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퀴어 혹은 ‘새로운’ 범주의 등장 관련..

기본적으로 이원젠더 개념, 이성애-동성애라는 이원성적지향 개념을 문제 삼으려고 등장한 범주/개념이 젠더퀴어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런 개념으로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모색 중 하나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등장한 범주 개념은 때때로 기존의 질서를 끊임없이 문제 삼기보다는 ‘난 너와 달라’로 환원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죠. 더 심할 경우 ‘우리는 기존 질서를 문제삼는 존재고 너희는 그렇지 않아’로 쉽게 치환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드물지 않게 ‘우린 너희와 달라’라는 태도를 접하고요.
정확하게 이런 방식의 태도, 기존의 범주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범주를 생성하는 것이 능사인가, 이런 태도가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강화하는 태도는 아닌가라는 비판 역시 존재합니다. 내가 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느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범주를 선택하고 그 범주로 자신을 설명하는 태도 자체는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범주를 생산하는 작업, 즉 ‘나는 비트랜스여성도 비트랜스남성도 아닌 젠더퀴어야’라는 언설은 정확하게 비트랜스여성과 비트랜스남성 범주를 안정적 범주로, 기준 범주로 재설정하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비트랜스여성, 비트랜스남성은 어쨌거나 유의미한 범주로 남겨지니까요. 물론 이 위험은 언제나 기존 범주를 흔들고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양가적이지요. 트랜스젠더가 이 양가성으로 젠더를 흔들었고, 지금은 젠더퀴어란 범주명명으로 그러는 듯도 합니다. 좀 더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하지만요.
그런데 이런 비판은 비규범적 존재라면 언제나 들었던 언설입니다. 부치-펨 관계를 두고 이성애 모방 아니냐, 이성애 재생산 아니냐고 비판했던 것처럼요. 그래서 이런 비판은 기존의 지배 규범적 범주(비트랜스젠더 같은…)를 방어하려는 기획에서 등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도 야기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새로운 범주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측면과 안정시키는 측면을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동시에 새로운 범주를 비판하는 작업이 기존의 질서를 보호하려는 기획은 아닌가라는 의심 역시 늘 함께 등장해야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비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범주가 등장하는 방식이 ‘우린 너희와는 달라’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강하게 흔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개개인이 언제나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무척 위험한/부당한 행동이고요. 하지만 범주 논쟁은 언제나 기존 질서를 흔드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범주가 등장하는 틈새기도 하고요.

현미채식 잡담

다소 단순한 작업을 하는 하루여서 종일 유튜브를 틀어놓았다. 그러며 현미와 채식 관련 영상을 여럿 봤다/들었다. 간혹 영상을 보기도 했지만 라디오처럼 소리만 흘리듯 들었다.

그 과정에서 목숨걸고 현미채식하라는 그 의사의 영상도 여럿 들었다/보았다. 오오, 현미, 오오, 현미! 물론 현미과 관련한 설명은 다른 많은 곡물과 채소를 툭하면 슈퍼푸드라고 부르고 효능 설명은 마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설명하는 것을 닮은 것도 같았다. (동시에 곡물의 효능을 읽고 있으면 지금 한국의 건강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다이어트, 고혈압, 당뇨, 피부, 아토피… 이런 곳에만 효과가 있겠느냐만 주로 이와 관련한 효능을 말한다는 점은 이것이 지금의 관심사란 뜻이다.) 그 현미를 중심으로 한 현미채식을 먹은 고혈압진단인, 실험 참가자 모두 고혈압과 당뇨 혈당이 이른바 정상치 수준에서 관리가 되었다. 완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약으로도 제대로 관리가 어려웠는데 현미채식을 하니 차도가 있더라고. 뿐만 아니라 현미채식으로 하루 세 끼를 먹으니 살이 계속해서 빠지면서 몸이 가벼워진다고 했다.

약을 버리고 현미채식으로 (고)혈압을 관리하는 그 의사가 요구하는 식단은 고기, 생선, 달걀, 우유, 쌀, 보리(도정 때문인 듯하다, 현미처럼 통보리면 괜찮을 듯), 달콤한 것, 술, 담배, 커피 등을 완전히 끊으라고 요구한다. 줄이는 게 아니라고 끊으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현미와 찰현미를 반반 섞은 밥에 채식으로 식단을 꾸리라고 한다. 그 식단을 보며 나는 못 하겠다.

이미 현미(5분도로 추정)를 중심으로 밥을 먹고 있고 앞으론 1분도 현미를 먹을 예정이며 비건으로 살고 있는데 현미채식을 못 하겠다고? 응, 못 하겠다. 정크비건에 꿀비건인 나는, 채식라면을 비롯한 면 음식을 정말 사랑하는 나는 현미채식 못 하겠더라. 초콜릿을 좋아하고 가끔씩 단 게 엄청 땡기는 나는 그거 못 하겠더라.

그래서 현미채식 실험에 참가한 이들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참가자 중 한 명이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 마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호호.

영상을 여럿 들으며 내가 비염이 그나마 지금 수준에서 관리기 되는 건 채식 때문은 맞는 듯도 하다. 라면을 비롯해 국수 등에서 벗어나면 더 좋아지겠지만… 라면은 진리지.

쓸데없는 걱정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선 엄청 방대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트랜스젠더퀴어이론이야 그냥 하는 거고 역사학, 번역학, 범죄학, 병리학, 법학, 성교육, 국가정책, 성과학, 서사학, 장애학, 의료사, 인구학 등을 기본은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내가 학위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인가란 걱정을 한다. 나는 괜찮을까? 물론 모든 학제를 방대하게, 충분히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한 문장을 쓰기 위해 10편의 참고문헌을 읽어야 하는 것처럼 논문 한 편 읽고 글을 쓸 수는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누군가가 보기엔 욕심이 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욕심을 최소화한 기획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얼마나 덜 망하느냐가 관건이지 안 망하느냐는 고민거리도 아니다. 아아… 게을러서 지금까지 공부를 안 했더니 커다란 불덩이가 내 발에서 타고 있음을 몰랐구나…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읽고 났을 때 내가 어디로 가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선 두근거린다. 이를 통해 다시 확인하는 사실은 여성학/문화학 혹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가 결코 별도의 학제로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간학제, 다학제, 혹은 내가 선호하는 표현으로 잡학은 유행이 아니라 그냥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