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마주하다: 어머니와 건강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 관련 이야기는 1~2번 흘리듯 나오는 수준이었고 진로 문제도 1번 정도 나오는 수준이었다. 2박 3일 동안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 거의 반드시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길게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이야기 주제가 바뀌었다.
일상의 병리화, 의료화를 고민하고 관련 자료를 접하다보면 엉뚱하게도 어떤 성분이 어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함께 알게 된다. 머리가 나쁜 나는 이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는 동시에 잊어버리지만 간혹 기억한다. 그렇게 기억에 남긴 정보 중 몇 가지가 있는데… 혈액순환 관련 정보 중 일부와 면역력, 감기, 그리고 비염 관련 정보 중 일부다. 처음부터 이 두 정보가 내게 두드러진 건 아니고 어느 순간 내게 의미있게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는 늘 손발이 저리는 증상을 좀 심하게 겪었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관련 어려움을 겪으셨다. 최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걸 봤는데 혈액 관련 정보를 보다가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러자 또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환절기와 겨울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늘 감기에 걸려 있었다. 전화로는 늘 괜찮다고 하시지만 끊임없는 감기의 나날. 면역력이 약해서 발생하는 문제기도 할 테고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두 정보가 연결되자 어머니에게 각각에 해당하는 약이라도 사드려야겠구나 싶었다. 내가 효트랜스여서가 아니라(결혼 안 하는 나는 영원한 불효트랜스지) 그냥 그랬다. 그래서 ㄴ과 ㅍ을 챙겨서 부산에 갔는데… 이 두 제품을 계기로 어머니가 드시고 있는 건강보조식품 관련 이야기,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강 관련 이야기 등을 주로 나눴다. (덩달아 암웨이 종합비타민의 폭리도 확인했다…) 이제까진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주제기도 했고 어떤 의미에선 어머니가 가장 신경쓰고 걱정하고 계신 주제기도 했다.
무엇이 몸에 좋다 아니다, 어떤 제품이 이런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논의는 그 자체로 논쟁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동시에 이렇게 건강 강박 논의와 건강을 유난으로 여기는 태도 사이에서 병리화와 탈병리화, 의료화 논의는 별개로 탐문해야 할 이슈다. 학생인 내가 이런 이슈를 파고드는 것과는 별개로, 건강 제품을 통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몰랐던 점을 알아가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해당 제품이 실제 건강에 도움을 주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건강이 어머니의 주요 관심사라는 점에서 그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걱정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지.
아무려나 이번 부산 방문은 뭔가 좀 달랐다.

스트레스인 하루

어머니와 텔레비젼을 켜고 이런저런 일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ㄱ.
왜 박근혜 연설의 특징. “…합니다. (짝짝짝) 입니다. (짝짝짝) …않겠습니다. (짝짝짝)” 문장 하나 끝나면 박수를 쳤다. 도대체 왜? 별 내용도 없는 연설인데다 내용과 무관하게 도대체 왜 문장 하나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거지???
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어…’
광복70주년 기념 방송의 아나운서부터 거리 시민 인터뷰까지 모두가 하는 이 말.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어…” 도대체 왜 강대국이 되어야 하지? 강대국이 되면 시민의 삶은 뭐가 좋아지지? 정말 궁금했다. 세계 제일 강대국이 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여러 복잡한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지나요? OECD 가입국 지위로도 온갖 차별이 만연한데 무슨…
ㄷ.
광복 이후 70년을 기념하는데 각종 영상이나 언설은 모두 박정희를 회상한다. 경제 성장을 찬양한다.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로…”와 같는 언설은 넘치는데 경제성장이 독재정권의 탄압을 밑절미 삼았다는 지점,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과 관련한 비평은 전혀 없다. 그런데 박정희만 연상시키는 과거 회상을 현재로 바로 연결하는 역사 회고는 박근혜를 현재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방송은 끊임없이 박근혜를 1970년대의 유산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럼 누가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지? 아무려나 역사가 권력의 입장에 따라 달리 재현됨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다
아우, 짜증나.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보다.

건강을 트랜스젠더퀴어화하기

건강과 병리화 관련 자료를 보다보면 참 복잡한 고민이 계속 떠오른다. 이런 고민은 나는 건강 관리를 해야할까라는 매우 애매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사례. ㄱ은 혈관 관련 병으로 총 7번을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혈관 관련 병은 무척 다종다양한데 모두 동일한 진단명이었다. 의사도 답답한지 이 무슨 돈 낭비에 시간 낭비냐고 했다. ㄱ은 7번을 수술하고서야 금연을 시작했다. 금연이 유일한 예방책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예방행위였다. 7번의 동일한 수술 끝에 예방행위를 시작했다.
ㄱ의 삶을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기에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마도 공개하고 나면 곧장 후회하겠지…
ㄱ의 사례를 보며 나는 복잡한 기분에 빠졌는데 ㄱ은 7번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몸이구나란 깨달음 때문이었다. 일인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이원젠더 구조에 따른 병실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ㄱ은 그 구조가 별로 불편하지 않았기에 첫 수술 이후로도 예방책, 즉 이원젠더 공간에 다시 입원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또한 ㄱ은 7번의 입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 상황이구나… 한두 번은 입원할 수 있지만 금연으로 그 횟수를 줄일 수 있다면 혹은 더 이상 입원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선택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텐데 나에겐 입원비도 수술비도 없기 때문이다. 보험이나 다른 무엇이 지원된다고 해도 어쨌거나 지출해야 하는 입원비부터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나의 상황에선 재발하지 않는 상황을 선택할 텐데 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욕망은 경제적 상황보다 강하다. 욕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초월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할 수 있다.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 하기에 예방책을 마련하겠지…(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인데 내가 정말 소심했다면 책을 사지도 않았으리라… 지금까지 지불한 책값을 다 모으면 빚을 다 갚았겠지…)
아무려나 ㄱ의 상황을 보며 깨닫기를 결국은 입원하기에 적당한 젠더, 적당한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면 입원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나 자신 트랜스젠더퀴어고, 젠더 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뉜 공간 이용을 매우 꺼리는데 입원을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일까? 예를 들어 젠더 이분법으로 나뉜 공간 이용을 철저하게 거부한 비십대 젠더퀴어가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자신도 모르게 병원에 입원했고 병실은 자신이 거부하는 젠더의 공간이라면 이 상황을 마냥 수긍해야 할까? 병실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한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입원하지 않도록 몸을 관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지.
무엇보다 나의 경우 입원비도 수술비도 없기에 입원하지 않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즉 내 수입의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몸을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건강관리를 어떻게 퀴어하게 바꿀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퀴어의 맥락에서 어떻게 건강 관리를 다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다. 동시에 끊임없이 비만을 병리화하며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의 태도를 비판하는 작업과 건강관리의 트랜스젠더퀴어화는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도 고민거리다. 물론 안다. 이미 누군가가 이런 논의를 했으리란 걸. 찾으면 나오겠지.
ㄱ의 삶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타자화, 저소득, 이원젠더 구조, 비만, 건강관리, 트랜스젠더퀴어… 중요한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