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버스도 폭주해야 하는 것일까?

야간 산책을 하고 있었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 버스가 횡단보도를 절반 정도 걸친 상태로 정차하더니 아이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보행자용 신호가 파란불인데 버스는 질주를 했다. 바로 그 앞을 지나가기 직전의 사람이 있었는데도.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 버스도 폭주를 해야 하는 시대일까? 궁금했다.
오토바이가 폭주하고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배달 1분만 늦어도 화를 내는 사회에서 배달원의 목숨보다는 신속한 배달이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배달원은 부득이하게 목숨을 걸고 폭주한다. 그런데 어린이집 버스도 그런 것일까? 그냥 그 운전기사만 교통신호를 무시한 일회적 사건에 불과할까? 그런데 어쩐지 어린이집 버스도 폭주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것만 같아 몸이 복잡했다. 안전과 위험과 사고가 공존해야만, 그 아슬한 줄타기가 언제까지나 아슬하게 유지되어야만 하는 사회는 언제까지 유지될까?

동의는 관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기존의 지배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 실천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근거는 동의다. 내가 상대방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폴리아모리의 경우 다자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기존의 관계 및 새로운 관계에게 동의를 구하는 점을 강조한다. 나 역시 이 글을 시점에서는 동의가 무척 중요하다고 고민한다. 하지만 문득 고민하기를 동의를 통한 관계란 점을 강조함이 족쇄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페미니즘 연구, 장애연구를 포함한 많은 연구에서 동의는 단순하지 않은 개념임을 지적해왔다. 어떤 사람의 동의는 동의로 구성되지 못 하며, 어떤 동의는 강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동의는 언제나 논쟁적 개념으로 인식된다. 나의 고민은 단순히 이런 성격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직감에 불과하지만 동의를 통해 새로운/다른 성적 실천, 젠더 실천을 정당화하는 전략이 바로 그 실천 자체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관계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혹은 동의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관계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언설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끊임없는 대화와 동의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는다. 젠더 관계에선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믿음이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 자체를 정당화한다면 이것은 다른 의미다. 물론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고민이다.

잡담 요것조것

어제 블로깅에 덧붙이면 이혼여성의 생활습관병은 본인이 관리를 안/못 한 측면도 있지만 결혼 가족 관계여서 발생하는 측면이 더 큰듯하다.
종종 목 주변이 가려울 때가 있어 음식을 잘못 먹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햇볕 알레르기였다. 아하하… ㅠㅠㅠ 햇볕 쬐는 걸 좋아하는데 오래 쬐면 목 주변이 가렵고 붉게 돋는다. 방법은 두어 가지. 자와선 차단제를 발라 그나마 약화시키거나 머플러를 사용해서 목을 가리거나… 둘 다 귀찮아… -_- 머플러는 특히 더운데… 끄응… 그냥 햇볕을 최대한 피하거나 시원한 머플러를 구매하거나 해야겠구나… ㅠㅠㅠ
종편을 보면 종일 건강 관련 정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건강 강박 사회라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정말 건강 강박이라면 이미 사람들이 몸에 좋은 온갖 것을 먹으며 관리하고 있겠지. 몇 년 전 몇몇 연예인이 채식을 한다고 하여 채식 열풍이 불었다는 시기가 있다(미디어의 평가다). 물론 채식 열풍은 몇 년에 한 번씩 미디어에서 부는 열풍이다. 암튼 그 열풍이 불 때 고기 소비는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고 한다. 건강 정보가 넘친다지만 인스턴트 식품 판매점이 넘쳐난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을 유난스럽다며 얕보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니까 건강에 유해하다는 식품점의 성행과 건강식품 시장의 성장, 텔레비전에 나와 건강 정보를 말하는 쇼닥터의 증가와 병원 수익 증가 등은 서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 강박 사회라기보다는 그냥 거대 산업의 순환 고리가 구축되어 있다.
(쇼닥터는 방송에서 건강 관련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도 괜찮은데 어차피 사람들이 따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그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