하고 상황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였다. 처음부터 그것을 배우려고 쫓아다니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하길 참 잘했다 싶다. 물론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느냐면 그건 아니란 게 함정.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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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때도 선생님은 인기강사이자 저자였는데 지금도 그렇다.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쩐지 기분이 가라 앉아서…

소개글을 읽고 매우 기대한 영화가 별로란 걸 스크린으로 확인하자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망상했다. 다음주에 모처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때 가장 좋은 질문을 하시는 분에게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를 선물로 드릴까란 고민을 했다.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책을 받는 사람은 떨뜨럼하겠지.
돌이켜 생각하면 필진 면면이 엄청나지. 나만 빼면. 나는 흑역사를 쌓았지만 다른 글은 대체로 다 괜찮지. 절판이라 아쉬운 책이지만 절판이어서 다행이기도 하지. 후후후. 책은 별로 안 팔렸고 재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출판사가 출판사업을 접으면서 절판되었는데 그걸 나중에 알고 재고가 있으면 받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전달은 되었지만 받을 방도가 없겠지. 앞으로도 영영. 어떤 글은 여전히 유의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뿐이기도 하고.
아무려나 어째서인지 영화의 여파로 정말 오랜 만에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가 떠올랐다. 아마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여러 권의 자서전이 축적된 뒤에 등장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퀴어 논의에 집중한 이론서다(나는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고 싶다). 앞으로 또 언제 그런 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남성성과 젠더]나 [성의 정치 성의 권리]처럼 퀴어 페미니즘을 논하는 책은 나왔지만 트랜스젠더퀴어 이슈에 집중하는 단행본(번역본이 아니라 한국이란 맥락에서 생산한 논의)은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뭔가 기획 중이란 이야기는 언젠가 들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트랜스젠더퀴어 맥락에서 논의를 재구성하는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누군가가 많이 많이 써주면 좋겠다. 쪼렙인 나 따위 말고 훌륭하고 뛰어난 누군가가! 나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살아야지. 글 쓰고 글을 읽고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아주 못 만든 건 아니지만 기대를 부정적 의미로 배반한 영화의 여파가 크구나. 무려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를 떠올리다니.
심지어 이 글은 그냥 나오는대로 쓰고 있다. 맙소사. 하지만 공개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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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을 쓰지 않는 이유는, 제가 오늘 악몽을 꾸다 깨어나선 잠을 계속 설쳤고 비염이 제대로 터져선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상태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태였다면 평가가 달랐을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