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페미니즘의 의미가 격변하는 시기일까? 그러니까 정말로 영페미니스트가 등장했을 때처럼 다른 방식, 다른 논쟁, 다른 입장으로 페미니즘을 다시 설명하려는 운동이 등장하고 있는 시기일까? 아니면 그저 일회성 해프닝일까? 혹은 새롭거나 다른 것 같았지만 결국은 양성평등을 밑절미 삼는 기존 운동의 반복인 걸까?
지금으로선 현재의 어떤 분위기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2008년 촛불집회가 진보연 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상찬을 받았지만 그것이 일베와 이어지거나 외국인 혐오, 특히 조선족 혐오로 이어진 것처럼 그렇게 바뀔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쉽게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어떤 흐름인지 조금이나마 알려고 애쓰겠지만 그냥 내 공부를 하는 게 최선임을 안다. 트랜스젠더퀴어 논의를 어떻게든 인식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겠지. 동시에 트랜스페미니즘을 조금이라도 더 잘 설명하고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나는 그저 내 공부를 묵묵히 하면서 흐름이 어떻게 바뀌나 살피면 되겠지.
핵심은 단순하다. 논평자가 되지 않는 것. 나의 위치에서 내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열심히 개입하는 것.
댓글로 알려줘서 알았는데, 논평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었다.
글: 노정태 “페미니즘을 위하여” http://goo.gl/qm6y1W
마지막 문단의 “그러므로 ‘진정한 페미니즘’을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의 뜻을 표하는 것뿐이다.”는 가장 위험한 말이다. 페미니즘을 무시하고 폄훼하고 폄하하는 발언이다. 제목은 ‘페미니즘을 위하여’지만 페미니즘을 고립시키는 태도다. 페미니즘을 이항대립의 양성평등으로 치환하고, 페미니즘을 인식론이자 세계관으로 보기보다는 여자들이 하는 무언가로 취급하는 태도다. 저자는 항변하겠지만 이것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인간의 인식론에서 추방하는 태도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논평자가 하는 일이라고 고민한다.
(이것 역시 논평에 불과하다. 부끄럽다.)
내 위치에서 공부하는 것, 그리고 논평이 아니라 개입하려고 애쓰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