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 그러니까 LGBT/퀴어의 삶을 설명할 때 자주 ‘이렇게 태어났다’라고 말하고 타고났기에 차별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사용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집단의 길원평 씨도 그의 책에서 ‘동성애가 타고난다면 차별할 수 없기에 타고났다는 논리를 반박한다’고 했다.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면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유전자 구조 어딘가에 성적 선호/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음을 뜻한다. 타고난다는 말은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막연한 의미가 아니라 내 몸에서 그것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기 때문에 타고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다른 말로 1973년에 정신병 진단 목록에서 동성애가 삭제되었기에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라고, 폭넓게 말해서 의료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언설이 많다. 이런 인식은 트랜스젠더퀴어 운동과 동성애 운동이 갈라지는 중요한 계기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동성애자로 태어났다’와 같은 언설은 의료기술의 인증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내 몸 어딘가에 내 동성애 정체성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다는 발언이다.
다른 말로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은 LGBT/퀴어가 치료될 수 있고 전환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을 강하게 함의한다. 더 직접적으로는 앞으로 LGBT/퀴어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특정 유인을 정확하게 발견한다면, 산전 검사에서 부모는 선택할 수 있다. 산전 검사에서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 있다고 진단이 될 경우 거의 90%의 부모가 낙태를 선택하듯 ‘태아에게 트랜스젠더퀴어 유전자가 있다고요? 그럼 낙태하겠어요’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은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낙태, 선택권, 우생학, 의료 기술 개입, 사회문화적 태도 등이 복잡하게 얽힌 언설이다. 그리하여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란 말은 차별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발화가 아니라 차별을 더 위험한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발화다. 선택이냐, 생득이냐란 논의는 삶을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