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성애 설교를 10편이나 듣는 은혜로운 하루

지난 6월 28일 서울 퀴어문화축제 부스행사/퍼레이드를 진행하던 날을 한국교회총연합회는 ‘동성애 조장 반대 주일’로 선포했다. 그리고 소속 교회는 동성애 반대 설교를 진행했다. 어떤 교회 담임목사는 사전에 준비한 주제가 있는데 급하게 바꿨다는 말을 했다.
퀴어락에 언제 등록할지, 등록할 수나 있을지 알 순 없지만 어쨌거나 필요하고 수집해둘 가치가 있는 자료라서 종일 해당 설교 동영상을 수집했다. 속도가 느려 받는데 시간이 좀 걸려 고작 열두어 편 정도 밖에 못 받았지만. 받으면서 관련 자료를 더 살피는 한편 설교를 직접 들으면서 작업을 했다.
아아, 은혜로운 하루였습니다. 여러 목사의 설교를 10편 가량이나 듣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을 겁니다. (이미 받았나? 후후)
다른 자료 수집을 병행하며 들어서 대충 듣고 지나친 부분도 있지만 아무려나 목사들… 예배 때 사용하는 설교문을 매매한다는데 정말 그러했다. ㅅ교회 ㅅ목사가 5월 말에 했던 설교를 여러 목사가 거의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를 조금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었다. 동시에 몇몇 교회에선 영상을 틀었는데 이 영상은 한국교회총연합회에서 배포했나? 동일한 영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목사마다 조금 수정해서 사용하는 내용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트랜스젠더는 일찍 죽는다는 내용도 어느 목사가 그대로 사용했는데 ㅅ목사에 비해 맥락 없이 등장했다 사라져서 심심했달까.
근데 오늘 들은 10편 가량의 설교 영상을 듣고 있자니, 설교 자체는 확실히 ㅅ목사가 잘한다. 게이를 비난하면서도 게이 흉내낸다고 끼도 떨고. ㅅ 목사의 설교를 구매했는지 참고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려나 동일한 내용을 하며 다른 목사는 끼를 떨며 흉내내지는 않았다. 이단이란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ㅅ 목사 이분, 어쩐지… 익숙한 몸짓이었는데… 😛
아무려나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좀 더 수집해둬야겠다. 지금이야 필요없겠다고 느끼겠지만 나중엔 소중한 기록이니까.

목사의 언술행위를 분석하기

“성전환자는 엄청 빨리 늙는다. 조로현상이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 5년 전에 만났던 사람을 지금 만나면, 목사님은 조금도 안 늙었다고 피부가 참 좋다고 말해요. 5년 동안 제가 왜 안 늙었겠어요. 다만 제가 성전환을 안 해서 조로하지 않아요.”
오늘 들은 모 목사의 설교 일부다. 설교문에는 없고 촬영 영상에만 나오는 말을 기억나는대로 쓴 거다.
듣는데 은근 재밌다. 사상사조를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으로 구분하고 구주주의는 로마, 신라시대를 포괄하는 사상사조라고 설명한다거나, 네오맑시즘은 성해방운동을 근간으로 한다거나, 데리다의 차연을 차이로 말하며 너와 내가 다르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거나…
용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구나.
그냥 다 틀린 말이라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술행위가 어떻게 조직되는가를 살피는 게 진짜 재미다. 이른바 큰용어, 학술용어를 적당히 빌려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면서도 자신의 논리를 구성하는 이 언술행위를 분석하는 것이 진짜 재미지. 내가 기독교 근본주의에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어도 본격 작업했을 텐데…

그때 몰랐던 건 몰라서 다행이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이란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요즘은 지금 알고 있는 건 그냥 지금 내가 알 때가 되어서 아는 것 뿐이며 지금 알게 된 것이 더 좋다고 고민한다. 그땐 몰랐던 게 더 좋았다.
예를 들어 나는 채식을 시작하며 얼추 7~8년이 지나서야 채식주의에도 여러 단계가 있음을 알았다. 찾아본 게 아니라 그냐 우연히 어떤 자리에 TV가 켜져 있었고 그곳에서 채식이 유행이라며 설명하는 뉴스가 나왔고 그래서 알았다. 그걸 못 봤다면 더 오래 몰랐겠지. 그리고 채식이 유행인지 웰빙이 유행이었는지 헷갈리지만(채식이 유행이란 말은 몇 년에 한 번은 듣는 듯하니까… 채식 식당이나 비건도 먹을 수 있는 빵집이 늘긴 했지만 보통 식당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유행이란 주장도 그냥 방송에서 방송용으로 만든 것인 듯하지만) 덕분에 내가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줄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무지는 가족 혹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그나마 완화시켰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로 채식을 시작한 나는 부모님의 염려를 들을 때마다 그저 침묵으로 고집을 표현했다. 달리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채식이 성장기에 안 좋다는 말씀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기에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를 알았다면, 그때 내가 뭔가를 찾아보고 어떤 정보로 부모님의 걱정에 대응했다면 더 많이 싸웠을 것이다. 설득하기보다 더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땐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때 몰라서 반박하지 못 했던 것(물론 그땐, 즉 1990년대 중반엔 관련 정보를 찾을 방법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이 참 다행이지. 그래, 그땐 알았다면 했지만, 지금은 그땐 몰라서 참 다행이다. 덜 싸워서, 관계는 안 좋았지만 덜 싸워서… 참 다행이다 싶다.
그냥 문득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