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몰랐던 건 몰라서 다행이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이란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요즘은 지금 알고 있는 건 그냥 지금 내가 알 때가 되어서 아는 것 뿐이며 지금 알게 된 것이 더 좋다고 고민한다. 그땐 몰랐던 게 더 좋았다.
예를 들어 나는 채식을 시작하며 얼추 7~8년이 지나서야 채식주의에도 여러 단계가 있음을 알았다. 찾아본 게 아니라 그냐 우연히 어떤 자리에 TV가 켜져 있었고 그곳에서 채식이 유행이라며 설명하는 뉴스가 나왔고 그래서 알았다. 그걸 못 봤다면 더 오래 몰랐겠지. 그리고 채식이 유행인지 웰빙이 유행이었는지 헷갈리지만(채식이 유행이란 말은 몇 년에 한 번은 듣는 듯하니까… 채식 식당이나 비건도 먹을 수 있는 빵집이 늘긴 했지만 보통 식당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유행이란 주장도 그냥 방송에서 방송용으로 만든 것인 듯하지만) 덕분에 내가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줄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무지는 가족 혹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그나마 완화시켰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로 채식을 시작한 나는 부모님의 염려를 들을 때마다 그저 침묵으로 고집을 표현했다. 달리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채식이 성장기에 안 좋다는 말씀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기에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를 알았다면, 그때 내가 뭔가를 찾아보고 어떤 정보로 부모님의 걱정에 대응했다면 더 많이 싸웠을 것이다. 설득하기보다 더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땐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때 몰라서 반박하지 못 했던 것(물론 그땐, 즉 1990년대 중반엔 관련 정보를 찾을 방법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이 참 다행이지. 그래, 그땐 알았다면 했지만, 지금은 그땐 몰라서 참 다행이다. 덜 싸워서, 관계는 안 좋았지만 덜 싸워서… 참 다행이다 싶다.
그냥 문득 슬퍼서…

아토피와 식당 메뉴판

비록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같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둘 다 음식물과 관련이 있고 식습관과도 밀접하다. 아토피가 많이 발생하면서 비건빵이 또 다른 수요층을 만든 것처럼. 동시에 아토피는 한국에서 꽤 오래 전부터 문제로 논의되었고 여전히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래서 근래 들어 과자봉지를 살피면 ‘본 제품은 이것 저것을 포함했을 수도 있다’ 혹은 ‘이 제품은 우유, 콩 등을 사용한 생산시설에서 만들었다’와 같은 구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토피가 이토록 큰 문제라고 하는데 음식점에선 왜 해당 식품엔 어떤 성분이 들어갔다와 같은 표기를 전혀 안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제대로 된 답을 듣기란 무척 요원하다.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어서 식당에서 주문하기 전 ‘땅콩이 들어가냐’고 물었단다. 직원은 그게 왜 들어가냐며 안 들어간다고 답했단다. 하지만 주방장에게 다시 확인하니 들어간다고… 주방장에게까지 확인을 할 수 있으면 운이 좋거나 다행이지. 이런 것 물어보면 귀찮아하거나 대충 답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 음식점 직원이 대충 답하는 문제는 구조적 문제기도 하다. 워낙 과중한 일인데다 사람을 많이 받고 급여는 무척 낮으니까. 동시에 직원이 수시로 바뀌기도 해서 서빙하는 직원에게 물어봐선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니 가장 간편한 것은 메뉴판에 알레르기 발생 요인으로 지목된 제품이 포함되면 그것을 표시해주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직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하지만 정말로 이것을 하지 않는다. 물어봐도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다.
아토피가 그토록 문제라고, 한땐 방송에서 수시로 떠들었으면서 왜 식당에선 이것을 알리는 방식으로 메뉴판을 만들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덧붙이면…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한 식당은 진짜 없다.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
+
E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내 기억으로 재구성했다. 그런데 이 주제로 블로깅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주제 자체를 까먹었다. 그리고 E가 이를 다시 떠올려줬다. E에겐 고마움을.. 그리고 정말로 뇌에 좋은 음식을 찾아서 먹어야겠다. ㅠㅠㅠ

아카이브

활동명을 직접 적으려다 개인의 생활이 드러나서 이니셜로 적으면… C님과 H님께서 캐나다의 모 지역에 며칠 갔다 왔다. 다녀와선 내게 해준 이야기 중 하나는 그곳에서 방문한 퀴어아카이브였는데…
40년 넘은 그곳에 35년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찌릿. 아니야… 내가 퀴어락에서 오래 일하고 싶어 하지만 35년이라니… 하지만 35년이라면 거의 장기집권, 철밥통 수준인데 보장만 해준다면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되는 것인가… 오호라. 생계가 해결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연구도 계속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지. 온갖 허황된 망상에서 딱 하나 드는 마음은, 그 사람 참 부럽다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이론가도 아카이브에서 장으로 일했지. 그나저나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비온뒤무지개재단이 언제까지 퀴어락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당장 내년에도 지원 받을 수 있을 것인가가 나의 고민이자 걱정 중 하나지. 그보다 5년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니 내일 내가 어디에 있을지 감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더 중요하겠지.
아무려나 여러분,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재단이 많이 어렵다고 하니 많은 후원을 부탁해요.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ㅠㅠㅠ 누가 상근활동을 하건 퀴어의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기부를 할 수 있는 주소는 http://rainbowfoundation.co.kr/xe/page_gJrA69 입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