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트랜스젠더퀴어화하기

건강과 병리화 관련 자료를 보다보면 참 복잡한 고민이 계속 떠오른다. 이런 고민은 나는 건강 관리를 해야할까라는 매우 애매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사례. ㄱ은 혈관 관련 병으로 총 7번을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혈관 관련 병은 무척 다종다양한데 모두 동일한 진단명이었다. 의사도 답답한지 이 무슨 돈 낭비에 시간 낭비냐고 했다. ㄱ은 7번을 수술하고서야 금연을 시작했다. 금연이 유일한 예방책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예방행위였다. 7번의 동일한 수술 끝에 예방행위를 시작했다.
ㄱ의 삶을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기에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마도 공개하고 나면 곧장 후회하겠지…
ㄱ의 사례를 보며 나는 복잡한 기분에 빠졌는데 ㄱ은 7번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몸이구나란 깨달음 때문이었다. 일인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이원젠더 구조에 따른 병실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ㄱ은 그 구조가 별로 불편하지 않았기에 첫 수술 이후로도 예방책, 즉 이원젠더 공간에 다시 입원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또한 ㄱ은 7번의 입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 상황이구나… 한두 번은 입원할 수 있지만 금연으로 그 횟수를 줄일 수 있다면 혹은 더 이상 입원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선택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텐데 나에겐 입원비도 수술비도 없기 때문이다. 보험이나 다른 무엇이 지원된다고 해도 어쨌거나 지출해야 하는 입원비부터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나의 상황에선 재발하지 않는 상황을 선택할 텐데 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욕망은 경제적 상황보다 강하다. 욕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초월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할 수 있다.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 하기에 예방책을 마련하겠지…(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인데 내가 정말 소심했다면 책을 사지도 않았으리라… 지금까지 지불한 책값을 다 모으면 빚을 다 갚았겠지…)
아무려나 ㄱ의 상황을 보며 깨닫기를 결국은 입원하기에 적당한 젠더, 적당한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면 입원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나 자신 트랜스젠더퀴어고, 젠더 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뉜 공간 이용을 매우 꺼리는데 입원을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일까? 예를 들어 젠더 이분법으로 나뉜 공간 이용을 철저하게 거부한 비십대 젠더퀴어가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자신도 모르게 병원에 입원했고 병실은 자신이 거부하는 젠더의 공간이라면 이 상황을 마냥 수긍해야 할까? 병실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한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입원하지 않도록 몸을 관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지.
무엇보다 나의 경우 입원비도 수술비도 없기에 입원하지 않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즉 내 수입의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몸을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건강관리를 어떻게 퀴어하게 바꿀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퀴어의 맥락에서 어떻게 건강 관리를 다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다. 동시에 끊임없이 비만을 병리화하며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의 태도를 비판하는 작업과 건강관리의 트랜스젠더퀴어화는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도 고민거리다. 물론 안다. 이미 누군가가 이런 논의를 했으리란 걸. 찾으면 나오겠지.
ㄱ의 삶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타자화, 저소득, 이원젠더 구조, 비만, 건강관리, 트랜스젠더퀴어… 중요한 고민거리다.

놀라운 경험

오늘 저녁에 겪은 일.
혈연 가족 행사(이른바 친척 모두의 행사는 아니고)로 인도식 커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채식카페에서 채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선택한 곳. 베지터리언이라고 적혀 있는 커리 메뉴 대다수가 치즈를 포함하고 있어서 주문하며 치즈를 빼달라고 했다. 아울러 난에 버터가 들어갈 듯하여 평소엔 안 먹는데 버터난이 따로 있어서 괜찮은 듯하다 싶어 일반 난을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간 뒤 곧바로 매니저가 와서 난에 계란이 들어간다며 다른 것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 전통빵(이름을 까먹…;;;)을 주문했다.
다른 구성원은 스페셜 메뉴를 주문했는데 각 음식이 나올 때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경우엔 모두가 먹을 수 있다(계란과 우유 제품을 안 먹는 사람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내가 먹을 커리가 나왔는데, 서빙하는 사람을 따라 온 매니저가 커리를 확인하더니 재빨리 회수했다. 치즈가 들어갔다며 치즈를 빼고 다시 만들어서 주겠다는 말과 함께.
보통 이와 같은 서비스를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해주자 가게에 신뢰가 상당히 상승했다. 다른 체인점도 이와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체인점 자체에 신뢰가 가는 수준이었다. 매니저가 알레르기에 감수성이 있는지 채식에 감수성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신경 쓰는 가게라면 믿고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가게가 이렇게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품는다. 물론 다른 많은 가게가 바뀌려면 식당 직원의 근무여건 및 대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
원래 가게 이름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경험은 소문을 내야 하니까…
인도 레스토랑 강가 역삼점이다.

발표나 강의를 저어하는 상태

블로깅을 위해 이미 두 편을 썼지만 결국 공개를 유예하기로 했다. 지금 쓰는 글은 공개할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올해 더 이상 강의는 없다. 일년에 많아야 너댓 건의 강의 혹은 공개적으로 발표를 하기에, 한달에도 몇 건의 강의를 하는 사람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만 강의를 그만해야지라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물론 몇 년 동안 했던 곳에서 앞으로도 불러준다면 그곳에선 하겠지만, 글쓰기 강좌를 열까 고민하고 있지만 이것과 별개로 새로 받는 강의나 발표는 하지말까란 고민이다. 더 정확하게는 얼굴이 알려지는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고민이다.
(물론 외쿡에서 경비를 일체 지원하면서 부른다면 가겠습니다. 후후후. 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더 생길리 있겠어?)
어렵지 않을 고민일 수 있다. 아니, 애당초 요청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자아과대증이고 과대망상이다. 하지만 적은 기회라도, 몇 명 안 되는 사람에게나마 얼굴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 글을 쓰고 싶고 공부를 하려하고 아카이브 작업을 하려는 것이지 내가 알려지길 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발표나 그런 자리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얼굴이 알려지는게 괜한 행동 같다. 강의나 발표가 나의 고민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자리란 점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란 점에서 배움이 크지만 그 배움과는 별개로 부담스럽다. 강의나 발표와 공부가 별개의 행위가 아님에도 자꾸만 저어한다.
정확하게 무엇이 싫고 부담스러운지는 모르겠다. 내가 듀나 같은 삶을 선망해서 이럴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이유, 내가 아직 깨닫지 못 했지만 다른 이유에서 이럴 수도 있다. 내가 사람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 해서 이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 수록 강의나 발표 자리가 부담스럽다. 단순히 마이크 공포니 하는 것과는 다르게 저어하는 몸으로 변하고 있다.
불러만 주면 어디든 가겠다던 나는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불러만 주면 어디든 쓰겠다는 다짐은 여전하지만(앞으로 몇 년 간은 유예하겠지만) 어디든 가는 것은 저어하고 있다.
+꾸워어 ㅠㅠㅠ 발표가 하나 남아있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