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는 관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기존의 지배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 실천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근거는 동의다. 내가 상대방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폴리아모리의 경우 다자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기존의 관계 및 새로운 관계에게 동의를 구하는 점을 강조한다. 나 역시 이 글을 시점에서는 동의가 무척 중요하다고 고민한다. 하지만 문득 고민하기를 동의를 통한 관계란 점을 강조함이 족쇄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페미니즘 연구, 장애연구를 포함한 많은 연구에서 동의는 단순하지 않은 개념임을 지적해왔다. 어떤 사람의 동의는 동의로 구성되지 못 하며, 어떤 동의는 강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동의는 언제나 논쟁적 개념으로 인식된다. 나의 고민은 단순히 이런 성격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직감에 불과하지만 동의를 통해 새로운/다른 성적 실천, 젠더 실천을 정당화하는 전략이 바로 그 실천 자체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관계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혹은 동의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관계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언설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끊임없는 대화와 동의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는다. 젠더 관계에선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믿음이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 자체를 정당화한다면 이것은 다른 의미다. 물론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고민이다.

잡담 요것조것

어제 블로깅에 덧붙이면 이혼여성의 생활습관병은 본인이 관리를 안/못 한 측면도 있지만 결혼 가족 관계여서 발생하는 측면이 더 큰듯하다.
종종 목 주변이 가려울 때가 있어 음식을 잘못 먹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햇볕 알레르기였다. 아하하… ㅠㅠㅠ 햇볕 쬐는 걸 좋아하는데 오래 쬐면 목 주변이 가렵고 붉게 돋는다. 방법은 두어 가지. 자와선 차단제를 발라 그나마 약화시키거나 머플러를 사용해서 목을 가리거나… 둘 다 귀찮아… -_- 머플러는 특히 더운데… 끄응… 그냥 햇볕을 최대한 피하거나 시원한 머플러를 구매하거나 해야겠구나… ㅠㅠㅠ
종편을 보면 종일 건강 관련 정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건강 강박 사회라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정말 건강 강박이라면 이미 사람들이 몸에 좋은 온갖 것을 먹으며 관리하고 있겠지. 몇 년 전 몇몇 연예인이 채식을 한다고 하여 채식 열풍이 불었다는 시기가 있다(미디어의 평가다). 물론 채식 열풍은 몇 년에 한 번씩 미디어에서 부는 열풍이다. 암튼 그 열풍이 불 때 고기 소비는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고 한다. 건강 정보가 넘친다지만 인스턴트 식품 판매점이 넘쳐난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을 유난스럽다며 얕보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니까 건강에 유해하다는 식품점의 성행과 건강식품 시장의 성장, 텔레비전에 나와 건강 정보를 말하는 쇼닥터의 증가와 병원 수익 증가 등은 서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 강박 사회라기보다는 그냥 거대 산업의 순환 고리가 구축되어 있다.
(쇼닥터는 방송에서 건강 관련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도 괜찮은데 어차피 사람들이 따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그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겠지.)

병의 악화와 합병증 발생에서 이원젠더 구조

발병하면 평생 관리해야 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합병증이 심각하다고 말하는 질병의 경우(예를 들면 당뇨병이나 혈관 관련 질병), 합병증이 발생하는 상황엔 이원젠더화된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합병증이 정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했는지, 합병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별개로 논해야 하는 사항이다.)
이성애결혼관계에서 남편 역할을 하는 사람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증상이 심해지고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대체로 남편 자신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고 고기 섭취를 줄이는 등 음식 관리를 해야하는데 이런 관리를 하지 않아서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아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증상이 심해지고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대체로 아내 자신이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 듯하다. 남편이나 여타 가족이 아내/어머니의 질병에 무관심하고 식습관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 등의 상황으로 인해 아내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합병증이 발생하는 듯하다. 당뇨병과 관련하여 무작위로 질문을 한 경우가 있다. (실제 인터뷰 내용입니다.)
질문자: 당뇨병에 대해 아세요?
답변자: 아니요, 잘 몰라요.
질문자. 그럼 주변에 당뇨병인 사람이 있어요?
답변자: 제 아내가 당뇨병이에요.
뭐, 이런 식이다. 아내가 합병증이 심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의 상황에 발생하고서야 남편이나 여타 가족이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이제라도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남편이 관리를 하기 시작할 경우엔 대체로 아내가 관리 중노동을 전담한다. 남편이 관련 정보를 찾기도 하지만 식이조절, 음식 준비 등은 온전히 아내 몫이다. 남편의 관리 성공 사례에선 거의 항상 아내가 음식 준비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내가 관리를 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경우는 남편을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거나 혼자 살고 있을 때다. 혼자 살고 있어서 더 관리가 안 되기도 한다. 하지만 관리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식단을 바꾸고자 할 때 혼자거나 남편을 개의치 않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듯하다. 아내의 관리 성공 사례에선 늘 본인이 직접 준비해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관계는 더 복잡하기에 다른 상황을 더 살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모습은 거의 항상 이런 식이다. 합병증과 질병 관리 자체가 이원젠더화된 양상으로 발생하고, 여성으로 드랙하는 사람이 가족 관계에 묶여 있을 때 병의 악화나 합병증 발병에 더 취약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